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백상 신인상' 최정운 "전도연 선배와 연기해볼 날 오겠죠"
생애 한 번뿐인 신인상, 아무나 쓸 수 없는 왕관을 만 20세의 배우가 받아들었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윤단비 감독)'으로 국내외 영화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배우 최정운이다.
최정운은 지난 5월 열렸던 제57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 부문 여자 신인연기상을 받았다. 생애 처음으로 첫 장편 영화에 참여했고, 당연히 주인공 또한 처음이었다. 지금이야 성인이 됐다지만, 영화 촬영 당시만 해도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에 단편 영화에 출연하며 처음 카메라 앞에 섰고, '남매의 여름밤'에 캐스팅된 것은 연기를 시작한 지 불과 1년 만이었다. 이처럼 거짓말 같은 일들이 한데 모여 만20세에 독립영화계의 주목을 받게 된 배우 최정운이 탄생했다.
'남매의 여름밤'은 여름 방학 동안 아빠와 함께, 할아버지 집에서 지내게 된 남매 옥주(최정운)와동주(박승준)가 겪는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국내 다양한 영화제뿐 아니라 토론토 릴 아시안 영화제·홍콩 아시안 영화제·토리노 영화제·낭트 3대륙 영화제·마르델플라타 국제영화제 등을 휩쓴 작품이다. 지난해 8월 개봉해 관객들에게도 뜨거운 사랑과 호평을 받았다.
최정운은 '남매의 여름밤'에서 사춘기 소녀 옥주를 연기했다. 잔잔한 일상을 담아내면서도 관객의 공감을 얻어낸 이 작품에서 최정운은 옥주 그 자체였다. 구태의연한 칭찬이 아니라, 지금도 어디선가 살고 있을 법한 옥주가 곧 그였다. 자연스러운 생활 연기로 마치 옥주가 등장하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열연을 펼쳤다. 너무나도 '옥주다워서', 많은 관객은 최정운이 중학생 소녀가 아닌 대학생이라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상을 받으며 전혀 떨지 않더라고요.
"사실 긴장도 엄청 많이 하고 떨리기도 많이 떨렸어요. 사실 영화 여자신인상 발표보다 남자신인상 발표가 더 떨리더라고요. 그다음이 여자 부문이라는 생각에 그때 더 떨렸어요. 오히려 여자 부문 발표 때에는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었어요. 수상자 발표하실 때 '남' 이렇게 나오니까 '남매의 여름밤'밖에 없잖아요. 빨리 마스크 벗고 나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0.1초 만에 벗고 무대로 나갔데, 가는 길이 너무 먼 거예요. 우여곡절 끝에 무대에 올라갔는데 앞이 안 보였어요. 앞이 안 보여서 대충 '카메라가 여기쯤 있겠거니' 생각하고 이야기를 했죠. 나중에 TV 화면에 나온 모습을 보니 제가 정면을 절대 안 보고 옆을 보고 이야기하고 있더라고요."
-혹시 못다 한 소감이 있나요.
"조금, 혹시 몰라서 준비를 조금 하고 왔어요. 하하하. 너무 떨려서 아무 말도 못 하고내려올까 봐서요. 꼭 말하고 싶은 분들의 이름은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감독님, 촬영 감독님, 배급사 그린나래 분들이요. 특히 배급사 분들이 영화 개봉하고 시간이 조금 흐른 요즘도 엄청 잘해주세요. 1년이 지났는데도 잘 챙겨주세요. 그래서 꼭 그걸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건 다 잘 이야기했는데, 친구들이 자기들 이야기를 너무 안 해줬다고 엄청 섭섭해하더라고요. 항상 응원해주고 좋아해 주는 친구들에게 고맙다! 이름을 부르기엔 너무 시간이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알아줘! (웃음)"
-당시 후보들이 쟁쟁했죠.
"사실 진짜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당연히 있었지만, '진짜 받을까?'라는 생각이 엄청 컸어요. 시상식 전에 친구들이 꼭 받을 거라고 말해줄 때 정말 감사했는데, 만약에 못 받으면 주변 기대 때문에 속상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가기 전까지 백상에 간다고 이야기를 안 했어요. 당일에서야 주변에 이야기를 좀 했어요. 혹시 못 받으면 저보다 주변에서 더 섭섭해할 것 같아서요."
-영화 속 모습과 드레스 입은 모습이 정말 달라 놀랐어요.
"그런 드레스를 입어볼 경험이 많지 않잖아요. 숍에 가서 메이크업을 받을 기회도요. 정말 재미있었어요. 제일 재미있었던 건 시상식장에 딱 도착했는데, 스크린에서만 뵙던 선배님들이 많이 계셨던 것이에요. 그게 제일 기억에 남고 신기했어요."
