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N사피엔스] 푸딩 같기도, 태양계 같기도..원자모형의 진화
원자론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의 데모크리토스와 레우키포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가 대략 기원전 5세기 무렵이다. 현대적인 원자론이 다시 등장한 것은 1803년이었다. 영국의 존 돌턴은 원자론을 이용해 화학현상을 성공적으로 설명했다. 그럼에도 특히 물리학자들은 19세기가 지나도록 원자의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자는 애초에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자연의 최소단위로 도입되었다. 그래서 이름도 ‘아톰(atom)’이다.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최소단위라는 말은 다시 말해 원자가 하나의 점입자로서 그 안에 어떤 하부구조를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영국의 물리학자 조지프 존 톰슨이 1897년 전자를 발견하자 상황이 바뀌었다. 전자는 음의 전기를 띠고 있으며 그 질량은 가장 가벼운 원자인 수소보다 약 2000배 가까이 가벼운 것으로 추정됐다. 또 전자는 다른 모든 원소에 공통으로 들어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이 모든 결과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원자는 이제 깨질 수 있으며 그 속에 음의 전기를 가진 전자가 원자의 구성요소 중 하나로 존재한다. 여기서 새로운 궁금증이 생긴다. 전자는 원자 속에서 어떻게 존재할까? 원자는 전체적으로 전기적인 중성인데, 전자가 음의 전기를 갖고 있다면 이를 상쇄할 양의 전기는 원자 속 어디에 있을까? 이 모든 것은 원자의 내부구조에 관한 이야기이다. 원자가 점입자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예컨대, 톰슨이 발견한 전자는 21세기 지금까지도 여전히 어떠한 하부구조도 갖고 있지 않은 점입자로 여겨지고 있다. 톰슨이 전자를 발견한 뒤 과학자들은 그때까지 알려진 결과를 종합해서 원자의 내부구조가 이러저러할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원자모형이다.
전자를 발견한 톰슨은 자기만의 원자모형을 제시했다. 음의 전기를 가진 새로운 입자(전자)를 발견했으니 전기적으로 중성을 맞추는 일이 시급했다. 톰슨의 모형은 비교적 단순했다. 원자 전반에 걸쳐 양의 전기가 골고루 퍼져 있고 전자가 곳곳에 음의 전기를 품고 박혀 있다. 이는 마치 푸딩 속에 건포도가 박혀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서 톰슨의 원자모형은 푸딩모형이라고도 한다. 톰슨의 모형에서는 원자 속에서 양의 전기를 띠고 있는 구성요소가 무엇인지 애매하다. 원자 전체는 푸딩과도 같고 그 안에 양의 전기가 골고루 분포해 있기 때문이다.
톰슨의 원자모형을 무너뜨린 것은 그의 제자였던 어니스트 러더퍼드였다. 러더퍼드는 이미 1908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었다. 물리학자로서 러더퍼드가 역사에 이름을 남긴 것은 그 이듬해 한스 가이어와 어니스트 마스덴과 함께 진행한 실험 때문이었다. 이들의 실험은 얇은 금박을 향해 알파입자를 쏘는 것이었다. 알파입자는 헬륨의 원자핵으로서 양성자 둘과 중성자 둘로 이루어져 있다. 당시에는 중성자의 존재도 알려지지 않았을 때였다. 방사선을 연구하던 도중에 X선과는 다른 종류의 방사선이 있음을 규명하고 여기 알파선, 베타선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러더퍼드였고 알파선이 헬륨 원자핵임을 알아낸 것도 러더퍼드였다. 따라서 알파선은 러더퍼드에게 친숙한 물건이었다.
