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더 힘든 명절..독거어르신들 힘내세요"

이수민 기자 2021. 9. 18.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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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 무진종합사회복지관서 30가정에 선물 전달
버선발로 마중 나와 "우리 딸 고마워" 눈물 '글썽'
지난 16일 오후 광주 서구 광천동 한 가정에서 이은숙 월드비전 무진종합사회복지관 과장이 독거노인에게 명절 선물 꾸러미를 전달하고 있다. 2021.9.18/뉴스1

(광주=뉴스1) 이수민 기자 = "아이고, 무겁게 이게 뭐다냐…, 빈손으로 와도 되는디"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둔 지난 16일 오후 광주 서구 광천동의 한 주택 앞. 80대 여성이 환한 얼굴로 문 앞에서 버선발로 누군가를 맞이한다.

"어르신, 저 왔어요. 잘 지내셨어요?" 양손에 과일과 간식 등 선물꾸러미를 잔뜩 든 30대 여성이 반가운 얼굴로 인사하며 선물을 내려놓고 손을 맞잡는다.

이날 어르신을 찾은 주인공은 월드비전 무진종합사회복지관의 이은숙 과장(39). 이 과장은 해마다 명절이면 독거노인 어르신 가정을 찾아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올해도 추석 명절을 맞아 광주 서구 지역 내 거주하는 독거노인 가정에 직접 선물을 돌리고 안부를 묻고 있다. 선물 꾸러미에는 과일과 건강음료, 생필품류가 고루 담겼다.

꾸러미는 첨단보훈병원 참사랑회와 광주소방본부, 한샘약국, 개인 후원자들이 정성을 모아 만들었다.

이 과장은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어려운데, 명절에도 홀로 계시는 어르신들이 많다"며 "이분들이 조금이라도 따뜻한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았다"고 말했다.

이 과장이 찾는 독거노인들은 모두가 애틋한 사연을 안고 있다. 이 과장이 첫 번째로 방문한 정숙자 할머니(가명·84)는 50년째 혼자 명절을 보내고 있다.

그는 30대 초반 출산한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죽고 난 이후로 남편과 헤어져 혼자서 살았다.

평생을 홀로 꿋꿋이 살았던 정 할머니는 이은숙 과장의 손을 붙잡고 지난 세월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딸 같아, 내 딸. 아플 때면 너무 서럽거든. 얼마 전에도 백신을 맞고 아플 때 우리 과장님이 떠올랐어. 또 명절 돌아오면 더 서러운데 이렇게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니 살 이유가 있지."

정 할머니의 몸 곳곳에는 푸른 멍이 가득하다. 지난해 2월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했다가 침대에서 떨어져 어깨 수술을 했다. 최근에는 화장실을 가다가 넘어져 세면대에 부딪혀 상처가 났다.

성하지 않은 할머니의 몸을 보며 어느새 이 과장의 눈가에도 촉촉한 눈물이 맺힌다.

이 과장은 할머니의 말벗이 되어주고 집안 곳곳도 살핀다. 눅눅한 방안 곳곳에 곰팡이가 피었고 비가 와 천장은 축 처졌다.

"조만간 집수리도 해드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 과장이 안타까워 하자 정 할머니는 오히려 손사래를 치며 말렸다.

"에이 됐어, 돈 많이 들고 몸 힘들텐데 됐어. 그냥 가끔 와서 이야기나 들어줘. 와서 걱정해주고 이야기 들어주고 하니 너무 고맙네. 선물 꾸러미에 라면부터 과일까지 뭐가 잔뜩 들어서 명절 내내 배가 부르겠다"

할머니는 이 과장이 집 문 밖을 나와 그의 차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자동차 룸미러로 할머니 모습을 바라보던 이 과장이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때면 발걸음이 정말 안 떨어지죠. 명절 당일에 와서 함께 있어드리고 싶은데…"

지난 16일 오후 광주 서구 광천동 한 가정에서 이은숙 월드비전 무진종합사회복지관 과장이 독거노인에게 명절 선물 꾸러미를 전달하고 있다. 2021.9.18/뉴스1

이 과장이 차를 돌려 두 번째로 찾은 가정은 15년째 혼자 지내고 있는 조청석(가명) 할아버지 집이다.

올해로 82세를 맞은 조청석 할아버지는 동네에서 '효자'로 이름을 떨친 유명인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 병 든 어머니를 모시고 살다가 지난 2005년 어머니를 여의고 15년째 혼자 명절을 보내고 있다.

집 안에 들어서자 허전하고 서늘한 공기가 가득하다.

조 할아버지는 추석 명절이면 외로움이 더 사무친다. 음력 8월15일, 추석날이 그의 생일이기 때문. 추석이자 생일에 미역국을 먹어본 기억도 가물가물하다고 했다.

"명절이 되면 어머니께 용돈을 드리던 기억이 나지. 어머니가 계실 땐 명절 때 맛있는 것도 해 먹고 함께 미역국도 나눠 먹었는데, 혼자가 된 이후로 미역국을 언제 먹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아. 그나마 복지관에서 선물을 가득 가져다주니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한 기분을 위로해주는 것 같지."

복지관 선물 꾸러미 속 김 봉지를 품에 끌어안으며 말하는 조 할아버지의 눈시울이 어느새 젖어들었다.

이은숙 과장은 "자주 못 찾아봬서 죄송한 마음"이라며 조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다.

"명절에 생신이신 줄 알았다면 미역국이라도 끓여드렸을 텐데. 앞으로도 더욱 자주 찾아뵙고 곁에 있을 테니 기운 내세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이 과장은 이날과 이튿날까지 이틀간 모두 30가정을 방문했다. 독거노인을 일일이 찾아가 안부를 묻고 외로운 마음을 달랬다.

"명절을 맞아 지역사회의 취약계층 어르신을 대상으로 선물 지원 사업을 하고 있는데,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특히 어르신들이 경제적, 정서적으로 소외감을 많이 느끼세요. 작은 마음이 차곡차곡 쌓여 독거노인 한분 한분에게 따뜻한 명절을 선물할 수 있도록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해요."

breat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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