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옷 영업왕의 인간관계 비결.. "모두와 친해질 필요 없다"

이종현 기자 2021. 9. 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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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조선]
[한국의 젊은 임원들] 김세호 쌍방울 대표 인터뷰
김세호 쌍방울 대표. 숭실대 섬유공학과, 쌍방울 기획팀, 쌍방울 부사장. /쌍방울

차장에서 부사장으로, 그리고 다시 대표이사까지. 단 4개월 만에 승진한 직장인이 있다. 재벌 2세 이야기도 아니고, 작은 스타트업 이야기도 아니다. 국민 속옷 회사로 불리는 쌍방울의 김세호 대표 이야기다.

김 대표가 차장이던 시절 쌍방울은 ‘내가 쌍방울의 경영진이라면?’이라는 공모전을 진행했다. 회사의 나아갈 방향을 직원들에게 직접 물은 것이다. 김 대표는 여기에 ‘새로 오시는 부사장에게 드리는 글’을 내서 우승했다. 김 대표는 차장에서 부사장으로 전격 발탁됐고, 다시 4개월 만에 대표가 됐다. 회사의 약점을 정확히 알고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대안까지 뚜렷하게 제시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내공모전에서 우승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다른 속옷 회사들이 젊은 세대들을 사로잡는 와중에 우리는 그런 노력이 없었다. 쌍방울이 가진 시장과 유통망에 대한 자부심만 컸다. 40~60 여성용 팬티는 우리가 꽉 잡고 있다는 인식이 컸다. 디지털과 온라인으로 변화했어야 하는데 타이밍을 놓쳤다. 이런 부분에 대한 설명을 담았다.”

쌍방울에 입사한 이후 영업 분야에서만 꾸준히 활동했다. 전략이나 기획 분야에서 일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됐나.

“영업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 단순히 속옷을 팔라더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영업이란 나를 파는 일이다. 제품이 좋으면 사람들이 알아서 산다. 카탈로그만 들고 다녀도 된다. 그건 제품이 알아서 하는 일이다. 내가 하는 영업은 필요가 없는 걸 더 사게 만드는 일이다. 그게 가능하게 만드는 게 기획이고 마케팅이고 IR이다.”

IR은 주식투자자를 상대로 하는 홍보 활동인데 영업과 무슨 상관인가.

“회사에 들어오고 매년 하는 업무 중 하나가 주주총회 시즌에 주주들을 만나 위임장을 받는 일이었다. 주주총회 안건에 대해 회사 입장을 설명하고 위임장을 받았다. 사실 영업점에서는 큰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위임장을 받는 것도 1등을 하고 싶었다. 다른 영업사원은 회사가 정해준 대로 주주들을 찾아갔지만, 나는 본사부터 가서 IR 담당자를 만났다. 주주들을 설득하려면 안건 내용과 회사 상황을 내가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IR 담당자도 이런 걸 물어보러 오는 영업사원은 처음이라고 했지만 이후에는 많은 걸 알려줬다. 신입사원 때부터 내가 맡은 업무 말고도 회사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업에 대한 정의가 남들과 다른 것 같다.

“마케팅이나 기획, 디자인은 결국 영업을 위한 서브 부서라고 생각했다. 영업은 이 모든 걸 묶는 일이다. 영업에 대해 수금하러 돌아다니는 거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했다. 다른 부서 동기가 오늘 뭐 했냐고 물어보면 ‘너희 월급 받아왔다’고 답했다.”

쌍방울 매출액은 2015년 1426억원에서 2018년 1016억원으로 감소했다. 명품 속옷과 패스트패션 사이에서 젊은 층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서 고전했다. 하지만 김세호 대표가 경영을 맡은 이후 많은 게 달라지고 있다. 디지털과 온라인 시장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면서 쌍방울은 온라인 매출이 단시간에 10배나 늘어나는 등 체질 변화에 나서고 있다.

2008년 한 해에만 사내 ‘우수영업사원상’을 11차례 받았다. 영업에서 탁월한 성과를 낼 수 있는 비결이 뭔가.

“보통 속옷 영업은 거래처나 점포마다 등급을 매긴다. 주문을 많이 하는 점포는 등급이 높고, 등급이 높은 점포 위주로 영업을 챙긴다. A급 매장에 2시간, C급 매장에 30분을 배정하는 식이다. 나는 반대로 했다. A급 매장에 30분, C급 매장에 2시간을 배정하고 정성을 쏟았다.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그렇게 C급 매장이 A급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았다. 단순히 많이 찾아가는 게 아니라 마케팅을 어떻게 하고, 인테리어는 어떻게 할지 컨설팅해야 한다.”

