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원기 감독은 공정한 기회 믿은 제자들의 땀을 짓밟았다

정철우 2021. 9. 18.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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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눈 앞의 1승을 챙기려다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신뢰의 위기가 찾아왔고 리더십에도 상처를 입게 됐다. 스승으로서 바른 길도 제시하지 못했다.

한현희와 안우진을 쓰기로 결정한 홍원기(48) 키움 감독 이야기다.

홍원기 키움 히어로즈 감독이 16일 징계 중인 한현희, 안우진의 1군 복귀 계획을 밝혔다. 사진=천정환 기자
홍원기 감독은 지난 16일 고척 한화 이글스전에 앞서 현재 징계 중인 한현희(28), 안우진(22)을 1군에 부르겠다는 뜻을 밝혔다.

홍 감독은 "한현희, 안우진은 징계가 끝나면 1군 선수단에 합류시키려고 한다"며 "최근 일주일 동안 끊임없이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다. 두 선수를 기용하지 않겠다는 말을 번복하게 돼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한현희, 안우진은 지난 7월초 수원 원정 기간 중 숙소를 무단 이탈한 뒤 서울의 한 호텔에서 외부인들과 술자리를 가진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KBO는 두 사람에게 36경기 출장 정지, 제재금 500만 원의 철퇴를 내렸다. 키움 구단도 한현희에게 15경기 출장정지와 벌금 1000만 원, 안우진에 벌금 500만 원의 자체 징계를 결정했다.

홍 감독은 이에 그치지 않고 지난달 10일 한현희, 안우진의 징계에 관계없이 잔여 시즌 두 사람을 그라운드에 내보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토종 선발투수 두 명이 한 번에 이탈하며 전력에 큰 타격을 입었지만 일탈 행위에 대한 명확한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홍 감독과 키움은 한 달 만에 한현희, 안우진을 다시 1군에 부르겠다고 말을 바꿨다. 안우진의 경우 KBO 징계가 해제되는 오는 23일부터 1군 콜업이 가능하다.

홍 감독은 '성적 때문에 두 선수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 부인은 못하겠다"라고 답했다. 가을 야구를 위해서 수많은 비판과 따가운 시선이 뒤따르더라도 모두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팀의 모든 구성원들이 가을 야구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데 내 욕심만 앞세워 두 선수를 기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홍 감독은 하나만 알고 둘은 알지 못했다. 이번 결정 번복으로 자신이 잃게 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한 생각은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일단 홍 감독은 신뢰를 잃었다. 더 이상 홍 감독이 하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어졌다. 언제든 말 바꾸기가 가능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깊게 박히게 됐다.

한 팀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치명적인 약점이 될 것이다. 그의 말을 선수들도 믿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밝힌 칭찬도 뒤에선 다른 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홍원기 감독이다. 그가 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 하는 말들을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스승으로서 제자들에게 옳은 길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제시도 하지 못했다.

키움은 한현희 안우진만의 팀이 아니다. 그 둘이 빠져 나가면 누군가는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활용될 수 있다. 묵묵히 기회를 기다리며 훈련 해 온 또 다른 키움 선수들에게는 자신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홍 감독은 그 기회를 봉쇄하고 말았다. 홍 감독에게는 한현희 안우진만 제자가 아니다. 그 자리를 메울 수 있는 대안 선수들 또한 그의 제자다.

하지만 홍 감독은 대안이 될 수 있는 선수들에 대한 불신을 보였다. 지금껏 흘린 땀이 헛되었다는 것을 알려준 셈 밖에 안됐다.

그것도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선수들이 비웠던 자리였다. 프로야구 선수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때 어떤 대가를 받게 되는지 교훈을 삼을 수 있는 기회였다.

홍 감독은 이런 기회마저 걷어차 버렸다. 앞으로 선수들에게 어떻게 프로야구 선수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고 가르칠 것인지 생각은 해봤는지 모를 일이다.

이번 결정으로 홍 감독은 실력 있는 몇몇 선수들에 이끌려 야구 하는 감독으로 낙인 찍히게 됐다. 대외적인 이미지는 두 번째 문제다.

선수들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하는 선수들 보다 이미 성과를 입증한 몇몇 엘리트 선수에게만 의존하겠다는 뜻을 만천하에 알린 셈이 됐다.

더 이상 키움에서 기회와 공정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게 됐다. 야구에만 매달려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길이 열릴 수 있다고 참고 기다리며 땀 흘려 온 선수들을 배신했다.

그 어떤 위기 보다 심각한 신회의 위기를 자초한 셈이다.

홍 감독은 "팀의 구성원들이 포스트시즌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랬다면 더욱 공정하게 일을 처리했어야 했다. 구성원들이 최선을 다한 것은 한현희 안우진이 빠진 자리를 메우기 위해 흘린 땀이었다. 그들을 쓸 수 없다는 생각에 더 처절하게 물고 늘어진 것이었다.

홍 감독은 지금까지 키움 선수들이 헌신하며 만들어 온 분위기를 한 방에 걷어찼다. 한 팀을 이끄는 리더로서 최악의 선택을 한 것이다.

이번 결정은 홍 감독의 지도자 커리어 내내 따라 다닐 것이다. 이렇게 무너진 신뢰는 다시 회복하기 대단히 어렵다. 외부의 시선이 아닌 내부의 땀을 외면했다는 것이 가장 큰 실수였다.

선수들이 따르지 않는 감독이 롱런 햇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홍 감독에게 딸린 식구는 한현희 안우진만이 아닌 100여 명이 훌쩍 넘는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말았다. 그 대가는 대단히 아프게 돌아올 것이다.

[정철우 MK스포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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