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서사'로 가득한 곳, 북유럽 최대 여성도서관을 가다
스웨덴이 성평등 사회의 토대를 닦은 배경에는 기록과 분석의 힘이 있었다. 스웨덴 제2의 도시인 예테보리에는 이와 관련된 특별한 도서관이 있다. 국립 젠더연구도서관 ‘크빈삼’(KvinnSam)은 지난 50여년 동안 성별 불평등 사회의 변화를 주도해 온 여성들의 기록을 북유럽 최대 규모로 소장 중인 곳이다.
‘공정한 나라의 계층사다리’ 시리즈에서 ‘성평등한 공정 사회’를 맡은 스웨덴을 방문 취재하던 중 지난 1일 크빈삼 도서관을 찾았다.
최종 명칭인 ‘크빈삼’은 스웨덴어로 여성을 뜻하는 ‘크빈(Kvinn)’과 수집물을 뜻하는 ‘삼(Samling)’을 결합한 것이다. 부제는 국립 젠더연구도서관(National Resource Library for Gender Studies)이지만 메인 도서관명에는 ‘여성’이란 명칭을 지키고 있다.
1950년대에 처음 이 공간을 연 것은 두 명의 사서(아스타 에켄발, 로사 말름스트롬)와 한 명의 여성운동 활동가(에바 피네우스)였다. 여성에 대한 기록을 보관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판단해 이러한 장소를 고안했다고 한다. 사립 기록 보관소로 첫 발을 뗀 이곳은 이후 예테보리대 인문도서관에 포함됐고, 국립 도서관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이제는 명실상부한 북유럽의 대표 성평등 도서관으로 자리잡았다.
이날 도서관 투어를 해 준 이곳의 사서 산나 헬그렌씨를 따라 자료실로 들어갔다. 이 공간에 있는 책은 모두 여성, 젠더 연구와 관련된 것이라 생각하니 놀라웠다. 헬그렌씨는 “여기 있는 자료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며 “이용자 출입이 제한된 지하 자료실에 훨씬 더 많은 기록들이 보관돼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여성 서사’는 엄청난 양을 자랑한다. 여성의 이야기를 문학으로 쓴 북유럽 작가 800명의 작품, 1000년의 여성문학 역사가 집대성돼 있다. 스웨덴 여성의 생활상 등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변화했는지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다. 이곳의 여성운동이 남긴 수많은 기록과 자료들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업적을 남긴 여성을 인물별로 찾아보는 것도 가능하다.
자료 수집은 도서관 자체적으로도 하지만 스웨덴 내의 다양한 성평등 운동 기관과 협력해서 이루어지며, 활동가 개인이나 단체가 직접 와서 맡기고 가는 경우도 있다. 도서관이 있는 예테보리대에 역시 설치된 스웨덴 최대 젠더연구소(Swedish Secretariat for Gender Research)는 가장 큰 협력 기관이다.
헬그렌씨는 “여성들이 어떻게 살았고, 누가 어떤 일들을 해 왔는지의 기록이 사라지지 않도록 잘 축적하는 것이 이곳의 존재 이유”라며 “여기에 관심이 있는 이용자들은 도서관에 방문하거나 온라인 검색 서버를 통해 손쉽게 자료를 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반 도서 가운데에도 여성이나 성 인지적 관점이 포함된 경우가 있는데, 크빈삼에서는 이런 책을 골라 보는 것도 가능하다. 검색 DB가 세심하게 잘 구축돼 있었다. 자료실 한 편에는 빛이 바랜 신문기사와 오래된 보도자료 등을 모아둔 곳도 있었다. 단행본이 아닌 이런 자료들은 주제별, 인물별로 각각 분류해 놓았다.
사서 헬그렌씨는 “한국에도 여성운동 기록을 국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보관하는 공간이 커지길 바란다”며 “이번 투어 기사를 보내주면 크빈삼 도서관에서도 아카이빙을 반드시 하겠다”고 약속했다.
예테보리=글·사진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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