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연쇄살인마? 힌트는 뜨거운 밥 위에 얹은 버터라는데..

양지호 기자 2021. 9. 18.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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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연쇄살인 모티프로 한 스릴러
요리실력으로 남성 홀린 용의자, 연인 3명 살해 혐의로 무기징역
주간지 여기자, 그녀의 지시 따라 버터 넣은 음식 먹으며 진실 추적
풍미 좋지만 고열량인 버터.. '적당량'이란 무엇인가 질문

버터

유즈키 아사코 소설|권남희 옮김|이봄|600쪽|1만7800원

“여자는 누구에게나 너그러워야 한다고 배우며 자랐어요. 그러나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이 두 가지 있어요. 페미니스트와 마가린. 만약 내가 다음에 당신과 얘기한다면, 당신이 절대 마가린을 먹지 않기로 결심했을 때일 거예요. 나는 진짜를 아는 사람하고만 만나고 싶거든요.”

약 6개월 동안 3명의 남성을 연쇄살인한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가지이 마나코는 도쿄구치소로 면회를 온 기자의 단독 인터뷰 제의를 거절한다. 버터와 마가린의 차이를 모른다는 다소 황당한 이유로. 그러나 가지이는 여지를 남긴다. “버터간장밥을 만드세요.” 이제부터 ‘버터 맛’을 알아나가면, 그래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게 되면 독점 인터뷰에 응해주겠다는 뜻일까. 희망을 품고서 주간지 기자 리카는 용의자의 의도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가지이와 교제했던 40대, 50대, 70대 독신 남성 셋은 도합 10억원가량을 그녀에게 건넸고, 이후 각각 수면제 과다 복용, 욕조에서 익사, 전철 투신으로 숨졌다. 그러나 가지이가 남자들을 죽였다는 직접적 물증은 나오지 않았다. 가지이가 정말 이들을 죽인 걸까. 이 남성들은 왜 가지이에게 끌렸던 걸까. 그녀는 정말 꽃뱀이었을까.

연인 셋을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그녀는 진범인가. 주간지 기자 리카는 진실을 캐내기 위해 그녀가 사랑하는 버터 들어간 음식을 먹어보기 시작한다. 사진 속 여성이 버터를 칼로 자르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뚱뚱하고 외모도 보잘것없는 가지이는 이들을 요리 솜씨로 사로잡았다. 명란버터파스타, 버터시오라멘, 버터를 바른 떡, 버터갈릭라이스, 뵈프 부르기뇽(프랑스식 비프 스튜), 버터를 겉에 발라 구운 칠면조. 가지이가 지목하는 대로 음식을 먹으면서 리카는 가지이가 던지는 메시지를 해독해나간다. 버터 듬뿍 들어간 요리가 한 그릇씩 사라질 때마다 리카는 사건의 실체에 한 걸음씩 더 다가간다. 그리고 ‘대체 저 음식은 무슨 맛일까’ 하는 독자의 궁금증은 커진다.

풍미는 압도적이지만 열량이 높은 버터는 어찌 보면 불가근불가원의 식재료다. 시행착오 끝에 적당량을 찾아가는 리카, 탐닉을 멈추지 않기로 한 가지이. 음식을 둘러싼 가지이와 리카의 유사 멘토-멘티 관계는 어느 순간 역전된다. 리카가 경험한 음식과 만들 줄 알게 되는 요리 리스트가 차츰 늘어나면서다. 그리고 리카는 진실을 추리해낸다.

유즈키 아사코(40)는 전작 ‘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모르는 여자가 말을 건다’ 등을 통해 문장으로 음식을 요리한다는 평가를 얻은 작가. 이 소설은 2009년 일본 도쿄 일대에서 벌어진 연쇄살인 사건이 모티프. 미스터리 스릴러의 얼개를 하고 있는 요리 소설이라는 독특한 장르에는 이 작가만의 인장이 찍혀 있다. “버터가 녹듯이, 상대의 눈이 빛나며 드러나는 달콤한 굶주림이 눈에 보인다.”

장르로 따지면 미스터리 스릴러지만, 동시에 미식 가이드이자 레시피북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버터간장밥을 묘사하는 이런 대목. “버터는 냉장고에서 막 꺼내서 차가운 채로 넣어요. 정말로 맛있는 버터는 차갑고 단단한 상태에서 식감과 향을 맛보아야 해요. 차가운 버터와 따뜻한 밥. 일단 그 차이를 즐겨요. 그리고 당신 입속에서 두 가지가 녹아서 섞이며 황금색 샘이 될 거예요. 네, 보이지 않아도 황금색이란 걸 아는, 그런 맛이죠. 버터가 엉킨 밥 한 알 한 알이 자기 존재를 주장하고, 마치 볶은 듯한 향기로움이 목에서 코로 빠져나가죠.”

가지이는 버터계의 ‘에르메스’라며 명품 취급을 받는 프랑스 버터 ‘에쉬레’를 고집한다. “버터는 에쉬레라는 브랜드의 가염 타입을 써요. 맛있는 버터를 먹으면, 난 뭔가 이렇게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요. 붕 날아오르는 게 아니라, 떨어져요. 엘리베이터에서 한 층 아래로 쑥 떨어지는 느낌. 혀끝에서 몸이 깊이 가라앉아요.” 공복에 읽으면 뭔가를 먹고 싶어질 것이고, 식후에 읽으면 또 먹고 싶어질 것이다.

왜 민족의 명절에 ‘버터’를 읽는가. 그것은 이 책이 명절 음식 먹다 다이어트 고민에 빠지는 사람들에게 ‘적당량’이라는 메시지를 함께 던지기 때문이다. “각자 자신의 적당량을 즐기고, 인생을 전체적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할텐데.” 책에 나온 메뉴를 재현해보고 싶어질 테니, 명절 전후 메뉴 고민도 조금은 줄여줄 것이라는 부수적 장점(?)도 있다. 두 여성의 600페이지에 달하는 우정 아닌 우정, 연대 아닌 연대를 지켜보는 서늘한 즐거움을 맛보며 적당량을 지키는 연휴가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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