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부자의 밥상

김철오 2021. 9. 18.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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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오 문화스포츠레저부 기자


마흔한 살 아들과 일흔넷 아버지가 마주 앉아 저녁밥을 먹는다. 밥상에 놓인 건 아들이 퇴근길에 사온 햄버거 두 개. 다른 가족 없이 아버지와 단둘이 저녁을 때우는 날이면 아들은 바깥 음식을 사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아버지는 노년이 돼서도 햄버거를 즐겨 먹었다. 간편하게 먹고 치울 음식으로 햄버거만한 게 없지만, 아버지에게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었다. 맛의 변화가 크지 않은 프랜차이즈 브랜드 햄버거를 아버지는 유독 좋아했다. 햄버거는 아버지에게 옛 기억을 소환하는 음식인 게 분명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묻는 아들 전화를 받으면, 아버지의 선택에서 열에 일곱은 햄버거였다.

납작하게 눌린 햄버거 두 개가 밥상에 펼쳐진다. 볼품없는 차림보다 안타까운 건 밥상의 온도다. 아버지와 아들은 살면서 크고 작은 일로 단절한 대화를 오랫동안 복구하지 못하다가 이제 겨우 말이 통해 한두 마디씩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밥상에 마주 앉는 것까지는 성공했는데, 영 말문이 열리지 않는다. “오늘은 좀 덥지 않았니?” “이 정도면 선선하죠.” 뻔한 질문과 대답이 적막을 밀어내기 위해 밥상 위에서 몸부림친다.

아버지는 맞벌이 아들 내외의 집을 주중에 찾아와 초등학생 손주를 돌본다. 집 밖에서 할 일이 있고 만날 사람도 많은 60대 어머니와 다르게 아버지의 낮 시간은 하교한 손주의 간식을 챙기고 학원으로 등원시키는 일 말고는 특별할 게 없다. 책을 읽고 TV를 보거나 라디오를 들으며 무료한 낮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고 아들과 며느리 중 누구든 먼저 퇴근하면 일과를 끝낸다.

아버지에게 저녁 식사는 단 5분이라도 누군가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하루의 첫 번째 순간이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 가족의 출근길·등굣길 인사, 혹은 슈퍼마켓에서 담배나 간식거리를 사면서 점원과 주고받는 한두 마디의 말은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몇 년 전까지 학교에서 벌어진 일을 재잘재잘 떠들어대던 손주는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자라면서 말수가 줄었다.

칠순 전의 아버지는 달랐다. 25년 전 현역에서 은퇴할 때까지 토목 설계도를 그리고 댐·방조제 공사장에서 현장 소장으로 일했던 아버지는 언제나 힘이 넘쳤다. 하지만 그 힘을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대화를 원만하게 풀어가지 못했다. 밥상에서 일장연설을 늘어놓다가도 누군가가 말을 끊고 들어오면 화를 냈고, 집 밖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시비를 기어이 육담으로 되받아 싸움을 키웠다.

아들은 대학교 1학년 때 자취방에 둘러앉은 친구들에게 이런 아버지를 ‘꼰대’라고 부르며 이죽거렸다. 그 시절 친구들 중 몇몇의 아버지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별반 다를 게 없이 꽉 막힌 가장들이었다. “물을 아껴 써라” “옷이 그게 뭐냐” “컴퓨터가 밥 먹여 주냐”는 아버지의 말 정도로 불만을 품었다는 친구는 대화에 끼지도 못했다. 20년도 더 지난 시절의 얘기다.

아버지가 은퇴한 뒤 집착한 건 명절이었다. 7남매의 장남인 아버지는 가족 간 화합보다 차례상을 중시하는 명절 풍습을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았다. 일가족 모두가 기독교인이지만 할머니는 차례와 제사만큼은 엄격한 상차림을 고집했다. 할머니의 사후에 제사권을 물려받은 아버지는 “외식하자”거나 “여행을 가자”는 삼촌·고모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장손인 아들은 4년 전 아버지의 칠순에 제사권을 넘겨받자마자 명절 차례와 제사를 추도예배로 바꿨다. 남자는 처가, 여자는 시댁도 방문하느라 2박3일을 꽉 채워 전만 부치고 날려버렸던 명절 연휴에 숨통이 트이니 환갑을 넘긴 삼촌·고모도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얼굴이 굳은 건 아버지뿐이었다. 그 뒤부터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대화는 급속하게 줄었다.

하지만 명절마다 꼬박꼬박 찾아가 추도예배를 드리는 아들에게 아버지도 굳게 닫았던 마음의 문을 열었다. 중요한 건 상차림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사실을 아버지도 몰랐을 리가 없다. 햄버거를 다 먹은 아버지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코로나 상황도 내년이면 나아지겠지. 올해 추석엔 각자 집에서 쉬고, 화상 추도예배 같은 걸 해보자.” 아들은 살면서 ‘명절에 오지 말라’는 말을 처음으로 들었다. 마음에 없는 말인 걸 아들도 알고 있다. “아니에요. 찾아갈 거예요. 집에 손볼 곳이 여기저기 많잖아요.” 아들도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해봤다. 아무려면 어떻겠는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대화는 한마디를 더 진전했다.

김철오 문화스포츠레저부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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