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배불뚝이 사내가.." 베트남 아내와 고창 사는 농사꾼 시인

이기문 기자 2021. 9. 18.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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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국 시인, 시집 '배불뚝이 항아리 사내가 사는 우리 동네' 펴내
고창군 미동마을에 선 김명국 시인/김명국씨 제공

전북 고창군 대산면 미동마을에 사는 시인 김명국(49)씨가 시집 ‘배불뚝이 항아리 사내가 사는 우리 동네’(시인동네)를 펴냈다. 그는 베트남 아내와 14년째 살며 복분자와 잔디 농사를 짓는다. 제목 ‘배불뚝이 항아리 사내’는 그가 시골에서 본 젊은 사람이다. 노인이 대부분인 시골에서 배 나온 또래가 경운기를 몰고 다니면서 이 동네 저 동네 비닐 수거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었다. 그는 “배불뚝이 항아리 사내는 내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맞다고 할 수도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도시에서 일이 잘 안돼서 시골에 온 사람들. 어쩔 수 없이 시골에서 사는 사람들. 제가 주변에서 봤던, 나와 비슷한 사람들입니다.” 20 가구가 채 못 되는 미동마을 주민 대부분이 80대. 김씨보다 어린 사람은 2명 있다. “한 명은 몸이 안 좋고, 다른 한 명은 아버님 돌아가시면서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고향에 왔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시인을 꿈꿨다. 대학도 국문학과에 진학했다. 26살 때인 199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로는 밥벌이가 안 된다는 생각에 교사 시험을 준비했지만, 번번이 미끄러졌다. 그렇게 고향에 왔다. “원래 시골에서 태어났으니까. 주변에서 보고 듣는 게 자연과 농사잖아요. 친척분들 나이 드시면서 일하시는 모습도 보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시골에 터잡고 일하게 됐습니다. 시골에서 사는 게 나쁘지 않습니다. 상황에 맞춰서, 자기 경제력에 맞춰서 충분히 살 수 있습니다.” 그에게 시골이란 “자기 나름의 주관이 있다면 충분히 멋있게 살 수 있는 곳.”

오래도록 시를 쓰지 않다 2007년 같은 마을에 살던 베트남 이주 여성의 소개로 지금 아내와 결혼하면서 펜을 다시 잡았다. 2014년 첫 시집 ‘베트남 처갓집 방문’을 냈다. “국제결혼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저도 인식이 좋지 않았어요. 세상에, 결혼 안 하고 말지. 그런데 주변에 저보다 일찍 국제 결혼해 사시는 분들이 행복하게 사셨어요. 아, 양면이구나. 좋은 면도 있다.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게 산다. 그렇게 내 모습이 됐습니다. 시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번 시집은 농촌이 처한 현실과 베트남 아내를 둔 시골 농사꾼의 생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농사를 망친 시인은 ‘변소간에서 쪼그려 앉아 똥 싸듯 파 다듬으며’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본다. ‘결혼하고 한국에 와서 애도 낳고/ 벌써 삼 년이 넘었다는데/ 아직 한 번도 못 보내준 친정/ 고향 가는 비행기일까(앞마당 中)’ 마침내 베트남 친정집 방문을 앞둔 아내는 분주해진다. ‘쌀독 뚜껑도 찬장도 살펴보고/ 잘 돌아가는 냉장고 문도 괜히 열어보고는/ 아내는 하나라도 뭐 더 챙겨줄 게 혹시 없을까,/ 마치 그런 눈치다’ ‘환전하러 읍내 농협에 들러 풀어놓은 아내의 돈 보따리/ 아무리 세어 봐도 생각보다 액수가 좀 많다(낌새 中)’ 시인은 알면서 모르는 척 모르면서 아는 척, 아내와 함께 삶을 잇는다. 그는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뭘 해도 예쁘지 않겠는가만 젠장, 콩깍지가 씌었는지 벌써부터 웃는 게 예뻐 보인다.(첫 만남 中)’

김씨는 “아내는 귀화했다고 해도 틀림없는 베트남 사람”이라며 웃었다. “아내는 밭에 나갈 때. 풀을 뽑을 때 꼭 베트남 삿갓 모자를 쓰고 일을 합니다. 다른 편한 모자가 있는데도 왜 이 모자를 쓰느냐 물어보지 않았어요. 제 나름대로 ‘아, 이게 베트남인이구나’란 생각을 합니다. 반대로 갑자기 한국으로 와 한국인 남편과 살게 된 아내는 얼마나 이상한 것투성이겠어요? 서로 두루뭉술하게 삽니다. 농사 함께 지으면서 웃고 싸우고.”

농사를 하며 틈나는 시간에 시를 쓴다. 복분자 농사가 한창 바쁜 6월엔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저녁 8시까지 일한다. “녹초가 되어서 뭘 못써요. 겨울 농한기 때 주로 시를 쓰려고 합니다. 몸 피곤하다는 건 변명이고, 쓰려고 노력은 하고 있어요. 소 밥 주다 쓰고, 농사 틈틈이 멍하고 앉아 있을 때 시 생각나면 좀 쓰고.”

그렇게 계속 쓴다. “죽으면 돈은 안 남을 것 같고. 농사짓는 사람인데 제 소유 땅이 아직도 없습니다. 차라리 시를 써서 시집을 남기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중학생이 된 아들은 시인 아빠를 대단한 사람으로 알아요, 아무것도 아닌데. 그래도 아이에게 아버지에 대한 이런 생각이 남았으면 좋겠어요. 농사꾼이자 시인이었던 아빠는, 조금은 평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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