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만큼 성숙.. 22세 강백호의 진화는 '현재진행형'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2021. 9. 1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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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올림픽 '더그아웃 껌 씹기' 태도 논란으로 마음고생.."무조건 내 잘못" 인정 뒤 불방망이 더 뜨거워져

(시사저널=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약점이 없다." 한 야구 해설위원이 강백호(kt 위즈)에 대해 한 말이다. 실제로 강백호의 올 시즌 기록을 보면 놀랍다. 2020 도쿄올림픽 때 팀 패배를 앞두고 더그아웃에서 껌을 씹는 모습이 방송 카메라에 잡혀 태도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단지 그 장면 하나만으로 '야구선수' 강백호를 폄훼할 순 없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그는 아직 프로 데뷔 4년 차, 스물두 살의 어린 선수다. 반성하고 깨우치고 배우고 성장할 그런 선수라는 얘기다.

ⓒ연합뉴스

메이저리그 진출 노리며 타격 폼도 바꿔

9월7일 현재 강백호는 각종 타격 지표에서 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한때 4할을 넘보던 타율은 부동의 1위(0.386)이고, 최다 안타(134개)도 1위다. 경기당 평균 1.4개의 안타를 쳐내고 있을 정도로 놀랍다. 타점에서도 삼성 라이온즈 호세 피렐라, NC 다이노스 양의지와 경쟁 중이다.

강백호의 세부 기록을 살펴보면 "약점이 없다"는 말의 뜻을 알게 된다. 강백호는 어떤 유형의 투수와 상대해도 밀리지 않는다. 좌투수, 우투수, 언더핸드 투수 상대 타율이 각각 0.364, 0.414, 0.333에 이른다. 구질별로 봐도 비슷하다. 속구·슬라이더·커브·체인지업 등 모든 구종에 대해 3할 이상의 타율(스태티즈 기준)을 기록 중이다. 대처능력이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타구를 날리는 스프레이 히터여서 수비 시프트(수비 변형)도 통하지 않는다.

9개의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는 모든 공에 자신감이 있다. 좌우 낮은 코스의 공에만 2할7푼대 타율을 기록할 뿐 스트라이크존 7개 구역을 통과하는 나머지 공들에 대해서는 전부 4할 이상의 타율을 보이고 있다. 사정권에 들어온 공에 대해서는 빠른 배트 스피드를 이용해 인정사정없이 방망이를 휘두른다. 투수로서는 던질 곳이 없는 타자인 셈이다. 출루율이 1위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홈런 수(13개)가 다소 처지는데, 현재 선두를 달리는 팀 성적을 위해 후반기 들어 홈런보다는 콘택트에 집중하는 타격을 보이고 있는 점이 크다. 강백호는 올림픽 이후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던, 앞발을 들고 치는 레그킥(외다리타법)을 버렸다. 대신 발뒤꿈치만 살짝 드는 토텝 타격으로 변했다. "도쿄올림픽 때 다른 선수들을 보고 배운 게 많아서"라고 한다. 실제로 그의 타격을 지켜본 전문가들은 "강백호가 자신은 홈런 타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발사각부터 달라졌다"고 평한다. "리그 교타자 중 최고로 꼽히는 이정후(키움 히어로즈)와 닮아가는 면이 있다"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또 다른 전문가는 "강백호가 장차 메이저리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레그킥을 버린 것 같다.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도 올해 레그킥을 수정해 지금 성공했다"고 추측했다.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또한 미국 진출 뒤 1할대 타율에 허덕이다 레그킥을 버리면서 반등했다. 강백호는 몇몇 인터뷰를 통해 "메이저리그 진출이 꿈"이라고 밝힌 바 있다.

후반기 들어 위기는 있었다. '더그아웃 껌 씹기'로 입길에 오르면서 멘털적으로 흔들린 면이 없지 않다. 도쿄올림픽 야구 대표팀의 저조한 성적(4위)과 맞물려 마녀사냥이 이어지며 22세 나이에는 감당하기 힘든 비난을 받았다. 이전에도 지나친 승부욕 탓에 구설에 오른 적이 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막내 구단 프랜차이즈 스타로 팬 서비스에도 정성을 다해 '연쇄 사인마'로도 불리는 그다. 강백호는 뜻하지 않은 태도 논란에 "신중하게 행동하지 못했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허탈하고 아쉬워서 멍한 모습이 나왔다"면서 "그래도 무조건 내 잘못이다. 한 사람으로서 팬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게 더 노력하겠다"고 사과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치명적인 부상 위험도 있었다. 8월31일 대전 한화 이글스전에서 수비 도중 최재훈의 스파이크에 손이 밟혔는데 천만다행으로 단순 찰과상만 입었다. 1cm 정도 차이로 스파이크 징을 피했는데 만약 징에 찍혔다면 강백호는 인대 등의 손상으로 시즌 아웃될 수 있었다. 강백호는 9월3일 키움전 대타로 시작해 정상적으로 경기에 나서고 있다.

강백호의 무르익은 방망이로 막내 구단인 kt 위즈는 2013년 창단 뒤 처음으로 정규리그 우승 및 한국시리즈 직행을 겨냥하고 있다. 만약 kt가 1위로 정규리그를 마친다면 MVP도 그의 몫이 될 가능성이 크다. MVP 투표는 포스트시즌이 열리기 전 진행되기 때문에 정규리그 성적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kt의 정규리그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강백호 또한 MVP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된다.

창단 후 팀 첫 정규 우승과 개인 MVP 목표 향해 순항 중

출범 40주년을 맞은 KBO리그에서 신인왕을 거쳐 정규리그 MVP까지 거머쥔 사례는 역대 2차례밖에 없었다. 류현진(미국 토론토 블루제이스)이 2006년 신인상과 MVP를 동시 수상했고, 2012년 신인왕을 받았던 서건창(현재 LG 트윈스)이 2년 뒤 MVP로 선정됐다. 역대 세 번째 기록에 강백호가 다가서고 있는 셈이다.

사회인야구를 했던 아버지를 따라 5~6세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던 강백호는 2018년 데뷔 뒤 계속 성장해 왔다. WAR(대체 선수 대비 기여도) 추이를 보면, 144경기를 기준으로 했을 때 1.437(2018년)→4.606(2019년)→5.036(2020년)→7.044(2021년·추정)로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천재적인 면 때문에 아마추어 시절부터 투수·야수·포수 가리지 않고 기용됐던 터라 수비가 약한 측면이 있지만 이를 공격력으로 상쇄하고 있다. 강백호는 프로에 와서도 한 차례 투수로 나서 공을 던진 적이 있는데, 당시 1이닝 1볼넷 무실점을 기록했다. 오타니처럼 한국에서도 이도류(투타 겸업)로 뛸 수 있는 선수가 있다면 0순위는 아마 강백호일 것이다.

'강백호'란 이름 석자는 농구 만화 《슬램덩크》 주인공으로 더 유명하다. 괴짜 같던 그는 스스로를 '농구 천재'로 불렀다. '야구 천재' 강백호는 어떨까. 분명한 것은, 정규리그 최고의 별이 되는 순간이 조금씩 가시화한다는 사실이다. 성장통 끝에 진짜 '천재'라는 것을 증명한 농구의 강백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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