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지구
“잇츠 낫 땡스기빙.”
추수감사절하고는 달라요.
“시밀러, 벗 낫 세임 앳 올. 카인드 오브… 코리안 하비스트 데이.”
비슷한 면도 있지만, 똑같지는 않아요. 뭐랄까… 추수를 기념하는 한국만의 명절이죠.
“잇 콜드 추석 오얼 한가위.”
추석이라고도 하고, 한가위라고도 해요.
나는 슬라이드를 넘겼다. 긴 화살표 같기도 하고 새 발자국 같기도 한 솔잎이 발표 화면에 무더기로 떠올랐다. 추수를 앞두고 풍족한 계절을 기념하면서 여러 가지 전통 음식을 만들어 먹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은 송편이라는 내용을 담은 부분이었다. 원래는 이 부분을 발표 맨 마지막에 넣고 직접 찐 송편을 아이들에게 한두 알씩이라도 나눠주려고 했는데, 솔잎을 구하지 못해서 맨입으로 넘어가게 됐다. 여러 번 쌓이고 뭉쳐 둥지처럼 된 솔잎들 위에 동그란 떡이 나타나자 아이들은 새알이냐며 웃었다.
“잇츠 낫 에그. 잇츠 송편. 잇 민즈 파인트리 라이스 케이크. 웬 유 트라이 투 메이크 잇, 유 슏 스팀 잇 윗 썸 파인트리 립스.”
알이 아니라 송편이에요. 소나무 떡이라는 뜻의 이름이죠. 이걸 만들려면 소나무 잎과 함께 쪄야 해요.
화면에 소나무 사진이 나왔다. 아이들 대부분은 그 나무를 알아보았다. 달 이주 프로젝트 시작 원년에 심기어 수령이 100살도 넘은 소나무. 그건 주거 지구 바깥에 있는 종자보관소에 있었다. 평소라면 종자보관소 견학 신청을 한 후 바닥에 떨어진 솔잎을 긁어 올 수 있었겠지만, 지구에서 온 플루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시작해서 출입이 제한된 참이었다. 종자보관소는 달 위의 어떤 시설보다도 오염에 예민했다.
발표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더니 다짜고짜 물었다.
“하우 더즈 잇 테이스트 라이크?”
“리틀 빗 츄이, 벗 낫 소 스티키. 스멜스 라이크 파인트리 립스. 얼소 스위트 비커즈 잇 이즈 필드 윗 버라이어스 인그리디언츠 라이크 레드빈, 체스트넛, 오얼 허니 앤 세서미.”
안 그래도 맛이 어떠냐는 질문이 나올 것 같아서 준비는 해둔 참이었다. 떡이어서 쫄깃쫄깃하지만 끈적거리지는 않고, 솔잎 향이 나고, 팥이나 밤이나 꿀과 깨 같은 것이 들어가서 단맛이 나요. 질문한 아이는 알겠다는 듯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정작 답변한 나는 그게 무슨 맛인지 잘 몰랐다. 부모님이 묘사해준 그대로 말했을 뿐이고, 내가 직접 송편을 먹어본 건 몹시 오래전이어서 맛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지구를 떠나오기 이미 몇 년 전부터 우리 집은 추석을 쇠지 않게 되었으니까. 그러기엔 부모님이 너무 바빴으니까.
다른 아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거다. 추수감사절 칠면조 구이의, 중추절 월병의, 오봉 정진요리의 맛 같은 걸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아이는 거의 없을 거다. 대부분 너무 어릴 때 달로 이주해 왔고, 이주 이후에 그런 것을 챙겨 먹었을 리는 더욱 만무하니까.
왜냐하면 명절이란 건 사실 무척… 번거로운 거잖아. 그건 뭐랄까. 문화력의 잉여 같은 거다. 또한 문화력이란 뭐냐면 결국… 사람들 마음의 여유 같은 게 아닐까.
달 주거 지역이 완공된 후 지구에서 이주해 온 사람은 총 720명이었다. 20개국에서 4인 가정 세 가구씩을 모집해 전송하는 과정을 3차에 걸쳐 진행했기 때문에. 달로 이주한 뒤에 아이를 낳아 구성원이 늘어난 가정도 있지만 다시 지구로 떠난 가정도 있는가 하면, 간혹 사망자도 있었기 때문에, 달 주거 지역 인구는 크게 변하지 않고 유지되었다. 집에 가는 길에 보이는 큼지막한 전광판에 따르면 현재 달 인구는 홀수다.
