가족과 보내고 싶은 마음 굴뚝 같지만.. 올해 추석은 양보했어요

심기문 기자 2021. 9. 1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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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타격 본 자영업자들 "추석 특수 조금이라도"
경찰·소방·기관사 시민들 편의·안전 위해 연휴 반납
공부에 매진하려는 고시생들 "다음 명절 땐 당당히"
추석 연휴를 앞둔 15일 서울 SRT 수서역에서 방역 요원들이 열차를 소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추석 명절이 성큼 다가오면서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날 생각에 모두가 들떠 있지만 마음 편히 명절을 보내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맞이한 예전 명절과 달리 올해 추석에는 백신 접종으로 가족들과 지낼 수 있는 여건이 어느 정도 마련됐음에도 기꺼이 생업에 나서고 꿈을 향해 공부하는 사람들 얘기다.

가족과 명절을 보내고 싶은 마음은 한결같지만 처한 사정은 저마다 다르다. 자식에게 용돈을 주기 위해 출근하는 아버지부터 국민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근무하는 경찰관, 꿈을 위해 귀향을 포기한 수험생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사연을 가진 이들은 다음 명절을 기약하며 이번 연휴를 양보하기로 했다.

◇“추석 때라도 바짝 벌어야죠”=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으로 직격탄을 맞은 일부 자영업자들은 가족들과의 만남을 포기한 채 휴일 영업에 나서기로 했다. 추석 연휴가 그나마 불황 중 호황이라는 생각 끝에 연휴를 반납하기로 한 것이다.

충북 청주시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송모(31) 씨는 “평일보다는 주말에 가게를 찾는 사람이 많아 이번 연휴 5일 동안 매출이 좀 더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며 “재난지원금이 배포된 만큼 가을·겨울옷을 사러 나오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택시기사로 일하는 박모(49) 씨도 “명절 때는 유동인구가 많아 그나마 택시 손님이 많은 편”이라며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못해도 택시를 운행하며 자식들 용돈이나 벌어보려 한다”고 귀띔했다.

대목이라는 이유로 연휴 동안 꼼짝 없이 일해야 하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1인 가구는 부모님 집을 찾지도 못하고 연휴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 우울감에 빠져 있기도 하다. 충남 천안시의 배달음식 전문점에서 근무하는 연모(30) 씨는 “남들은 집에서 가족들과 모여 쉴 때 명절 대목이라는 이유로 일해야 한다는 사실이 좀 서글프다”며 “다른 친구들처럼 명절 때 부모님과 함께 밥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이 일을 계속하는 한 그런 날이 올까 싶다”고 토로했다.

◇“국민 안전과 편의가 최우선이죠”=추석 명절에 사람들의 안전을 지키고 발이 돼주는 이들도 연휴를 반납하고 근무에 나선다. 치안·안전을 위해 온종일 근무하는 경찰·소방, 안전한 귀향·귀성길을 책임지는 열차 기관사와 버스기사가 그들이다.

강원 춘천시에 근무하는 경찰관 A 씨는 2주 전 미리 고향을 다녀왔다. 아내 역시 경찰관이어서 순번대로 짜여진 근무를 하는 경찰의 특성상 연휴 때 고향을 마음 편히 다녀오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A 씨는 “남들이 다 쉬는 연휴 때 스케줄 근무를 해야 해 힘들긴 하지만 코로나19 시국에 사람들이 붐비기 전 미리 다녀올 수 있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고 있다”고 말했다.

경북 울진군에서 근무하는 소방관 이상묵(24) 씨도 연휴 중 하루 당직이 잡혀 24시간 근무하게 됐지만 오히려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임관한 지 이제 막 일주일 지난 새내기 소방관인 이 씨가 가족과 보내게 된 첫 명절인데 근무순번상 하루라도 가족과 같이 보낼 여유가 생겨서다. 이 씨는 “비록 추석 전날 근무를 해야 하지만 나머지 이틀 동안 가족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하게 근무할 것 같다”며 “마침 추석 상여금까지 받아 가족과 같이 보낼 명절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각자가 수행하는 업무에 대한 자부심으로 명절 근무에 나서는 와중에도 가족과 연휴를 온전히 보내지 못해 아쉬움을 숨기지 못하는 이도 있다. 서울지하철 2호선 기관사인 여새힘(28) 씨는 “코로나19로 가족들이 잘 모이지 못하다 언니의 결혼을 앞두고 추석 당일에 모두 모이기로 미리 약속을 잡았다”며 “하필 그날 근무가 겹쳐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승객이 없는 명절 아침의 출근 지하철을 보면 ‘나만 출근하나’라는 생각에 속상한 마음이 잠시 드는 것도 사실”이라며 “하지만 지하철 운행은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고 시민들의 편의를 위한 일이기에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다음 명절에는 합격해서 갈래요”=미래를 위해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수험생들에게도 추석 연휴는 남의 이야기다. 조금이라도 더 자리에 앉아 공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더해 취업 여부를 묻는 친척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워 귀향을 포기하는 고시생이 많기 때문이다.

내년 2월 공인회계사 시험을 앞둔 수험생 류모(27) 씨는 “올해 추석 연휴에는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과 대학교 열람실에서 공부할 계획”이라며 “이번에는 꼭 붙어서 다음 명절 때는 당당하게 집에서 가족들하고 편한 시간을 보내겠다”고 다짐했다.

서울시 7급 공무원시험을 준비 중인 김모(28) 씨도 귀향을 포기하고 막바지 시험 준비에 전념할 계획이다. 김 씨는 “다음 달 예정된 필기시험을 치른 후 후련한 마음으로 고향에 내려갈 것”이라며 “부모님을 못 뵙는 건 아쉽지만 친척들 잔소리를 안 들어도 되는 건 좋다”고 말했다.

심기문 기자 door@sedaily.com천민아 기자 min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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