"다요. 음, 이런 말 하기도 부끄러워요. 다 정말 좋아하는 분들이라서요. 개인적으로 시상하러 전도연 선배가 오셨는데, 정말 좋았어요. 아우라가 멀리서 봐도 정말 멋있는 거예요. 평소에도 엄청 팬이었거든요. 유재석 선배님은 정말 너무 친절하셔서 깜짝 놀랐어요. 완전히 멀리 떨어져서 앉아 있었어요. 맨 마지막 수상자 단체 사진 찍었을 때, 당연히 (저를) 모르실 줄 알았는데 '신인상 수상 축하드린다'고 말씀해주셔서 정말 깜짝 놀랐어요. 사진 찍을 때도 거리도 좀 있었는데, 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주시더라고요. 유재석 선배님뿐 아니라 다른 선배님들도 축하한다고 말해주셨어요. 상상도 못 한 일이에요.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신인상 수상 후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살면서 그렇게 많은 축하를 받아본 건 처음이에요. 시상식이 끝나고 집에 가려고 차에서 휴대폰을 켰는데 메시지 몇백개가 와있는 거예요. 뭔가 하고 봤더니 단체 카톡방에서 친구들끼리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나눴더라고요. 그리고 삼일 정도 꾸준히 축하해주시는 연락이 정말 많이 왔어요."
-'남매의 여름밤'이 상을 정말 많이 받았잖아요.
"영화가 상을 진짜 많이 받았는데, 다 영화상이었어요. 배우상은 지난해 두 번 받았어요. 상을 받는 것에 익숙해지지는 않아요. 그런데, 영화상을 받았을 때와 배우상을 받았을 때 느낌이 엄청 다른 것 같아요. 물론 영화상 받는 것도 감사하지만, 신인상은 제가 직접 가서 받는 것이니까요. 진짜 기분이 달랐어요. 좋았죠, 뭐.(웃음) 그리고 그 전에 상을 받았을 때는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직접 시상식에 가지 못했거나 시상식이 열리지 못했어요.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시상식에 처음부터 끝까지 있어 본 건 백상이 처음이에요. 그래서 기분이 다르더라고요."
-영화를 보면서 정말 실존하는 중학생 소녀 옥주같더라고요.
"사실 3년 전, 고등학교 2학년 때 찍은 작품이라 시간도 많이 지났죠. 지금 제 모습과 다를 거에요. 주변 친구들의 의견이 갈렸어요. 옥주의 모습이 저와 진짜 똑같다는 친구도 있고 너무 다르다는 친구도 있었어요. 평소에는 지금처럼 화장을 하지 않으니까 저와 똑같이 나왔다는 친구들도 있었고요, 너무 어리게 나왔다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지금은 살짝 성숙해졌죠? 저만 알 수 있는 변화이긴 한데요, 아주 살짝 성숙해진 것 같아요.(웃음)"
-'남매에 여름밤'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된 건가요.
"고등학교 1학년 때 '빛나는 물체 따라가기'라는 단편 영화를 찍었어요. 그 영화의 스틸을 윤단비 감독님께서 보시고 한번 미팅을 해보자는 연락을 주셨어요. 그래서 만나 뵙고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오디션인 줄 알고 감독님을 만났던 건데, 나중에 감독님께 이야기를 들어보니 오디션이 아니라 그냥 미팅 같은 거였더라고요. 감독님이 '이 친구와 같이 작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셨었대요."
-언제부터 카메라 앞에 섰나요.
"그 '빛나는 물체 따라가기'에서 처음 카메라 앞에서 연기란 걸 해봤어요. 놀랍고 감사하고 운이 좋았죠."
"어렸을 때부터 배우가 꿈이었는데, 제가 생각한 것보다 빠른 것 같기는 해요. 이 정도로 빨리 작품을 찍게 될 줄은 몰랐다. 생각하지도 못한 감사한 기회로 연기를 빨리 시작하게 됐어요. '이 배우가 정말 좋아서, 작품이 끝나도 계속 생각난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작품을 보고 나서 찾아보고 싶은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리고 오래 연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라지지 않고 꾸준하게요."
-어렸을 때는 왜 배우가 되고 싶었나요.
"사실 엄청 어렸을 때부터 배우가 꿈이었어요. 그땐 그냥 TV에 나오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사극을 좋아했었는데요, 한복이랑 가채가 예뻐서 어린 마음에 해보고 싶었어요. 그러나 중학교 3학년 때 쯤 진지하게 진로를 고민했어요. '배우가 진짜 하고 싶나? 다른 걸 할 수 있나?'라는 생각을 많이 해봤어요. 일단 다른 걸 하고 싶은 게 없더라고요. 드라마 메이킹 영상을 보는데 저기에 제가 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한 번도 연기를 안 해봤으니까, 부모님에게 말씀드려서 동네에 있는 연기 학원에 다니게 됐어요. 배우니까 더 재미있어졌어요. 그래서 연기를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첫 오디션을 보고 처음으로 단편 영화를 찍게 됐어요. 오디션이 살짝 망한 것 같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는데, 뽑아주셔서 얼떨떨한 상태로 처음 단편 영화를 찍었어요. 이렇게 흘러갈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제 계획은 그냥 스무살에 대학을 가고, 대학 졸업 때쯤 아마 어떤 작품에 출연하게 되고, 이런 걸 상상했어요."
