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보다 더 진한..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족' 웹툰

한겨레 2021. 9. 1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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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에 볼만한 웹툰 넷
민족의 명절 추석이자 닷새간의 황금연휴, 라고 하기에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코로나19 때문에 친척 간 만남도, 여행 계획도 쉽지 않은 시절이다. 어쩌면 ‘노멀’로서의 명절 역시 끝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동시대에 명절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길 만한 작품은 무엇일지 고민해보았다.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의 청명절처럼 신비의 마을로 가는 길이 열리고 가족이 해후하는 신통한 일은 없더라도, 명절이란 한때 혈연공동체에 대한 공통의 경험이었고 또한 그것이 제각각 해체되는(팬데믹 시대에 더더욱) 것조차 아마도 또 다른 공통의 경험이 될 것이기에. 그래서 골라보았다. 여전히 유효하지만 꼭 전통적일 필요는 없는 가족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는 웹툰 세편과 번외편으로서의 웹툰 한편을.
<위아더좀비>. 네이버웹툰 제공

좀비 떼 사이에서 만들어진 좀 이상한 가족

<위아더좀비> 글·그림 이명재/네이버웹툰

이것을 가족 드라마라고 불러도 될까. 좀비물의 설정을 지닌 시트콤에 가까운 만화 <위아더좀비>를 하나의 관점으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이 작품의 주요 축이 일종의 대안가족 서사라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좀비 발생 때문에 이제는 폐쇄된 거대 쇼핑몰 안에 다수의 좀비와 함께 갇힌 소수 생존자 중엔 장래희망이 ‘평범한 사람’일 정도로 사는 게 힘들던 주인공 김인종을 비롯해 밖에서는 이른바 ‘하자’ 있던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인종이 속한 생존자 그룹의 주요 전력 중 임경업은 탈영병이고 김소영은 동생을 괴롭히던 불량 학생을 죽여 살인범이 됐으며, 인종과 함께 전력 외 인원인 소현명과 왓 존슨은 음주운전 사고를 냈거나 글 한줄 쓰지 않는 소설가 지망생이다. 이 하자 많은 청춘들이 모여 있으니 소소하게 티격태격할 수밖에 없지만, 소영의 동생을 찾기 위해 타워를 뒤지고 유일한 어린이인 왕왕이의 마음을 달래는 소동극 속에서 그들은 함께 살기 위해 지녀야 할 타인에 대한 연민과 책임감으로 느슨하게 연결된다. 도저히 지울 수 없는 서로에 대한 짜증까지 포함해. 이 지긋지긋함이 가족이 아니면 무엇이 가족이란 말인가.

<개를 낳았다>. 네이버웹툰 제공

유기견은 어떻게 새로운 가족이 될 수 있을까

<개를 낳았다> 글·그림 이선/네이버웹툰

혈연 바깥에서도 가족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듯, 인간 종 바깥에서도 가족 구성원이 만들어질 수 있다. 초보 견주 다나가 포메라니안 명동이를 키우며 보호자로서 성장해가는 과정을 담았던 <개를 낳았다> 시즌1이 반려견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다룬 좋은 작품이었다면, 새로운 식구 웰시코기 가야를 중심으로 유기견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시즌2는 좋은 걸 넘어 탁월한 수준이다. 이젠 반려동물도 가족이고, 인간 보호자에게 커다란 책임이 따르며, 반려동물 유기는 천하의 몹쓸 짓이라는 게 어느 정도 공유된 시대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유기견에 대해서는 잘못된 편견이 마치 상식처럼 통용되고 있다. <개를 낳았다> 시즌2는 다나 자매가 가야를 임시보호 하고 새 보호자를 찾는 과정을 큰 축으로 유기견 입양에 대한 편견과 안일함, 구조적 문제를 다양한 각도로 그려낸다. 특히 어설프게 유기견 입양을 시도했다가 철저한 절차에 질려 펫숍을 이용한 이에 대한 주인공 다나의 다음 대사는 곱씹을 만하다. “유기견 입양이 엄격해서 유기견이 안 줄어드는 게 아니라 그렇게 쉽게 사올 수 있으니까 오히려 유기견이 느는 거예요.” 이쯤 되면 새 시대의 가족을 대하는 규범과 책임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살던 고향은>. 선우훈 작가 제공

가족 중 선우씨는 나 한명인 가족의 이야기

<나의 살던 고향은> 글·그림 선우훈/버프툰

“내 이름은 선우 훈. 성이 선우고 이름이 훈이다.” 선우훈 작가의 자전적 만화인 <나의 살던 고향은>은 이렇게 시작한다. 특이한 성이라 겪었던 소소한 에피소드를 늘어놓던 작가는 담담하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심지어 가족 중 선우씨는 나 한명뿐.” 10살 때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심지어 부계가족 다수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가 재혼하며 새로운 가족의 구성원이 된 그는 서울에서 전북 정읍으로 이사하며 가족 중 유일한 선우씨가 된다. 마치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연상케 하는 작가 특유의 도트 이미지 연출은 한 공간을 공유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한눈에 보여주는데, 그것은 집이라는 공간 안에서의 가족과 정읍이라는 공간 안에서의 지역민의 모습으로 공간에 대한 소속감을 드러낸다. 정읍천에 만들어진 물놀이장에서 컵라면을 팔던 이야기처럼 그가 풀어놓는 과거에 대한 향수 어린 기억들은 서울 중심적인 세계관을 벗어났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미시적 기록이자, 지역 특수성 안에서 한 가족이 만들어간 재밌고 따뜻한 공통의 경험이다. 그러니 그 모든 기록은 첫화 마지막 독백의 흔들릴 수 없는 증거가 될 것이다. “가족이 누구인지는 성씨 같은 걸로 정해지는 게 아닐 것이다.”

<유사과학 탐구영역>. ♣64s카카오웹툰 제공

번외편-원하지 않는 친척 모임 대비

<유사과학 탐구영역> 글·그림 계란계란/카카오웹툰

코로나19 시대의 명절 경험 중 그나마 유의미한 게 있다면, 다 같이 모여 아침부터 차례를 지내든 말든 전 지구적 재난 앞에선 돌아가신 조상님보단 과학에 대한 믿음이 더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명절에 친인척을 만나야 하고 그중 ‘안티 백서’(백신 접종 거부자)를 비롯한 과학 불신자나 유사과학 신봉자가 있어 벌써부터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유사과학 탐구영역>을 미리 읽어두길 바란다. 아이가 먹을 음식 데우는 데 전자레인지를 사용하면 전자파 때문에 안 좋다고 참견하는 사촌에게는 17화 ‘전자레인지의 공포’를, 설거지는 도와주지 않으면서 주방세제 대신 친환경 베이킹 소다로 씻으라고 주문하는 고모부에게는 9화 ‘베이킹 소다’, 오랜만에 가족 모임에 와서 건강 장판 구매를 권하는 막냇삼촌에게는 48화 ‘황토 온수 매트’ 편을 보여주자. 그리고 끝끝내 백신을 맞지 않고 버티는 누군가에겐 54화 ‘예방접종’ 편을 보여주며 따박따박 반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주장을 굽히겠냐고?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다. 다만 적어도 더는 당신을 귀찮게는 안 할 거다. 오는 설에는 아예 안 부를지도 모르고.

위근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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