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 오스트레일리아와 핵잠수함 협력..한국에도 '핵잠 개발' 열리나

박병수 2021. 9. 18.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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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이나 미국 반대로 쉽지 않아
미 당국자 "호주 허용은 예외적인 일"..확대 해석 경계
미국 해군의 버지니아급 핵추진잠수함 ‘일리노이’(SSN 786)가 13일 하와이 진주만에 정박하고 있다. 미국 해군 제공.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미국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가 15일(현지시각) 3국간 안보협력체인 ‘오커스’(AUKUS)를 발족하면서 첫 구상으로 오스트레일리아의 핵추진잠수함 보유 지원을 꼽아, 한국의 핵잠수함 개발 구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비상한 관심을 끈다.

핵잠수함 개발은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이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던 2017년 4월 대선 토론회에서 “핵잠수함이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가 됐고, 이를 위해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논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문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이후인 같은 해 8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핵잠수함 개발 문제를 거론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핵잠수함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 지난해 7월엔 김현종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차세대 잠수함은 핵연료를 쓰는 엔진을 탑재한 잠수함”이라며 핵잠수함 추진 의지를 보였다.

4천t급 잠수함, ‘핵추진’으로 가나

핵잠수함의 군사적 필요성은 2010년대 중·후반 이후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인 ‘북극성’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특히 힘을 얻었다. 북한은 2015년 5월 ‘북극성’ 미사일을 첫 시험 발사한 이후 2019년 10월 ‘북극성-3형’을 시험 발사했고, 지난해 10월과 올해 1월 열병식에선 ‘북극성-4ㅅ’, ‘북극성-5ㅅ’도 차례로 선보였다.

당시 북한이 잠수함을 우리 후방 해역에 몰래 보내, 배후에서 북극성을 발사할 경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핵잠수함을 개발해 대응하자는 논리가 제시됐다. 우리 군의 핵잠수함을 북한 잠수함 기지 근처 심해로 은밀히 보내 잠수함을 처음부터 추적하다가 북극성을 쏘려는 움직임이 보이면 사전에 격침하자는 것이다.

국방부가 지난해 8월 발표한 ‘2021∼2025년 국방중기계획’에는 핵잠수함 개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당시 국방부는 3000t급 이상의 잠수함 9척을 개발하는 ‘장보고-Ⅲ’ 사업을 설명하면서, 3000t급과 3600t급, 4000t급을 각각 3척씩 순차적으로 건조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난 15일 한국 해군 최초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시험 발사에 성공한 ‘도산안창호함’은 이 계획에 따라 건조된 첫 3000t급 잠수함이다.

다만 국방부는 3000t급과 3600t급 잠수함에 대해선 디젤-전기 추진의 재래식 잠수함으로 추진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4000t급 잠수함에 대해선 “현 단계에서 추진방식을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여지를 남겼다. 디젤-전기 추진이냐, 핵추진이냐를 미리 결정하지 않고 여건을 봐가며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미국, 한국에도 호주와 같은 잣대를 들이댈까

그러나 군 당국이 핵잠수함 개발에 나서려면 먼저 미국의 강력한 견제와 반대, 규제를 넘어서야 한다. 무엇보다 미국의 양해가 없는 한 핵잠수함 원자로의 원료인 농축우라늄을 구할 수 없다.

지난 2015년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 제11조는 한국에 ‘20% 미만의 우라늄 농축’을 허용하고 있지만, 한-미간 서면 합의가 전제되어야만 가능하다고 못 박고 있다. 미국이 동의하지 않으면 핵잠수함 원자로의 연료로 쓰기 위해 우라늄을 농축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일부에선 한-미 원자력협정이 국내 민수용 원전 이용을 위한 것이어서 군사용에는 구속력이 없다는 견해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협정이 13조에서 핵물질이 “어떠한 군사적 목적을 위해서도 이용되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는 점을 보면, 군사용에 구속력이 없다는 해석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핵잠수함 원자로에 쓸 농축우라늄을 국제시장에서 상업적으로 구매하는 방안도 남아 있다. 국내에서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에 쓰이는 농축우라늄도 모두 국제시장에서 구매한 것이다. 그러나 국제시장의 상업적 거래도 미국의 양해가 있어야 한다. 핵공급국그룹(NSG) 어느 회원국도 미국과 마찰을 겪으면서 농축우라늄을 한국에 넘겨주려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군사용 농축우라늄의 구매를 민수용처럼 눈감아 줄 것으로 기대하긴 쉽지 않다.