실험은 간단했다. 금박을 통과한 알파입자가 어디로 가는지 그 경로를 추적하는 것이다. 실험장치 주변에는 황화아연판을 둘러서 여기 알파입자가 부딪히면 섬광이 생겨 그 존재를 알 수 있게 했다. 실험 초반에는 별로 특이한 사항이 없었다. 대부분의 알파입자들은 금박을 지나 원래 진행경로와 크게 다르지 않은 길을 따라 황화아연판에 흔적을 남겼다. 그러던 어느 날 러더퍼드는 가이거에게 진행방향과 크게 벗어난 각도에서 알파입자가 발견되지는 않는지 알아보자고 제의했다. 며칠 뒤 가이거가 러더퍼드에게 달려와 보고한 바에 따르면 금박의 후방, 즉 알파입자 진행방향의 정반대로 튀어나간 알파입자를 관측할 수 있었다. 이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러더퍼드는 당시 이 상황에 대해 화장지에 대고 대포를 쏘았는데 마치 대포가 화장지에 맞고 뒤로 튕겨난 것만큼이나 황당하다고 논평했다. 물론 그렇게 후방으로 튕겨 나오는 (후방산란) 알파입자의 개수가 많지는 않아서 약 2만개 중 하나 꼴로 후방으로 튕겨났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러더퍼드는 이 결과를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 1년 정도 노력했다. 우선 그의 스승이었던 톰슨이 제시한 푸딩모형으로 이 결과를 설명할 수 있을까? 푸딩모형에서는 알파입자가 후방으로 튕겨 나오기 위해서 어찌되었든 전자와 상호작용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전자는 알파입자보다 수천 배나 가볍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볼링공을 굴렸는데 탁구공에 맞고 다시 뒤로 튕겨왔다는 얘기이다. 정말로 포탄이 화장지에 맞고 되튕긴 것과도 같다. 따라서 알파입자가 전자와 한 번의 충돌로 후방산란을 겪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남은 가능성은 푸딩 안에 골고루 퍼져 있는 양전하와 알파입자가 상호작용하는 경우이다. 이때는 알파입자와 양전하가 여러 번에 걸쳐 전자기적인 상호작용을 주고받을 것이다. 이를 '복합산란'이라 한다. 러더퍼드는 자신만의 새로운 계산법을 도입해 복합산란으로 알파입자가 후방으로 튕겨나갈 확률을 계산해 보았다. 그 결과는 알파입자가 어떤 입자와 단 한 번 산란하는 경우, 즉 단일산란할 확률보다 훨씬 작았다. 그러니까 가이거가 보고한 후방산란의 결과는 톰슨모형과 잘 맞지 않았다. 후방산란을 설명하려면 알파입자가 원자 안에서 무언가와 단일산란의 과정을 겪어야만 했다.
만약 알파입자가 단일산란을 겪었다면 원자 속의 양전하는 푸딩모형에서처럼 원자 속 여기저기 곳곳에 골고루 흩어져 있으면 안 된다. 그런 분포는 복합산란을 뜻하기 때문이다. 단일산란이 일어나려면 그 모든 양전하가 어딘가에 집중돼 있어야 한다. 또한 무거운 알파입자가 한 번의 산란으로 후방으로 튕겨 나오려면 양전하가 집중된 그 뭔가는 굉장히 무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알파입자의 진행경로를 크게 바꾸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논의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원자 속에는 음의 전기를 가진 전자도 있지만 양의 전기와 질량이 집중된 새로운 존재가 있다. 이것이 바로 원자핵이다. 원자핵은 원자의 대부분의 질량을 갖고 있으며 전자가 갖고 있는 음의 전기를 상쇄할만큼의 양전기를 띠고 있다. 알파입자는 원자핵과 한 번의 단일산란으로 후방으로 되튀어 나갈 수 있다. 전자나 원자핵이 원자 속에서 차지하는 공간은 대단히 작아서 원자 내부는 거의 텅 비어 있다. 이 때문에 금박에 쏜 대부분의 알파입자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그냥 통과해 버린다. 가장 간단한 수소원자의 경우 전체 원자의 크기에서 원자핵이 차지하는 정도는 십만 분의 일 정도에 불과하다. 대략적으로 말해서 축구경기장을 원자라 하면 경기장 속의 모래알 정도가 원자핵에 해당하는 셈이다. 원자는 텅 비어 있다.
