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의 달달하게 책 읽기] 진보든 보수든, 왜 항상 '수도권 정당'인가
‘에나(ENA)’라고 하는 국립행정학교 개혁이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의 공약 중 하나였다. 드골이 전문 행정 관료를 양성하고자 만들었고, 대통령을 네 명이나 배출한 곳이다. 그렇지만 지나친 특권 논란에 휘말린 끝에 폐교가 결정되었다. 에나 출신들을 ‘에나르크’라고 불렀는데, 이런 게 대표적 ‘부족’이다. 자기들끼리 너무 깊게 얽혀 있다.
강준만의 ‘부족국가 대한민국’(인물과사상사)은 문재인 정부 안에서 자기들끼리 만들어낸 크고 작은 부족이 얽혀 결국 우리나라의 특징처럼 된 상황을 짧은 칼럼들로 지적한 책이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못 살겠다, 바꿔보자”는 선거 구호에 “바꿔봤자 마찬가지”라고 대꾸했다는데, 요즘 계속 그 이야기가 생각난다. “때는 바야흐로 진보 부족주의 전성시대”, 강준만의 진단이다. 아니라고 하기가 어렵다. 더 슬픈 것은 자기들끼리 동맹을 맺어 대의와 우정을 가장하고 있지만 진짜 부족주의도 아니라는 거다. “이익공동체 성격이 두드러져 상황이 바뀌면 분열과 배신이 일어날 그런 기회주의적 부족주의다.”
현 정부의 인사와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말문을 연 책은 후반부로 가면 지방 경제라는 좀 더 크고 근본적인 문제로 향한다. 문재인 정권을 진보 정권이 아닌 ‘수도권 정당’이라 진단한 후, 패러디 형식으로 쓴 ‘더불어지역당 창당 선언문’에서 절정에 달한다. 진보든 보수든 정권은 바뀌었어도 실제로는 언제나 서울을 정점으로 한 중앙형 시스템의 수도권 정당이었다는 것이다.
여야로 나뉘어 사회가 마치 둘로 쪼개진 것 같은 상황에서 강준만의 얘기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하겠지만, 누군가 이렇게 계속 지적하지 않으면 더 좋은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진보가 세련돼야 보수도 세련돼지고, 보수가 유능해져야 진보도 더 유능해진다. 원론적 얘기지만, 점점 미궁으로 치닫는 대선 국면을 보면서 이런 차분한 목소리가 더욱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이번 대선이 여든 야든, 부족 현상을 완화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이 책을 추천한다. 민주주의는 시스템 전체의 장기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이지, 특정 그룹에만 독점적 이익을 주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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