-본인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제 입으로 말하기 진짜 너무 부끄러운데요.(웃음) 평범하지 않은 듯 평범한 것? 평범해 보이기도 하고, 평범해 보이지 않기도 해요. 둘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역할을 맡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남매의 여름밤'은 특히 배우의 역량이 중요한 작품이었는데, 힘들지는 않았나요.
"진짜 감독님과 촬영 감독님에게 감사해요. 처음이어서 초반에 엄청 헤맸고 엄청 어려웠어요. 근데 그럴 때마다 촬영 감독님과 감독님이 조급한 느낌이 들게 하지 않게, 스스로 할 수 있게끔 해주셨어요. 사실 그냥 딱 정해서 저에게 지시하실 수도 있잖아요. 근데 계속 제가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게 해주셨어요. 그래서 대화하는 시간을 엄청 많이 가졌어요. 솔직히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잘 모르겠는데 계속 여쭤보시니까.(웃음) 근데 이게 저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저에게 배우로서 너무 큰 도움이 됐다는 게 느껴졌어요. 저 스스로 사고할 수 있고 준비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셨다. 가장 감사한 건 여러 컷을 찍을 수 있게 해주셨던 거에요. 영화와 함께 성장한 기분이 들어요. 진짜 감사했어요. 처음에 정말 어리바리했었거든요. 아직도 생각나요, 그때가. 한 번도 혼내신 적 없어요."
-가장 연기하기 힘들었던 장면은 무엇인가요.
"장례식장 장면이랑 마지막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집에서 밥 먹으며 우는 장면이요. 그 두 장면이 가장 힘들었어요. 눈물이 안 났어요.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연기하는 게 정말 다르더라고요. 촬영하면서 그 정도의 격한 감정을 표현하는 게 처음이었어요. 어려웠는데, 아빠(양흥주)와 고모(박현영)가 옆에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제가 한가지 생각에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제가 편하게 감정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기다려주셨어요."
"그 부담이 작년에 진짜 컸어요. 영화제에서 상을 많이 받고, 해외에서도 상을 받았어요. 그리고 8월에 개봉 예정이라는 말을 듣고, 막상 개봉하니 반응이 좋았어요. 그때 근 2년간 '남매의 여름밤' 이외엔 아무것도 찍지 않았어요. 정말 좋아해 주시고 칭찬을 너무 많이 해주시는 거예요. 제 역량보다는 감독님의 덕분이라고 생각했어요. 다음 작품을 했을 때 저에 대한 실망이 크실까 봐 부담감이 컸어요. 작년 초에 그런 마음이 엄청 심했어요. 그러다 작년 가을쯤 단편 영화를 찍으면서 부담을 많이 내려놓았어요. 이제는 괜찮아요."
-그럼 이제는 어떤 최정운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나요.
"열심히 준비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고민은 똑같은데, 머물러 있기보다는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근데 또 생각처럼, 마음처럼 잘 따라주지 않는 것 같아서 걱정도 돼요. 그래도 예전처럼 '어떡하지?'라고 고민하는 것보다 '열심히 하다 보면 나은 모습이 나오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직 어리잖아요.
"작년엔 스무살이었는데, 조급한 마음이 너무 많이 들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윤단비 감독님이 '조급해하지 말라'고 해주셨어요. 감독님이 제 정신적 지주예요."
-롤모델은 있나요.
"좋아하는 배우가 정말 많은데, 김태리·전여빈 선배를 정말 좋아해요. 닮고 싶은 배우예요. 배우가 연기를 잘하는 게 당연히 제일 중요하지만, 두 분은 연기를 넘어 매력이 너무 넘치잖아요. 작품을 보고 있으면 제가 그 매력에 저절로 흡수되는 느낌이 들어요. 정말 멋있는 것 같아요."
-같이 연기해보고 싶은 배우는 있나요.
"기회가 된다면 전도연 선배님이요. 전도연 선배 주변 인물 아무나라도 좋아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로테르담 영화제에서 봤어요. 극장에서 제가 처음 본 청소년 관람불가영화예요.(웃음) 그 영화에서 전도연 선배가 정말 너무 잘하시는 거예요. 딱 그 작품을 보고 나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에 '와! 미쳤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나중엔 이런 연기를 할 수 있겠죠?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열심히 오디션 보면서 준비하고 있어요. 맡겨주시면 뭐든 열심히 할 수 있어요. 빨리 시작했다고 해서 계속 앞서 나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계속 끝까지 오래 연기를 할 수 있도록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겠죠."
박정선 엔터뉴스팀 기자 park.jungsun@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사진=박세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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