러더퍼드가 원자핵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이 상황을 엄밀한 수학적인 계산을 통해 복합산란과 단일산란의 경우를 정량적으로 비교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러더퍼드가 도입한 개념이 유효산란단면이라는 양이다. 알파입자가 원자핵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지나가면 둘 사이의 전자적 반발력이 약하기 때문에 원자핵이 알파입자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며 따라서 알파입자는 원래의 진행방향을 거의 바꾸지 않고 지나간다. 반대로 알파입자가 원자핵에 아주 가까이 근접해서 지나가면 원자핵의 전자기력을 훨씬 더 크게 느낄 것이고 그 결과 진행방향보다 큰 각도로 튕길 가능성이 높다, 훨씬 더 근접해서 지나가면 후방으로 튕겨나가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여기서 알파입자가 원자핵을 향해 입사하는 경로를 직선으로 연장했을 때 그 직선과 원자핵의 최단거리를 충격변수(impact factor)라 한다. 알파입자의 충격변수가 클수록 원자핵과의 상호작용은 작아져 원자핵에 의한 산란각도는 크지 않을 것이다. 반면 충격변수가 작으면 원자핵과의 상호작용이 커져서 알파입자의 산란각도는 커질 것이다. 따라서 알파입자가 진행방향에 대해 특정 각도 이상으로 산란하기 위해 필요한 최대한의 충격변수가 존재할 것이다. 즉, 충격변수가 이 값 이하라면 알파입자는 어떤 각도 이상으로 튕겨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양상은 오로지 원자핵으로부터 충격변수가 얼마인가에만 의존한다. 따라서 원자핵을 중심으로 해서 충격변수를 반지름으로 하는 가상의 원을 그렸을 때 알파입자가 그 원 안에만 들어가게끔 원자핵을 향해 입사하면 알파입자는 특정한 각도(그 원의 가장자리로 진입했을 때 튕겨나는 각도)보다 더 큰 각으로만 산란하게 될 것이다. 이 가상의 원을 유효산란단면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러더퍼드의 경우 알파입자가 135도 이상으로 산란되는 유효단면적은 90도 이상으로 산란되는 유효단면적의 0.00196배에 머문다.
유효산란단면적은 아주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당구를 칠 때 내공과 과녁공이 너무 멀면 두 공은 충돌하지 않는다. 내공이 과녁공에 맞으려면 내공의 중심이 과녁공의 중심으로부터 특정한 거리(충격변수) 이하로 가까워져야 한다. 그 거리는 직관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당구공의 반지름의 두 배이다. 즉, 내공과 과녁공의 중심거리가 두 공의 반지름의 합보다 더 작아야 충돌이 일어난다. 따라서 이 경우 충돌이 일어나기 위한 유효산란단면은 당구공의 반지름의 두 배, 즉 당구공의 지름을 반지름으로 하는 원이다. 알파입자의 산란실험에서는 알파입자와 원자핵 사이의 전자기력 때문에 이처럼 단순하지는 않다. 유효산란단면이라는 개념은 러더퍼드 이후 현대물리학에서 대단히 유용하고도 중요한 수단으로 역할을 해 왔다.
러더퍼드의 원자모형에서는 무거운 원자핵이 원자의 한가운데에 있고 전자가 원자핵과의 전자기력에 의존해 원자핵 주변을 돌고 있다. 전자의 원운동이 가능한 이유는 전자와 원자핵이 서로 당기는 전자기력이 전자의 원심력과 균형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 모형은 태양계와 무척 닮았다. 태양계에서는 전자기력 대신에 중력이 작용한다. 그래서 러더퍼드의 원자모형을 태양계 모형이라 부르기도 한다. 여기에는 확실히 매력적인 요소가 있다. 가장 큰 스케일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가장 작은 스케일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면 누구라도 이런 구조의 효용성에 매력을 느낄 것이고 그 속에 숨어 있는 훨씬 더 근본적인 요소를 추구할 수도 있다.
불행히도 전자기력은 중력과 같지 않다. 그 때문에 태양계에서 일어나는 일이 원자 속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게다가 러더퍼드의 모형은 원자의 성질을 관측한 결과와도 잘 맞지 않았다.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러더퍼드의 원자모형은 원자를 설명하는 고전적인 물리학의 한계지점과도 같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면 고전역학을 어떻게든 뛰어넘어야 한다. 즉, 양자역학적인 개념이 반드시 도입돼야 했다.
※참고자료
-《아원자입자의 발견》 스티븐 와인버그, 박배식 옮김, 민음사.
※필자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 교수 jongphil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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