아무리 찾아가도 주문량을 늘려주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끝내 열어주지 않는 곳도 있다. 이럴 땐 6개월 이상 하지 않는다. 사람들마다 이유가 있다. 우리 제품을 굳이 팔지 않아도 충분히 매출이 나오고 생계가 해결된다면 우리 제품을 팔 이유가 없다. 그런 사람들에게 억지로 강요할 필요는 없다. 대신 빨리 포기하는 건 안 된다. 계속 노력하다보면 사람 마음은 열리기 마련이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나에 대해 궁금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외향적인 성격이 성공의 비결인가. 빠르게 승진하면 시기나 질투도 많았을 것 같은데.

“시기나 질투로 어려움을 겪은 건 없었다. 나는 적을 만들지 않는다. 대신 모두와 친해지지도 않는다. 업무적으로는 필요한 이야기를 다 한다. 그 정도로 가깝게 지내되 더 깊게 다가가지는 않는다. 나의 마음 속에 있는 말을 다 꺼내지는 않는다.”

영업으로 성공했는데 모두와 친해질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다니 의외다.

“사람을 대면할 때 절대로 속내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런 건 오히려 관계에 방해가 된다. 다른 사람의 속내를 알아버리면 쏜소리를 해야 할 때 하지 못하게 된다. 좋은 일만 있으면 상관 없지만, 회사생활을 하는데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다. 그럴 때 방해가 된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지내라는 건 아니다. 나라는 사람을 조직이나 회사에 각인시키는 건 중요하다. 나도 처음 입사했을 때, 전 직원이 리조트에 워크샵을 갔다. 그때 어떻게든 어필하고 싶어서 차력을 준비했다. 우리 팀이 2등을 했는데, 워크샵이 끝나고 사내메일만 100통이 와 있었다. 일일이 답장을 써주면서 이제는 됐다고 생각했다. 나라는 사람을 조직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

30대에 임원이 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한다고 보나.

“설계를 해야 한다. 업무에 대한 설계일 수도 있고, 미래에 대한 설계일 수도 있고, 인간관계에 대한 설계일 수도 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문제를 겪게 되지만, 그걸 극복하고 넘어설 수 있는 길은 분명히 있다. 그걸 찾기 위해서 설계가 필요하다. 어려움이나 난관을 견뎌내고 넘어서는 게 중요하다.”

◇Plus Point - 이덕화에서 김수현으로… MZ 공략 나선 쌍방울

김세호 쌍방울 대표가 자사몰 트라이샵 배너 광고에 등장한 모습. /트라이샵 캡쳐

쌍방울은 2020년 10월 대표 브랜드인 트라이(TRY)의 새 모델로 배우 김수현을 뽑았다. 김세호 대표를 선임한 데 이어 대표 모델까지 바꾸면서 세대 교체를 확실히 한 것이다. 쌍방울 트라이는 배우 이덕화나 가수 태진아로 유명했다. 특히 이덕화가 닫힌 엘리베이터 문을 손으로 치며 “오, 트라이”라고 하는 엘리베이터 광고로 회사 이미지가 각인돼 있었다.

쌍방울 관계자는 “많은 소비자가 아직도 쌍방울하면 1990년대에 선보인 이덕화 엘리베이터 광고를 떠올린다”며 “김수현이라는 빅 모델을 기용해 새로운 이미지로 탈바꿈해 소비 주역으로 떠오른 MZ 세대를 공략할 것”이라고 했다.

쌍방울의 변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PDM(Platform&Digital Marketing) 사업부를 신설하고 유튜버와 인플루언서를 소개하는 매거진 ‘맥앤지나’를 창간했고, 젊은 세대를 공략하기 위한 자사몰 ‘트라이샵’도 오픈했다. ‘무신사’처럼 MZ 세대가 주로 찾는 쇼핑몰에 트라이 제품을 런칭하는가 하면 카카오나 네이버, 오픈마켓 등으로 판매채널을 확장하고 있다. 이런 노력이 더해지면 쌍방울 디지털 매출은 김 대표 전보다 10배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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