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 100억 있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마약 전과' 9범의 고백

이승환 기자 2021. 9. 18.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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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자들]②'40년 마약 중독자'에서 '재활전도사'로
임상현 경기도 다르크 센터장.."회복은 행복입니다"

[편집자주]중독과 상처, 고통에서 회복돼 다시 출발한 사람들의 드라마, '회복자들'을 만났습니다. 삶의 끝에 내몰린 절망을 희망으로 이겨낸 우리 이웃들입니다.

1일 경기 남양주시에 위치한 마약중독재활센터 경기 다르크(DARC, Drug Addiction Rehabilitation Center)에서 임상현 센터장이 입소자와 대화하고 있다. 2021.9.1/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남양주시=뉴스1) 이승환 기자 = 약물중독재활센터 '경기도 다르크' 임상현 센터장(70)은 마약 전과 9범이다. 17세에 마약을 처음 접한 후 40년 동안 복용을 일삼다가 옥살이를 반복했다.

2009년 말 출소한 그는 "중독에서 회복되자"고 결심했다. 비참하게 사는 가족 때문이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아내는 쓰레기 줍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두 아들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다.

출소 당시 50대 후반이었던 임 센터장에겐 3000만원의 빚이 있었다.

◇"경험을 '약재료'로 중독 지원"

경기도 남양주시에 살던 그는 서울을 오가며 일했다. 한창 때는 하루 4시간 자며 '투잡'을 했다. 오전과 오후에는 남산 유명 돈가스집의 주차장 관리 요원으로 일했다. 밤에는 대리기사 운전대를 잡았다.

그렇게 지냈더니 과거 주치의였던 조성남 현 치료감호소장(64)이 한 가지를 제안했다. "과거의 아픔과 경험을 약재료로 사용해 중독자들의 회복을 돕지 않겠냐"는 것이다. 약물중독 재활센터 다르크 운영을 권한 것이다.

"조 소장님은 제가 20여년전 공주 치료 감호소에 있을 때 주치의였습니다. 출소 후 10년간 약 끊고 성실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센터장을 제안하신 것이죠. 그는 센터 설립 과정에서 물질적 지원을 해줬습니다. 경기도 다르크 후원회장이기도 한 그는 여전히 저의 '멘토'입니다. 일본에 있는 다르크 시설장들도 도움을 주셨고요."

◇"재활센터만 있었다면 망가지지 않았을 것"

다르크는 1985년 일본 최초로 설립된 민간 주도의 마약 중독 회복 시설이다. 현지의 언론과 학계 논문에 소개될 정도로 성공적인 재활지원 모델로 꼽힌다. 일본에는 다르크 시설 85곳이 자리잡은 상태다.

1일 경기 남양주시에 위치한 마약중독재활센터 경기 다르크(DARC, Drug Addiction Rehabilitation Center)의 모습. 2021.9.1/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경기도 다르크는 국내에서 두 번째로 설립된 곳이며 국내 다르크 세 곳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임 센터장은 "40년간 중독자로 살았는데 제대로 된 재활센터만 있었다면 제 인생이 그렇게까지 망가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남양주시에 들어선 다르크는 단독주택의 외관을 하고 있다. 1층에는 치료 상담실이 있고 2층에는 침대 달린 생활관 네 곳이 있다. 입소자 총 10명이 이곳에 머물며 생활하고 있다.

문신 자국이 선명한 20대 청년 두어 명이 임 센터장과 대화를 나눴다. 건장한 체구의 스물네 살 청년 김선호씨(가명)도 이곳에서 재활과 회복 치료를 받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워킹홀리데이(취업 특별비자)를 발급받아 떠난 호주 시드니에서 선호씨는 마약을 처음으로 접했다. 황홀 상태에 빠지지만 환각의 부작용을 일으키는 엑스터시였다.

이후 대마초·코카인·필로폰 등 위험군 마약을 복용했다. 5년 후 귀국했지만 마약은 이미 그를 지배한 상태였다.

◇"사람 죽여라, 죽여라" 환청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검색했더니 '마약 판다'는 게시물이 나타났다. 딜러(판매자)가 올린 글이었다. 딜러와 거래하다가 친해져 함께 마약을 팔았다. 선호씨는 한국에서 약값을 벌기 위해 약을 판매했다.

