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재구성] 생후 2개월 된 친딸은 누가 사라지게 했나

박승주 기자 2021. 9. 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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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 발견 안 돼..부모는 서로에게 "범인이다" 주장
'친모 진술 신빙성' 부족..증거 없어 무죄 판결
© News1 DB

(서울=뉴스1) 박승주 기자 = 김모씨와 조모씨(여)는 2007년 4월부터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다가 이듬해 첫째 딸을 낳았다. 조씨는 가정폭력을 견디지 못해 딸과 함께 가출하기도 했지만 다시 동거를 택했고, 두 사람 사이에는 둘째 딸이 태어났다.

2010년 10월7일, 둘째 딸 A양은 세상에 나왔지만 김씨와 조씨는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 서류상으로 존재하지 않던 A양은 같은해 세상에서 사라졌다.

조씨는 아이가 없어진 뒤에도 김씨와 계속 살았고 2012년에는 함께 이사도 했다. 그러나 남편의 가정폭력이 이어지자 2016년에는 첫째 딸과 함께 집을 나와 시설에 들어갔다.

2017년 3월15일 사건은 세상에 알려졌다. 조씨는 112에 "반지하집 방에 있는 나무상자에 아이 시신이 있다. 남편의 가정폭력으로 2개월 된 아이가 죽었다"고 신고했다.

2019년 두 사람은 유기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과 피고인이 다투는 일반적인 재판과 달리, 검찰과 조씨가 같은 주장을 하고 김씨가 맞서는 이례적인 풍경이 그려졌다.

조씨는 생후 2개월 된 A양이 고열에 시달렸는데도 김씨의 반대로 병원에 데려가지 못해 결국 숨졌다고 했다. 조씨는 "김씨는 A양을 외도로 낳은 아이로 의심해 수시로 학대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씨는 조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생후 한 달 뒤인 2010년 11월5일 조씨가 자신 몰래 A양을 수서역 부근 아파트에 유기하고 왔고, 이후에는 A양을 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김씨 측은 "A양의 사망사실이 증명되지 않았고 만일 A양이 사망했더라도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무죄"라고 한 반면 조씨는 사실관계를 모두 인정하면서 선처를 호소했다.

이번 재판의 핵심은 유일한 직접 증거인 '조씨 진술'이었다. 경찰은 조씨의 신고 직후 반지하집을 수색했지만, A양을 결국 발견하지 못했다. 피해자 시신이 확인되지 않은 만큼 조씨 진술의 신빙성이 결정적이었다.

법원은 A양이 이미 사망했을 개연성이 크고, 행방에 관한 김씨의 주장도 믿기 어렵다고 봤지만 동시에 조씨의 진술도 의심스럽다고 판단했다. A양의 사망 시기, A양 사망 이후 조씨의 행동, 시신 처리방법, 경찰 신고 경위 등 조씨의 여러 진술에서 신빙성이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조씨는 2010년 12월 초순에 A양이 숨졌다고 주장했지만, 조씨의 언니는 2011년 11월 A양을 외조부의 장례식장에서 봤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조씨 언니는 보증금을 지원해주는 등 평소 조씨에게 많은 관심을 보여왔다고 한다.

재판부는 "조씨 언니의 진술 신빙성을 쉽게 부정할 수 없다"며 "A양이 2010년 12월 초에 사망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A양이 그 이후에도 생존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A양의 사망 이후 조씨의 행동도 경험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됐다. 조씨는 김씨의 반대에 부딪혀 병원에 데려가지 못했고, A양이 숨진 걸 확인한 뒤 1시간 정도 가만히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자신의 자녀가 숨을 쉬지 않는 사실을 확인하면 119 신고 등 도움을 요청하거나 격한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며 "평소 김씨로부터 잦은 폭행을 당해 일정 부분 심리적·신체적으로 억압됐다 하더라도 조씨의 진술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시신 처리방법에 관한 진술도 재판부는 지적했다. 조씨는 사망한 A양을 이불로 감싸고 포장지로 묶은 뒤 배낭에 넣어 화장실에 한 달간 보관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증인신문 과정에서는 '한 달이면 시신이 부패하기에 충분한 시간인데 악취가 나거나 벌레가 생기지는 않았냐'는 질문에 "향은 났지만 독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사망 당시가 겨울임을 고려하더라도 시신의 부패에 따라 심한 악취가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며 "시신을 배낭에 넣었는데도 다른 곳에 유기하거나 매장하지 않고 화장실에 보관했다는 진술도 믿기 어렵다"고 했다.

조씨는 2017년에서야 신고하게 된 경위에 대해 "꿈에 A양이 나타나 '엄마, 엄마' 하면서 울었다. 그때 내가 A양을 잊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지만, 재판부는 "그간 여러 차례 기회가 있었는데도 A양 사망이라는 중대한 사실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국 범죄사실에 대한 증명이 부족해 두 사람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조씨는 재판 후 기자들과 만나 "제가 곧 증인이자 증거인데 제 말을 안 믿고 무죄가 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검찰도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par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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