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달은 50년 전 그날처럼 환한데.." 시인 김춘수의 추석
차례
김춘수 지음|신소담 그림|다림|32쪽|1만2000원
“추석입니다 / 할머니 / 홍시(紅枾) 하나 드리고 싶어요 / 상강(霜降)의 날은 아직도 멀었지만 / 안행(雁行)의 날은 아직도 멀었지만 / 살아 생전에 따뜻했던 무릎 / 크고 잘 익은 / 홍시 하나 드리고 싶어요.(후략)”
김춘수(1922~2004) 시인은 ‘차례’에서 뜨거웠던 여름날을 보내고 맞이한 추석날 아침의 감상을 이렇게 노래했다. 시의 화자는 보름달을 보며 할머니와 함께했던 어릴 적 추석을 회상한다. 세월이 흘러 할머니는 이제 안 계시지만 달은 “오십년 전 그날처럼” 여전히 환하다.
시인의 시에 추석의 넉넉함을 묘사한 삽화를 엮었다. 도시로 떠났던 자식들이 자가용을 몰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부모와 자식, 그 자식의 자식들까지 한데 모여 시골집이 오랜만에 떠들썩해진다. 간수해 뒀던 제기(祭器)를 꺼내 매만지고, 병풍을 손질하고, 정성껏 차린 차례상 앞에서 다들 손을 가지런히 앞으로 모은 모습이 정겹다. 익숙하고 전형적이지만, 갈수록 보기 힘들어지는 장면들이기도 하다.
이런 장면들 사이로 부뚜막에서 명절 채비를 차리던 할머니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을 바라보는 초로(初老)의 뒷모습에는 지나간 날을 그리는 시인의 그림자가 겹친다. 할머니의 추석과 시인의 추석, 독자들이 저마다 경험한 추석이 조금씩 중첩돼 있다.
시간이 흐르며 추석 풍경도 변해간다. 차례를 지내지 않는 집이 많아졌고, 고속도로가 귀성 차량으로 붐비듯 공항이 해외여행객들로 북적였다. 전대미문의 코로나 탓에 이제는 아예 모이지 않고 만나지 않는 것이 미덕이 됐다. 그러나 왁자지껄한 모임이나 화려한 차례상이 본질은 아니다. 50년 전의 달이 그대로이듯 사랑과 정(情)이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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