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의 '파격 실험', 이번에도 늦은 걸까
경직된 조직·기업 문화 변화 역할..힘 실을 듯
외부 시선 기반 내부 변화 절실..향후 행보 주목
[주간유통]은 비즈니스워치 생활경제팀이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들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주간유통]을 보시면 한주간 국내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벌어진 핵심 내용들을 한눈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편집자]
롯데와 롯데자이언츠의 공통점
미리 고백하자면 저는 롯데 팬입니다. 롯데자이언츠를 프로야구 원년부터 좋아했습니다. 아니, 좋아해야 했습니다. 아버지의 강압(?)에 못 이겨 당시 MBC청룡을 떠나 롯데자이언츠로 갈아탔습니다. 야구 좋아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롯데자이언츠 팬이 된다는 건 참 힘든 일입니다. 한화 팬분들을 두고 '보살'이라고들 하시지만 롯데도 만만치 않습니다.
아버지의 강압과 어린이 회원에 가입시켜 주신다는 사탕발림에 속아 시작한 롯데 팬질이 이제 저희 아이까지 넘어갔습니다. 네, 3대째 롯데팬입니다. 주변에서 다른 팀을 응원하는 분들은 저를 두고 혀를 끌끌 찹니다. "왜 그렇게 힘든 길을 사서 가느냐"고요. 이젠 인이 박혀 떠나지도 못합니다. 그저 잘 하기만을 기원할 뿐이죠. 혹시 연승이라도 하면 깜짝 놀랍니다. 역전패 당하면 그럼 그렇지 합니다.
제목을 저렇게 달아놓고 왜 뜬금없이 야구 이야기냐 하실 겁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롯데그룹의 최근 행보가 롯데자이언츠의 행보와 상당 부분 비슷하다고 느껴져서입니다. 롯데자이언츠가 매년 하위권을 전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밸런스'가 맞지 않아서였습니다. 투수 쪽이 좋으면 타격이 좋지 않습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많았고요. 아울러 늘 잠재력이 큰 신인들을 영입해도 희한하게 1군에만 올라가면 힘을 못썼습니다.
롯데그룹이 그렇습니다. 늘 타이밍이 늦습니다. 남들이 치고 나갈 때 주춤합니다. 뒤늦게 치고 나가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하지만 시장은 이미 선두주자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내부적으로 신사업 진출과 관련해 공격과 수비에 대한 밸런스가 맞지를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늘 뒤처집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우수한 인재들이 롯데를 떠나는 일이 많습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지적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지나친 신중론이 '독(毒)'이 됐다
롯데그룹의 한 고위 관계자는 "우리도 공격적으로 사업을 진행해야 할 때는 거침없이 몰아친다. 과거 롯데그룹이 성장해온 배경을 살펴보면 그런 부분들이 많았다"며 "하지만 기업 문화 자체가 신중하다 보니 최근 들어서는 그러지를 못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지나치게 신중을 기하다가 기회를 놓쳤다는 것을 우리도 잘 안다. 내부적으로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도 많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유통업계에서 롯데의 위상은 과거에 비해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급변하는 소비 트렌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내부 의사결정 밸런스가 맞지 않으면서 실기(失期)한 경우가 많다는 분석입니다. 사업 영역을 확대, 보강할 기회가 많았음에도 주저하다 놓친 경우가 많아서입니다.
물론 롯데는 여전히 국내 유통업계를 대표하는 기업인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최근의 행보는 많은 아쉬움을 남깁니다. 롯데에서는 최대한 보수적인 시각에서 면밀히 검토한 결과라고 항변합니다. 신중하게 접근했다는 이야기죠.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좀 다릅니다. 특히 내부에서도 최근 롯데의 움직임에 대해 답답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롯데가 지나치게 몸을 사린다는 평가가 대부분입니다.