고도로 훈련된 우주인 한 사람씩이 아니라 가구 단위로 이주 지원자를 모집한 까닭은 지구의, 지구인다운 문화와 정서를 그대로 가져가자는 의도에서였겠지만, 달 사람들에게는 문화를 누릴 여유가 별로 없었다. 오랜 시간 공들여 설비했을 주거 지역은 물론 생활에 큰 불편이 없는 환경으로 되어 있었고, 지구 시간으로 2주에 해당하는 달의 낮과 밤 주기에 맞추어 오가는 수송선 덕에 물자도 늘 넉넉했지만, ‘지구인다운’ 문화는 좀처럼 꽃피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우리의 부모님들 중 과반은 연구원이었기에 모두 연구와 적응에 바빴다. 달 사람들만의 독특한 문화라면 다양한 국적으로 구성된 연구원들이, 또한 그 자녀인 우리들이 일터와 학교에서 주고받는 브로큰 잉글리시 정도일까. 할 수 있는 말이 제한되어서인지 마음도 어떤 선을 넘지 못하는 듯했다. 늘 모자라는 건 자원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내 생각에 그건 달에서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애초에 추석이나 추수감사절 같은 명절들은 추수, 그러니까 농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인데 우리는 그걸 안 하니까. 작물 연구소, 종자보관소, 심지어 정신건강을 돌보기 위해 만든 주말농장까지 있었지만 어떻게 보아도 귀여운 규모일 뿐, 달 사람들 모두를 먹여 살릴 정도는 되지 못했다. 이론상으로 우리가 사는 주거 지역에 1천 가구 정도까지 수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농산물 재배를 본격적으로 시도하기에는 땅이 터무니없이 좁았다. 돔으로 덮여 있는 우리의 주거 구역은 모기 물린 자국처럼, 혹은 익지 않은 여드름처럼 달 표면에 살짝 튀어나와 있을 뿐이겠지.
갑자기 학교에서 전통과 문화 교육에 다시 열을 올리기 시작한 건 아마 얼마 전에야 막 완료된 3차 이주 때문일 것이다. 3년 주기로 시행된 이주 작업의 결과, 서로 다른 회차로 달에 온 아이들 사이에 미묘한 간격이 발생하기 시작해서. 예를 들어 1차로 달에 이주할 때 9살이었던 나는 이번 3차로 달에 온 15살 동갑내기와 서로 말이 잘 통하지 않았다. 걔는 달로 오기 전에 친구들하고 송별회를 하면서 패밀리 레스토랑과 노래방, 야간개장한 놀이공원에까지 갔다고 했다. 그것도 어른들 없이 자기들끼리만. 걔가 말하는 그런 장소들에 내가 마지막으로 가본 건 순서대로 6년, 7년, 8년 전 일이었다. 당연히 온 식구가 다 같이, 때로는 부모님 친구네 가족까지 해서 우르르.
하도 오래전 일이고 부모님과 같이 다닌 기억이 무척 재미있지도 않았기에 나는 그런 것들이 별로 그립지 않았지만, 걔처럼 최근에야 달로 이주해 온 아이들은 지구에 두고 온 추억들이 아쉬워 끙끙 앓았다. 지구에서는 달이 떴다가 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달에서는 같은 자리에 떠 있는 지구가 항상 보인다. 지구에서 보이는 달이 초승달에서 반달로, 반달에서 보름달로 차오르듯 지구도 가느다란 손톱 모양에서 완전히 동그란 모양으로 차고 기운다. 꽉 찬 보름지구가 뜨는 날에 하늘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는 아이들은 거의 모두 지구에서 이주해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이었다.
당연히 명절 이야기 발표 따위가 친구들과 놀이공원에서 보낸 짜릿한 시간 같은 것을 대체해주진 않겠지만, 적어도 여기에 너 혼자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줄 계기는 될 수 있었다. 다른 한국인 가족들과 공유할 수 있는 전통과 문화가 있고, 그것을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에게 내보일 수 있다는 건 꽤 멋진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가 그걸 실제로 기념하고 있는지, 그럴 수 있는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추석 해즈 낫 픽스드 데이트. 비커우즈 잇츠 피프틴스 오브 어거스트 온 루나 캘린더. 디스 베리 이어즈 추석 이즈 셉템버 투웬티퍼스트 온 솔라 캘린더.”
추석은 날짜가 고정되어 있지 않아요. 왜냐면 음력 8월15일이기 때문이에요. 올해의 추석은 양력 9월21일입니다.
이렇게 말하자 어떤 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나와 같은 1차 이주자인데다 영어실력이 거의 비슷해서 친하게 지내던 아이였지만 무시했다. 왜냐하면 다른 한국 아이가 설날에 대해 발표하면서 ‘음력 새해’(Lunar new year)라는 표현을 썼을 때 “차이니즈 뉴 이어라고 하는 게 맞다”며 끼어든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화면에 보름달 사진을 띄웠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본 적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는 달.
