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는 장기로, 사랑은 영원으로.. "잘못 든 길은 없죠, 재탐색할 뿐"

신지인 기자 2021. 9. 18.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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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에세이집 낸 월가의 부부
시각장애 신순규·한근주

“아빠가 물에 빠지는 꿈을 꿨어요. 주변에 아무도 없고, 제힘으로는 도저히 아빠를 꺼낼 수 없었어요.”

시각장애인 신순규(54)씨에게 다섯 살 난 아들이 말했다. 그는 ‘어린 아들에게 벌써 아버지를 지켜야 한다는 중압감이 생겨 버렸구나’ 생각했다. 어느새 아들은 고등학생이 되었고, 그사이 신순규씨는 시각장애인 말고도 자신을 설명하는 수식어 몇 가지를 추가했다. 그는 월가의 애널리스트, 재무분석사인 동시에 한국 보육원 아이들을 돕는 야나(YANA) 선교회 이사장이다. <아무튼, 주말>에 ‘월가에서 온 편지’를 기고하며, 최근에는 두 번째 에세이집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들(판미동)’을 출간했다.

그에겐 동갑내기 아내 한근주(54)씨가 있다. 1980년대 가족과 브라질에 이민을 갔지만, 이대로는 주류 사회에 진출할 수 없다는 생각에 홀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가진 돈이라곤 한 학기 등록금과 한 달 생활비뿐이었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며 당차게 버텨나갔다. 그리고 미국 밀알 선교회 모임에서 신씨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최근 한국에 온 부부를 만났다. 25년 차 부부인데도 인터뷰하는 내내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이날 밀레니엄 힐튼 서울에서 한씨는 남편을 창문으로 데려가 바깥 풍경을 묘사해주기도 했다. “저기 성곽 옆으로 산책길이 나 있어. 젊은 부부와 귀여운 꼬마가 보이네. 이따 우리도 가서 사진 찍자 여보.”

서울 중구 밀레니엄 힐튼 서울에서 만난 신순규, 한근주 부부. 인터뷰 내내 손을 꼭 잡고 있던 부부는 "'투자는 장기로, 사랑은 영원히'가 결혼 당시 우리 둘의 맹세였다"고 했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결혼 앞두니 전우애 생기더라

-결혼 25년 차인데 참 다정해 보입니다. 손도 꼭 잡고.

한근주(이하 한): “원래 제가 남의 살 맞닿는 걸 싫어했는데, 이이와 결혼하고는 어딜 가나 꼭 잡고 있죠(웃음).”

신순규(이하 신): “처음 봤을 땐 이런 (다정한) 사람일 줄 몰랐어요.”

-첫 만남이 어떠셨길래.

신: “무례함 그 자체!”

한: “당시 남편이 진한 남색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온통 개털이 묻은 거예요. 그래서 보자마자 ‘어우, 개털 날려!’ 했죠. 보통 사람이라면 ‘시각장애인이어서 그런가 보다’ 했겠지만, 전 대놓고 한마디 해줬어요. 그래야 털을 자주 빗겨주고 안 묻히고 다닐 것 같아서.”

-그런데 어떻게 연애를?

한: “밀알 장애인 선교회 모임에서 만났는데, 제가 이이를 집까지 운전해주는 자원봉사자였어요. 근데 남편이 솔깃할 정도로 이야기를 재밌게 해요. 결정적인 건 선교회 캠핑하러 갔을 때인데, 캠프장 예약부터 게임 준비, 진행까지 남편이 단 한 번의 짜증도 안 내고 완벽히 해내는 모습을 보고 이런 사람이라면 믿고 함께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신: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1995년 6월, 저는 친구를 잃었어요. 미국에 있으니 보러 갈 수도 없었고. 참담한 와중에 아내가 날 보러 와줬어요. 슬픔을 나눠 진 사이가 된 거죠.”

-연애와 결혼은 다르지 않을까요.

신: “한국에 있는 시각장애인 형들이 결혼하는 과정을 봐서 솔직히 두려웠어요. 결혼을 반대하는 처가와 연을 끊거나, 부모에게 결혼식 시간을 일부러 잘못 알려주는 경우도 있었죠. 그런데 결혼이라는 목표가 생기니 둘 사이가 더 끈끈해지더라고요. 아내 부모님도 반대하셨는데 도저히 헤어질 기미가 안 보이니 허락하셨죠(웃음).”

