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PD의 방송 이야기] 어떤 추석 특집이 살아남을까

김진호 2021. 9. 18.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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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군은 저희와 함께 가실 수… 있습니다!”

서바이벌 오디션에 등장하는 단골 멘트다. 심사위원의 한마디에 도전자와 팬들은 울고 웃는다. 이는 비단 TV 속 얘기만이 아니다. TV 밖 PD의 삶도 매일이 오디션이다.

추석은 파일럿 시즌이다. ‘파일럿 프로그램’이란 정규 편성에 앞서 1~2편을 미리 내보내 향후 고정적으로 방송할 지를 결정하기 위해 만든 샘플 프로그램을 말한다. 반응이 좋으면 정규 편성되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아쉽게도 그걸로 끝이다.

론칭부터 쉽지 않다. 수많은 지원자는 제작과 편성 책임자들로부터 기획안 테스트를 통과해야 하는 ‘예선’을 거친다. 요즘 같은 다매체, 다채널 시대엔 이 과정 역시 치열해졌다. 거의 광고 회사 PT 수준으로 보고서를 준비해 경쟁력, 타깃 연령층, 예상 제작비, 투입 인원, 출연자 등을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톱 MC 섭외에 성공했거나 협찬으로 제작비를 확보했다면 조금 유리하다.

김진호 SBS 예능본부 PD

제작은 ‘본선’이다. 본격 팀을 꾸려 섭외, 회의, 촬영에 돌입한다. 오디션 ‘경연’처럼 기회는 단 한번이다. 치명적 실수는 바로 불구덩이행이듯, 한번의 촬영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한다. 다음은 편집이다. 오디션 멘토들이 합류해 전략을 짜듯, PD 선배들도 수차례 시사를 통해 코멘트를 덧붙인다. 고치고 고치기를 반복, 정신없이 밤을 지새다보면 어느덧 방송 날이다. 대중의 ‘리모컨 투표’ 결과에 따라 정규 프로그램으로 ‘데뷔’할 수도, 혹은 ‘탈락’할 수도 있다. ‘60초 후’ 결과가 공개되는 오디션처럼 ‘다음 날’ 공개되는 시청률로 수개월간 흘린 땀에 대한 평가가 판가름난다.

정규 편성이 되면? 기쁨도 잠시, 진짜 게임은 이제부터다. 데뷔 후 반짝 인기를 끌다 기억 속으로 잊혀진 스타들을 많이 봐왔다. 음원 차트나 음악 순위 프로그램 1등을 해야 성공 가수 반열에 오르듯, 방송도 동시간대 경쟁자들을 앞서야 한다. 작품성과 기획의도도 중요하지만, 시청률과 광고 매출, VOD와 온라인 동영상 조회수가 우선순위다.

지상파 독과점 시대는 끝났다. 공급은 많고 수요는 한정적이다. 경쟁이 치열하면 당사자는 힘들지만 시청자는 즐겁다. 이제 PD도 ‘품질’이 월등하거나 ‘가성비’가 좋거나 ‘화제’가 되는 제품(프로그램)을 출시해야 한다. 하지만 실패했다고 좌절하지 마시라. 나영석 PD의 에세이 제목처럼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 늦깎이 스타도, 대기만성형 연출자도 많다. 이번 추석엔 어떤 파일럿이 살아남을까. 별나라 세상이 아닌, 그저 방송국이 직장인 ‘회사원’들의 도전기. 연휴를 반납한 PD들의 ‘오디션’에 한 표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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