"'사람 죽여라, 사람 죽여라' 이런 환청이 계속 들렸어요. 커튼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변형되는 환각을 체험했고요. 너무 무서웠습니다. 지금 제 키가 178㎝고 몸무게는 90㎏입니다. 당시 체중이 58㎏까지 빠졌어요. 조현병 진단까지 받았지요. 마약 중독 5년 차가 됐을 때 '미쳤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해 1월 선호씨는 다르크 입소 후 본격 회복에 나섰다. 약물 중독 전문 상담가와 의사, 교수가 매일 이곳을 찾아 선호씨를 포함한 입소자의 재활을 돕고 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Δ인지행동 치료 Δ집단상담 Δ개인상담 Δ음악·운동 치료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약물 중독 외에 도덕·인성 교육도 한다. 임 센터장도 자신의 중독과 회복 경험을 토대로 매일 아침 강의를 한다.

1일 경기 남양주시에 위치한 마약중독재활센터 경기 다르크에서 마약 중독자였던 입소자가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9.1/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선호씨는 다르크에서 마음을 달리 먹었다. 가족과 여자친구가 그에게 재활의 동기를 부여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극복과 회복은 끝끝내 자신의 몫임을 깨달았다.

"사소한 것부터 바꿔야 중독에서 벗어나리라 생각합니다. 입던 옷, 신던 신발, 피우던 담배까지 마약 시작 전 했던 것으로 모두 바꾸고 있습니다. 버려야 새로 채워지지 않겠습니까. 마약과 돈, 과거 집착했던 것들을 버리고 있습니다."

선호씨는 지방의 한 사이버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다. 학창 시절 운동선수였던 그에게 공부는 비교적 낯선 것이다. "뒤늦게 공부하는 열정이 대단하다"고 격려하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환하게 웃는다.

"이왕 공부하는 것 열심히 해서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습니다. 전국의 중독자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선호씨의 휴대전화 카카오톡 프로필에는 '비둘기처럼 순결하게'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수백명 살릴 수 있는 아이"

임 센터장은 입소자들과 생활하며 자신의 끔찍했던 과거를 떠올린다. 그 역시 중독 후유증으로 조현병에 시달렸다. 중독과 회복 모두 경험했기에 그는 중독에서 빠져나오는 법과 회복이 어렵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여기 있는 아이들에게 얘기해줘요. '너희들은 참 대단한 사람'이라고. '나는 20대 때 약 끊을 생각조차 안 했는데 너희는 끊으려 하지 않고 있느냐'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의지를 심어줘야 합니다.

물론 회복 과정은 만만치 않습니다. 아이들의 감정이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몰라요. 갈망을 느끼면 아이들이 한바탕 난리를 칩니다. 그때마다 아이들에게 이곳에 있는 이유를 환기시켜요. '회복하러 왔잖아.'"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임 센터장은 지금 재활 대상자인 입소자들이 앞으로 중독을 막는 재활 지원의 '주체'로 성장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선호가 사회복지사의 꿈을 이루면 수십명, 수백명의 중독자를 살릴 수 있습니다. 경험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조언과 지원은 다를 수밖에 없어요. 약물 회복자야말로 약물 회복 전문가입니다. 경기도 다르크에 와서 많은 분이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때는 행복하지 않고 지금은 행복"

'나는 나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적힌 벽보가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꿈을 생각하며 입소자들이 그린 그림이 1층 강의실에 걸려 있다. 별과 태양, 나무, 하트, 새 모양 등이다.

유흥시설 세 곳을 운영했던 30대 시절 임 센터장은 압구정 한양 아파트에 살았다. 당시 재산은 100억원대였다. 요즘 화폐 가치로는 최소 300억원대일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행복하지 않았고 지금은 행복하다"고 그는 말했다. 임 센터장은 "회복이란 행복이다"고 힘주어 답했다.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센터 일을 하고 있지만 아내와 아들들은 저보고 '멋있다'고 합니다. '아빠 멋있어요' '여보 잘하고 있어요'라고 추어 올리지요. 룸살롱과 성인 디스코 바 등을 운영해 100억원대 재산이 있을 때도 저는 가정에서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약을 끊고서야 사람답고 가장답게 살 수 있었습니다. 나이 칠십 먹은 지금, 저는 행복합니다."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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