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미투'에 백래시까지..젠더 폭력에 몸살 앓는 학교
교육부, 초·중·고 대상 성폭력 실태조사 예고
2018년 3월 서울 용화여고 졸업생들이 교사들에게 당한 성폭력을 고발했다. 이른바 ‘스쿨미투’의 시작이었다. 위계에 인한 성범죄 폭로와 학교 현장의 여성 혐오에 대한 성찰이 동반된 의미 있는 신호탄이라는 평가를 받은 ‘사건’이다.
3년 하고도 5개월이 흐른 지금, 학교는 여전히 젠더 폭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학생들은 기존의 언어·신체 폭력은 물론 디지털 성범죄에 노출되는 상황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성 공격인 ‘백래시’가 교실까지 침투하기도 했다. 교육부는 전국의 학생을 대상으로 전수조사하겠다며 대책을 내놨지만, 학교 안 성평등을 향한 과도기의 긴 터널이 언제쯤 끝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교내 불법촬영 점검은 부실…가해 교사 징계도 미흡
지난 7월, 한 30대 남성 교사가 자신이 근무하는 남자 고등학교의 여직원 화장실에 불법촬영 카메라 두 대를 설치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ㄱ씨는 카메라를 발견한 학교 쪽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이후 ㄱ씨의 전임 근무지인 학교에서도 자체 조사를 벌인 결과, 마찬가지로 여자 화장실에 설치된 카메라가 확인됐다.
서울시교육청은 해당 교사에 대해 파면과 해임 등 최고 수준의 징계를 내려 영구 퇴출하고 학생과 교직원들을 대상으로 상담치료 등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상반기에 교내 불법촬영 기기 점검을 한 이후였던 만큼, 비판을 면하지 못했다. 지난해 6월 경남 김해와 창녕에서 현직 교사가 학교 여자 화장실에 불법촬영 카메라를 설치했다가 잇따라 발각된 이후, 교육부는 ‘교육분야 성희롱·성폭력 근절대책 추진 현황과 향후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시·도 교육청이 지역 공공기관과 협조해 사전 예고 없이 불법촬영 카메라 설치 단속을 연간 두 차례 이상 진행하도록 한 바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시내 일부 학교에 대해 불시 점검을 했으나, 해당 교사가 근무하는 학교는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기사: 서울시교육청, ‘학교 여자 화장실 불법촬영’ 교사 직위해제)
스쿨미투 가해 교사에 대한 징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례도 부지기수다. 학부모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이 지난 5월 공개한 정보공개 청구 결과를 보면,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간 전국에서 스쿨미투에 연루된 교사는 무려 469명. 하지만 올해 1월 공개된 서울시교육청의 ‘2018년 스쿨미투 가해교사 징계현황’을 보면 2018년 당시 48명이 스쿨미투 가해교사로 징계대상에 올랐으나 감사를 거쳐 파면(3명), 해임(8명), 계약해지(2명) 등으로 교단을 떠난 교사는 13명으로 집계됐다. 나머지 교사 35명은 정직(11명), 견책(10명), 감봉(7명) 등에 그쳤다. 행정상 조처인 주의 처분을 받거나, 아무런 처분을 받지 않은 교사도 있었다.
시민단체에서는 징계 절차에서 학생과 피해자의 관점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성고충심의위원회, 학교폭력위원회 등 사안을 논의하는 기구에 교사위원이나 외부 자문위원은 존재하지만, 학생위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교사와 학생 간 기울어진 권력 관계가 사건 처리 과정에도 반영됐다는 문제 제기도 이뤄졌다.
(▶관련기사: 2018~2020년 스쿨미투 연루 교사 469명…몇명이 학교 떠났을까?)
페미니스트 조롱하는 공격 심화에 성평등 수업 거부도
스쿨미투 이후 남학생들을 중심으로 백래시 현상도 본격화하는 추세다. 청소년 성교육·성상담 전문기관인 ‘아하!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가 2018년 9월 전국 13~18살 청소년 33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미투운동을 지지하고 응원해주고 싶다’는 문항에 여학생이 92%가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남학생은 60.5%에 그쳤다. ‘모든 남자를 성폭력 가해자로 보는 것 같다’는 문항에는 남학생의 49.2%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관련기사: “쌤, 페미죠?” 교실도 휩싸인 백래시)
페미니스트 교사들에 대한 남학생들의 비난과 공격도 대담해지는 모습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전국 교사 113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교사들은 최근 3년 동안 ‘메갈’, ‘페미’냐고 조롱하듯 묻는 행위(17.4%), 공식적인 자리에서 혐오표현 발언(16.6%), 페미니스트 교사에 대한 비난 및 공격(12.8%), 성평등 수업에 대한 방해·거부(8.2%) 등 ‘백래시’ 행위를 경험했다고 답변했다.
‘교사 집단이 은밀하게 페미니즘을 학생들에게 주입하고자, 사상 주입이 잘 통하지 않는 학생들은 따돌림을 당하게 유도하고 있다’는 청원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적도 있다.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고 경찰이 수사에 들어갔지만, 범죄 피의자와 피해자를 모두 특정하지 못해 수사를 잠정 중단하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교육 자료에 집게손가락 나오면 “바꿔라”…교실까지 파고든 ‘백래시’)
교육당국 성평등 메시지 절실…10월 성폭력 전수조사 예정
교육계에서는 성평등 교육이 학교 현장에서 더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교육당국이 강력한 메시지를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시 ‘성평등·인권교육을 공교육에 포함시키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이후 교육부는 2018년 12월 학교 양성평등 교육 강화안 등을 담은 ‘교육분야 성희롱·성폭력 근절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성평등 교육은 법정 의무교육 시수가 정해져 있지 않고 정책적인 지원도 아직 부족하다.
대책 마련에 부심하던 교육부는 일단 학교 안의 젠더 폭력 상황을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는 방침이다. 교육부는 오는 10월 전국 초·중·고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실태조사를 한다. 특정 집단이나 샘플이 아닌 전수조사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상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의 학생 360만여명으로, 온라인 조사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난해 1학기부터 조사 시점까지 학생 본인이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보았거나 가해 경험이 있는지 등에 관해서다. 교육부는 “계속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피·가해자 모두에게 교육적 개입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고, 정책 수립에 자료로 마련하고자 전수조사를 진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결과는 12월에 공개된다.
(▶관련기사: 초·중·고 학생 성폭력 실태 첫 전수조사 한다)
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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