롯데가 이처럼 박한 평가를 받는 데에는 신세계와 대비되고 있는 영향도 큽니다. 신세계는 최근 잇따라 대형 M&A(인수·합병)을 성공시키면서 유통업계의 중심으로 주목받았습니다. 더불어 신사업에 대한 확장도 거침없습니다. 신세계가 보여주고 있는 행보의 핵심은 소위 '계산이 서는' 전략이라는 점입니다. 롯데와는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그러다 보니 롯데가 상대적으로 더 위축돼 보이는 부분도 있을 듯싶습니다.
움직이기 시작했다
롯데는 최근 파격적인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71년생의 비교적 젊은 외부 인사를 사장으로 영입했습니다. 올해 초 나영호 이베이코리아 전략기획본부장을 롯데ON 대표로 영입한 데 이어 두 번째 파격 인사입니다. 롯데는 롯데지주 내에 디자인경영센터를 신설하고 초대 센터장으로 배상민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를 사장으로 선임했습니다.
눈여겨볼 부분은 이 디자인경영센터의 역할입니다. 얼핏 들으면 롯데그룹의 디자인과 관련된 사안을 총괄하는 곳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 디자인경영센터의 역할은 그 이상입니다. 롯데는 "디자인경영센터는 제품이나 서비스에서의 디자인 혁신은 물론, 창의적인 조직문화 강화 및 기업 전반의 혁신을 가속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제품과 서비스의 디자인뿐만 아니라 조직 문화와 기업 혁신을 진두지휘하는 곳입니다. 이른바 '소프트 파워'를 강화하겠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롯데가 늘 부족한 부분으로 지적됐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젊은 외부 인사를, 그것도 기업 사이드의 경험이 없는 인사를 이런 자리에 앉혔다는 것은 롯데가 내부적으로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번 인사는 신동빈 회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배 교수를 오랜 기간 설득해 영입했다는 후문입니다. 그만큼 이 부분이 절실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롯데가 이처럼 외부 인사 영입에 공을 들이는 것은 무겁고 고착화된 롯데의 기업 문화를 바꿀 새로운 시선이 필요해서입니다. 과거의 성공 방식만으로는 이제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늦었지만 이제야 깨달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음이 중요하다
파격 실험이 아름답게 매조지되기 위해서는 결과가 좋아야 합니다. 결과가 좋지 않다면 말 그대로 실험에 그칠 뿐입니다. 따라서 신임 배 센터장에게는 상당한 전권이 위임될 것으로 보입니다. 단순히 기업 문화를 변화하기 위한 자문 역할이 아닌 실질적으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힘이 부여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신 회장과 롯데가 배 센터장에게 거는 기대도 클 겁니다.
롯데의 기업 문화를 고려하면 내부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때 외부에 있다가 롯데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롯데 내부의 복잡성은 혀를 내두를 정도"라면서 "위와 아래는 물론 조직과 조직 간의 이해관계가 파편화돼있어 도무지 하나로 된 힘을 낼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외부의 시각으로 그동안의 구습(舊習)을 깨려 하면 습관적으로 방어기제가 작동해 결국 현실화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습니다.
배 센터장의 첫 임무는 아마 이런 롯데 내부의 방어기제를 허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겁니다. 그렇지 못하면 롯데의 변화는 또다시 지연될 뿐입니다. 롯데는 최근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늦었지만 한샘 인수전에 참여해 리빙 분야를 강화키로 했습니다. 더불어 헬스케어팀, 바이오팀을 신설하고 여기에 외부 전문가를 영입해 새로운 먹거리 찾기에 본격적으로 나섰습니다. 긍정적인 움직임입니다.
롯데자이언츠의 별명은 '봄데'입니다. 봄에 열리는 시범경기에는 1위를 달리다가 실제 레이스에서는 늘 하위권을 전전하는 것을 빗댄 말입니다. 롯데그룹도 마찬가지입니다. 파격 실험으로 시선을 끄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이제는 보여줄 때입니다. 늘 한발 늦어서는 앞서갈 수 없습니다. 늦는 것이 계속되면 습관이 됩니다. 습관이 계속되면 인이 박힙니다. 그때는 더 이상 바꿀 수 없습니다.
정재웅 (polipsycho@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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