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의 무비] '중국판 〈82년생 김지영〉'에 〈벌새〉를 더하면

김세윤 2021. 9. 18.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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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힌 자동차.

분주한 구급대원.

옮겨지는 시신들.

멍한 표정의 젊은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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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윤의 비장의 무비] 영화 칼럼니스트 김세윤씨가 눈여겨 볼 만한 영화, 소중히 간직할 만한 영화를 매주 한 편씩 골라 소개합니다.
〈내가 날 부를 때〉
감독:인뤄신
출연:장쯔펑, 샤오양

뒤집힌 자동차. 분주한 구급대원. 옮겨지는 시신들. 멍한 표정의 젊은 여성. 경찰이 묻는다. “남성 사망자 통화기록을 살펴보니 전부 그쪽에 걸었던데, 관계가 어떻게 됩니까?” “딸이요. 저분들 딸이에요.” “사망자 부부 핸드폰에는 남자아이와 찍은 사진밖에 없네요. 죄송하지만 신분증 좀 주시겠습니까?”

부모 잃은 교통사고 현장에서 당신들 휴대전화에 자기 사진 한 장 없다는 걸 알아버린 딸 얼굴 위로 제목이 뜬다. 〈내가 날 부를 때〉. 이건 우리나라 개봉 제목. 원래 제목은 ‘나의 누나’. 영문 제목은 ‘Sister’. 그러니까 이 영화는 ‘누나’에 대한 이야기다. 누나로 사는 걸 선택한 적 없지만 누나로 사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는 이들의 이야기다.

누나가 돈을 벌고 있으니 어린 동생을 키우는 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친척들은 말한다. “아들이라고는 쟤 하나밖에 없는데 쟤가 잘 커야 나중에 집안을 잘 이끌지 않겠느냐”라고, 동생이 보는 앞에서 누나를 압박한다. 지금껏 잠자코 있던 누나가 마침내 입을 연다. “난 쟤 잘 몰라요. 난 싫으니까 키우고 싶은 사람이 데려다 키워요.”

혼자 힘으로 타지에서 대학 다니는 사이 부모가 낳은 늦둥이 아들이다. 그래서 몇 번 본 적도 없는 꼬맹이 동생이다. “쟤를 떠맡으면 내 인생은 끝”이라고 소리치는 주인공 안란(장쯔펑)의 단호한 얼굴 위로 따가운 시선이 화살처럼 날아와 박힌다. 누나 편은 아무도 없고 동생 편만 가득한 집 안에서 점점 언성이 높아진다.

“왜 나에게만 뭐라고 해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영화는 ‘누나’에 대한 이야기다. 누나가 되고 싶어 한 적 한 번도 없는데, 하는 수 없이 누나가 되어버린 20대 여성이 주인공이다. 원래 제목이 ‘나의 누나’인 이유다. 하지만 안란은 다른 삶을 꿈꾼다. 누군가의 딸로 납작해진 과거를 밀쳐내고 누군가의 누나로 희생해야 하는 미래를 비켜가며, 꼭 한번 만나보고 싶은 ‘내 안의 진짜 나’를 불러보는 이야기다. 한국 개봉 제목이 ‘내가 날 부를 때’가 된 까닭일 것이다.

1986년생 동갑내기 여성 작가와 여성 감독이 안란의 입을 빌려 소리친다. “잘못한 건 내가 아닌데 왜 다들 나에게만 뭐라고 해요?” 부모 휴대전화의 통화목록엔 가득하면서 사진 앨범에선 빠져 있는 존재들이 안란의 얼굴을 하고서 나에게 묻는다. “아들로 사는 건 기분이 어때요?”

때때로 말문이 막히고 이따금 눈물을 찍어내며, 나는 영화 내내 진심으로 안란을 응원했다. 세련된 연출과 섬세한 연기에 마음을 빼앗겨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영화 안에 머물렀다. ‘중국판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수식어 안에는 이 영화의 절반만 담겨 있다. 나머지 절반은 ‘어른이 된 〈벌새〉’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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