실제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개발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9월 김현종 2차장이 미국을 방문해 핵잠수함 건조 계획을 설명하고 핵연료 도입을 타진했지만, 미국으로부터 거절당했다는 언론 보도도 나온 바 있다. 당시 청와대는 이 보도에 대해 “외교·안보 사안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며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 두 번째)과 맬컴 턴불 오스트레일리아 총리(가운데)가 2018년 5월 2일 시드니 가든 아일랜드에서 오스트레일리아 해군의 콜린스급 잠수함 ‘HMAS 웨일러’의 선체 위에 서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15일(현지시각) 미국·영국과 3국간 안보협력체인 ‘오커스’의 발족과 함께 미국의 기술 지원으로 핵추진잠수함 개발에 나서면서, 프랑스와 추진해온 660억 달러(약 77조원) 규모의 재래식 잠수함 건조 계획을 철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런 미국이 이번에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 등 3국이 참여하는 연구팀을 꾸려 18개월간 오스트레일리아 핵잠수함 개발에 최적의 방안을 찾기 위한 공동연구를 진행하기로 했다는 건, 극적인 태도 변화로 읽힌다. 실제 미국은 1958년 영국에 핵잠수함 추진 기술을 공유한 이래 외국에 핵잠수함 기술을 넘겨준 사례가 없다. 미국이 이제 우리나라의 핵잠수함 개발에도 과거와 달리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커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물론 미국은 이번 오스트레일리아 핵잠수함 개발 지원에 대해 “예외적인 일”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미국 고위당국자는 핵잠수함 기술이 '극도로 민감한' 기술이라며 “솔직히 말해 이는 많은 측면에서 우리 정책의 예외에 해당한다”고 선을 그었다. 또 “이것이 앞으로 다른 상황에서 착수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는다. 우리는 단 한 번 있는 일로 이를 한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다른 나라들이 유사한 기대를 품지 않도록 못을 박았다.

이 고위당국자는 오스트레일리아가 핵무기를 개발할 의향이 없고 핵 비확산 노력의 선두에 있다면서 핵 비확산에 대한 미국의 의지는 변함이 없다고도 강조했다. 한국의 핵잠수함 개발에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다른 잣대를 들이댈 여지를 남겨놓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동북아시아의 국제정치 환경에서 보면, 미국으로서는 한국의 핵잠수함 개발에 기술지원은 커녕 묵인도 쉽지 않다. 한국의 핵잠수함 개발에 눈감으면, 한국과 경쟁관계에 있는 일본의 핵잠수함 개발도 막기 어렵게 된다. 자칫 ‘핵잠수함 도미노’가 일어날 수 있다. 중국의 반발도 더욱 거세지면서 동북아시아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

핵잠수함 개발, 산 넘어 산

핵잠수함 개발은 북한이 남한을 앞서가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은 지난 1월 8차 당대회에서 “새로운 핵잠수함 설계 연구가 끝나 최종 심사 단계에 있다”고 공언한 바 있다.

우리가 미국의 양해를 얻어 실제 독자 핵잠수함 개발에 나선다 해도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는 ‘장보고-Ⅲ’ 사업의 3000t급 잠수함을 독자 설계하는 등 잠수함 설계능력은 확보하고 있다. 이는 몇십 년 동안 독일의 기술 지원을 받아 1200t급 잠수함(장보고-Ⅰ사업)과 1800t급 잠수함(장보고-Ⅱ 사업) 10여척을 건조하며 기술 축적을 한 결과이다.

핵잠수함의 추진체인 원자로와 관련해서도 기반 기술은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가 1990년대 말부터 러시아의 기술 지원으로 해수담수화용 소형 일체형 원자로인 ‘스마트 원자로’(열출력 330㎿)와 이를 5분의 1 규모로 축소한 실증로인 ‘스마트-P’(열출력 65㎿)를 개발한 전례가 있다. 이를 기반으로 개발하면 몇 년 안에 핵잠수함용 원자로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군 당국은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 기술 수준에서 독자적인 핵잠수함 건조는 섣부르다는 반론도 있다. 재래식 잠수함에 원자로 추진체만 탑재한다고 핵잠수함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핵잠수함은 재래식 잠수함보다 훨씬 깊은 심도에서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운항하기 때문에 이런 조건에 맞게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따라서 재래식 잠수함 설계 경험만 믿고 핵잠수함 건조를 추진하는 것은 뜻하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핵잠수함의 소음 문제를 기술적 장벽으로 거론하는 전문가도 있다. 잠수함의 생명은 은밀성과 정숙성인데, 핵잠수함은 재래식 잠수함보다 소음이 심하다. 핵잠수함 선진국 미국도 오랜 경험과 기술을 축적한 끝에 핵잠수함 소음 저감기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등의 기술 지원이 없는 한 핵잠수함 초보로서는 원자로의 냉각장치, 감속장치 등에서 나는 소음을 줄이는 기술의 확보 방안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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