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 미국에서 아시아 여성이 살아간다는 것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해나무 펴냄
“우리는 한 모금의 숨결에 온 세계를 담을 수 있다.”
책은 도발적인 질문으로 시작한다. “다음번에 우리가 들이마시는 숨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죽는 순간 내뱉은 공기 중 일부가 함께 딸려온다면 어떨까?” 다음 문단을 읽을 수밖에 없다. 작가 샘 킨은 기원전 44년 3월15일 로마 원로원 회의실에서 카이사르가 단도에 찔려 몸속의 피와 숨을 잃어가는 순간을 클로즈업하며 독자를 끌어들인다. “생각해보라. 한때 카이사르의 폐 속에서 춤추던 분자들 중 일부가 그토록 먼 거리와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 이 순간 우리의 폐 속에서 춤추고 있다는 사실을.” 고등학교 때 기체의 속성을 설명하는 화학 교과서 대신 읽었더라면 좋았을 책이다.
방관자 효과 캐서린 샌더슨 지음, 박준형 옮김, 쌤앤파커스 펴냄
“가장 큰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격렬한 외침이 아닌 선한 사람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이다.”
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게 되는 현상을 ‘방관자 효과’라 부른다. 심리학에서는 위기 상황에서 도움을 얻으려면 누군가를 콕 집어 호명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침묵과 방관, 무관심이 모이는 곳에 폭력이 움튼다.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심리학 교수인 저자는 방관자의 입장에서 출발한다. “괴물을 찾아내 막는 것만으로 끔찍한 행동을 막을 수 없다. 선한 사람을 나쁜 선택으로 이끄는 원인을 찾아내야 그릇된 행동을 막거나, 적어도 줄일 수 있다.” 낡은 조직문화에 맞서 변화를 만드는 일은 거기서 시작된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다른 사람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도록 용기를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현장에서 바로 써먹는 데이터 분석 with R 김임용 지음, 심통 펴냄
“데이터는 분석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
통계 프로그램인 R을 통해 데이터 분석의 기본을 배울 수 있는 책이다. 데이터 분석의 개념 및 발달 과정을 서술한 뒤 R 문법으로 들어간다. 양계장을 경영하는 가상의 1인 기업가를 등장시키는데, 그가 병아리를 닭으로 키우며 성별 및 품종을 구분하고 체중을 예측하는 등 실무 예제를 통해 상관, 회귀, 로지스틱 회귀 등의 통계학을 학습할 수 있다. 인공신경망과 딥러닝, 텍스트 마이닝 등도 R로 구현한다. 데이터 분석 학습서 중의 하나인 이 책은 친절하고 쉬우면서도 너무 적거나 너무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단기간에 ‘R을 통한 데이터 분석’을 경험해보고 싶은 독자에게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
마이너 필링스 캐시 박 홍 지음, 노시내 옮김, 마티 펴냄
“나는 행운을 거저 받는 선물이 아니라 매주 악운을 당함으로써 할부상환해야 하는 융자처럼 취급한다.”
미국 사회에서 성장한 아시아인 여성이 경험하는 차별과 혐오는 일상적이고 은근하다. ‘모범 인종’으로서 끊임없이 자신의 경험을 의심하고 의심받는다. 저자는 자신이 경험한 ‘소수적 감정’을 촘촘하게 추적해나간다. 무엇보다 그는 누군가를 대표해서 말하거나 쓰지 않는다. 그 자신의 이야기조차 ‘오직 근처에서’ 발언한다. 현재 자신이 누리는 안락함은 누구의 희생에서 오는지를 질문함으로써 또 다른 소수자와 손을 맞잡는다. 한국 사회는 저자가 ‘폭로하는’ 미국 사회와 얼마나 다를까. 머지않아 한국 사회에서 성장한 이주민의 목소리도 읽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든다. 그 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이, 보지 않고도 벌써 서늘하다.
진붕 리카이위안 지음, 이유진 옮김, 글항아리 펴냄
“‘진나라를 멸망시킬 것은 반드시 초나라’라는 말의 참된 의미는?”
모두가 이익을 추구하고 눈앞의 성공에만 급급하면서 음모와 모략, 배신을 일삼았던 중국의 ‘후안무치한 영웅시대’, 진한(秦漢) 교체기를 담은 육중한 역사서다. 일본과 중국 두 나라에서 30년 이상 진한사(秦漢史)를 연구한 저자 리카이위안이 마치 추리소설 같은 글쓰기로 진나라가 멸망하고 한나라가 건국되는 당대의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서술한다. 저자는 진나라 말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공리주의적으로 덮어놓고 진취와 발전만 추구하면서 윤리도덕 및 인문교육을 홀대한 것을 진붕(秦崩:진나라 붕괴)의 원인 중 하나로 제시한다.
여자들은 집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난다 장민지 지음, 서해문집 펴냄
“집은 감각을 느낄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경우에 한해서 인간에게 중요한 ‘장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저자가 집에 주목한 이유는 그것이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 청년들이 ‘아버지의 집’에서 경험하는 일상은 불편한 감각을 동반한다. 마침내 여성 주체들은 ‘자기만의 방’으로 탈주를 결심한다. 이 책은 서울·경기 지역에 거주하는 여성 청년 이주민 12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은 가부장제로부터의 탈출 요구와 자아 발전에 대한 욕망을 느끼며 이주를 감행했다. 하지만 낯설고 고립된 한 평의 공간은 이들에게 마냥 친절하지는 않다. 여성 청년들에게 집은 정박하는 곳이 아니다. 지금껏 없던 체험, 감각들을 재료로 낯선 서사를 쌓아가는 ‘유동적’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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