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의 우주를 유영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SF연대기
셰릴 빈트, 마크 볼드 지음 | 송경아 옮김 | 허블 | 492쪽 | 1만7000원
‘SF’라고 쓰고 ‘공상과학’이라고 읽던 시절이 언제였던가. 15만부 넘게 팔린 장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김초엽을 비롯해 김보영, 정세랑, 천선란 같은 작가들이 SF소설의 새 시대를 이끌고 있다. 마블 어벤져스 영화 덕에 아이들도 알파 센타우리와 양자역학을 말하게 됐다. 바야흐로 SF 전성시대, 문학과 영화 전공의 미 대학 교수인 저자들이 지금 우리가 읽는 SF 장르의 거대한 우주가 어떻게 탄생하고 발전하며 정착했는지 깔끔하게 안내 표지를 붙여가며 정리해준다. 시대와 영향을 주고 받으며 탄생한 작품들의 간략한 소개와 목록들을 보노라면 없던 독서욕도 새로 샘솟을 것이다.
쥘 베른과 HG 웰스를 지나 만나는 잡지 SF와 펄프 픽션의 세계는 이 책이 펼쳐낼 ‘SF 우주’의 도입부에 불과하다. 인간의 상상력은 이미 19세기말에 남자들이 멸종되고 단성 생식으로 번성하는 여성들만의 세계(’미조라 : 여성들의 세계’)를 그렸고, 자본에 의한 과두 지배체제의 암울한 미래 뉴욕에서 벌어지는 혁명과 타락의 역사(‘시저의 기둥’)를 만들어냈다.
미지 행성에서 벌어지는 모험과 우주선 전투, 기사도적 영웅들이 등장하는 소설 ‘스페이스 오페라’는 처음엔 과학적 근거가 빈약한 싸구려 모험소설에 붙인 멸칭이었다. 하지만 JRR톨킨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성공을 거두면서, 그 영향 하에 SF는 영웅 판타지 서사로도 영역을 확장한다. 여전히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는 ‘듄’, ‘스타트랙’ ‘스타워즈’가 생명을 얻고, 1960~70년대 민권운동의 물결 속에 사회와 불화하는 초능력자들을 주인공으로 기용한 마블 코믹스의 수퍼 히어로들이 태어났다. 인공지능의 종족 해방 투쟁에 디스토피아와 범죄 서사를 버무린 ‘뉴로맨서’는 ‘블레이드 러너’와 ‘비디오드롬’, ‘아키라’와 ‘공각기동대’ 등 사이버펑크와 포스트모더니즘 소설로 이어진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 ‘지금 여기 아닌 저 어딘가에 관한 이야기’를 본질로 하는 SF는 반전과 환경주의, 여성주의, 민권운동의 선봉이 되기도 했다.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냉전 말 미국이 레이저빔으로 소련의 대륙간탄도탄을 요격하는 전략방위구상(SDI)을 ‘스타워즈 계획’이라 부르고, 우주왕복선에 ‘스타트랙’의 모선 엔터프라이즈호의 이름을 붙였을 때, 당대 최고의 SF작가들이 국가우주정책 시민자문위원회에 참여해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스타워즈는 냉전의 종말을 앞당겼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 취임 뒤 낙태 반대 시위엔 하얀 보닛에 붉은 망토를 두른 여성들이 참여하며 미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마거릿 애트우트의 페미니즘 SF ‘시녀 이야기’에 나온 복장이었다.
거대한 SF의 우주를 탐험해온 베테랑들에겐 자신이 어디쯤 유영하고 있는지 확인시켜줄 은하계 지도가, 이제 막 발을 들여놓은 초보 여행자들에겐 어느 방향으로 첫 발을 떼야 할 지 알려줄 친절하고 충실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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