“유 노, 온 루나 캘린더스 피프틴스 데이, 피플 오브 디 어스 캔 시 더 풀 문. 위 코리언 콜 잇 ‘보름달’. ‘보름’ 민즈 피프틴 데이즈 앤 ‘달’ 민즈 문 인 코리언 랭귀지.”
아시다시피, 음력 15일에 지구에서는 둥근 달을 관측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그것을 보름달이라고 불러요. 한국어에서 15일을 뜻하는 보름이라는 말과 달이라는 말을 합친 것입니다.
“인 코리아, 풀 문 이즈 베리 어스피셔스 띵. 코리언 러브스 문 소 머치, 데어포어 위 해브 투 홀리데이스 투 셀러브레이트 더 풀 문. 추석 이즈 원 오브 뎀. 위 메이크 위시 투 더 풀 문 오브 추석.”
한국에서 보름달은 매우 상서로운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한국인들은 달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보름달을 기리는 명절을 두 개나 만들었고요. 추석도 그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추석의 보름달을 향해 소원을 빌어요.
슬라이드를 넘기려다 말고 나는 문득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 하늘에는 보름지구가 떠 있었다. 부피가 달의 다섯배나 되기 때문에 지구에서 보이는 달보다 훨씬 크게 보이는 그 행성이. 달에서 보름지구가 보이는 날에 지구에서는 달이 보이지 않는다. 지구에서 보름달을 볼 수 있는 날이면, 달에서는 지구가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달에 사는 우리들은 그러면 무엇을 보면서 소원을 빌어야 할까?
“아이 띵크…”
보여줄 슬라이드가 두 개나 남아 있었지만 나는 화면을 넘기지 않았다. 대신에 발표 대본에 없던 이야기를 만들어서 지껄이기 시작했다.
“세버럴 센츄리스 어고 썸 브리티시 피플 웬트 투 어메리카, 앤드 데이 셀러브레이티드 데이 얼라이브. 댓 워스 더 퍼스트 땡스기빙. 아이 스타티드 디스 프리젠테이션 윗 ‘잇츠 낫 땡스기빙’, 하우에버 썸하우 잇 얼소 땡스기빙 투. 아이 민, 피플 캔 인벤트 뉴 홀리데이스 비커우즈 데얼 아 플렌티 오브 뉴 띵스 투 셀러브레이트.”
몇 세기 전에 영국인 몇몇이 미국으로 건너갔고, 그들은 그들이 살아남았다는 걸 기념했어요. 그게 추수감사절의 시작이었죠. 이 발표를 시작할 때 저는 ‘추석은 추수감사절과 다르다’라고 했지만, 어쩌면 추수감사절과 같기도 한 듯해요. 제 말은, 사람들이 기념할 만한 새로운 것들은 얼마든지 있기에 새로운 명절을 만들 수도 있다는 거예요.
나는 코를 쓱 문질렀다. 땀이 맺히려고 해서.
“위 캔 낫 프레이 온 문 비커우즈 위 리브 히어. 위 캔트 씨 디 어스 온 추석 나이더. 소 잇츠 임파서블 투 셀러브레이트 세임 추석 오브 디 어스 온 디스 플레이스. 벗 댓 민스 낫 위 캔트 셀러브레이트 디스 베리 홀리데이. 아이 띵크…… 더 임포턴트 띵 이즈 위 트라이 투 오얼 낫. 잇 캔트 비 세임 벗 위 슏 트라이.”
달에 사는 우리는 달을 향해 소원을 빌 수 없죠. 추석날에 하늘에서 지구를 볼 수도 없어요. 그래서 여기서는 지구 사람들이 기념하는 명절과 똑같은 추석을 보내는 게 불가능해요. 그렇지만 그게 우리가 이 명절을 기릴 수 없다는 뜻은 아니에요. 제 생각엔… 중요한 건, 우리가 노력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같아요. 같을 수는 없지만, 노력은 해야 한다고요.
아이들은 발표가 끝났다는 것을 조금 후에야 알아챘다. 그래서 박수 소리는 별로 크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기뻤다. 추석에 대해 모르는 아이들에게 그게 무엇인지 이야기해주는 동안 나도 그동안 그게 뭔지 잘 몰랐다는 걸 알게 되어서. 이제는 추석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직은 말로 잘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깨달음이 내 안에 있었다. 송편도 없고 달도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추석을 추석으로 만들 수 있는 것. 아마도 오로지 마음에 달려 있는 것.
“땡큐.”
수줍게 덧붙이며 바라본 창밖에는 어김없이 보름지구가 떠 있었다.
박서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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