-아내가 더 힘든 길을 택한 거겠죠?

한: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거나, 자질구레한 집안 수리를 도맡을 때(웃음)? 그렇다고 남편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이 제 인생의 장애로 느껴지진 않아요. 거리에서 우릴 쳐다보는 눈길도 피하지 않고 봐요. 당당하게.”

신: “아직 아내가 왜 날 선택했는지 완전히 이해할 순 없어요. 다만, 아내를 잘 아는 한 어르신이 이렇게 말했어요. ‘참 근주답다‘고!”

“딩동,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언제부터 앞을 못 보게 됐나요.

신: “여덟 살 때 실명 선고를 받았어요. 녹내장과 망막박리 때문이었죠. 어머니는 제가 안마사나 침술사 대신 피아노 선생님이 되길 바랐어요. 서울맹학교 중창단의 피아노 반주자로 미국에 공연을 나섰는데, 한 선교사 덕분에 유학의 기회를 얻었죠.”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던 동력이 뭘까요.

신: “어머니죠. 어머니는 음대를 졸업한 시각장애인 선생님을 보면서 제게도 희망이 있다고 느끼신 것 같아요. 그 선생님에게 나를 맡기려고 선생님 집에서 갓난아이를 돌보고 콩나물을 다듬었어요. 제가 미국으로 떠난 뒤에도 한국말과 역사를 잊으면 안 된다며, 사극 ‘장희빈’ 전편을 녹음해서 보내주셨죠.”

-그런데 증권 애널리스트의 길로 가셨더군요.

한: “운전 중 길을 잘못 들면, 내비게이션이 ‘잘못된 경로입니다’ 또는 ‘경로를 재탐색합니다’라고 하잖아요. 조수석에 앉은 남편은 후자의 말을 좋아해요(웃음).”

신: “제가 하루에 6시간 이상 피아노를 연습해도 천부적 재능이 있는 사람은 못 따라가겠더군요. 의사가 돼보려고도 했는데 물거품이 됐죠. 우울했지만 다시 제 길을 탐색했고 미국 최대 투자은행 ‘브라운 브러더스 해리먼(BBH)’에서 애널리스트로서의 길을 가게 됐어요.”

-그 또한 보통 일이 아니었을 텐데요.

신: “애널리스트는 통계 수치와 그래프를 봐야 하는 직업인데, 저는 수십 번씩 음성으로 들으면서 통째로 외워요. 장애가 없는 사람들도 밤새워 일하는데, 제가 어떻게 쉬어가며 일을 하겠어요.”

-두 분은 한국 보육원도 돕고 계십니다.

신: “2012년부터 비영리단체인 야나(YANA) 미니스트리를 운영하고 있어요. 보육원 아이들에게 미국 유학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어요.”

한: “은지가 기억에 남아요. 고교 졸업 후 알파벳 외 영어 기초가 안 된 상태로 미국에 왔는데 영어는 늘지 않고, 주위 잔소리에 본인도 짜증이 났던가 봐요. 열심히 해보자고 했더니, ‘저한테 쓰는 돈이 아까워요?’ 하더군요. 화가 날 때도 있었지만 끝까지 믿음을 주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결국 해냈죠. 올해 초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 합격했다고 연락이 왔어요.”

한근주씨는 미국에 있는 딸 예진에게도 영상 통화를 걸어 "딸, 다음엔 꼭 같이 오자. 창밖 남산서울타워 보여?"라고 말했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잘 보일 필요 없죠, 가족인데”

-아이를 어렵게 얻으셨다고요.

한: “7번의 임신과 유산 끝에 한 아이를 얻었어요. 아이 넷은 갖자고 했었는데 욕심이 너무 많았던가 봐요.”

신: “아내의 몸과 마음이 스트레스받는 걸 더 지켜볼 수 없어서 불임 치료를 그만두고 입양을 하기로 했죠. 그런데 서류를 준비하던 2004년 여름, 기적처럼 아이가 찾아왔어요. 첫아이 정택이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정택에게 누나가 생깁니다.

신: “야나를 세운 뒤 곧바로 수혜 학생을 데리고 왔죠. 보육원에서 아이를 한 명 고르는 방식은 아니었어요. 세상 어떤 부모도 아이를 골라서 낳진 않으니까요. 2014년 한국에서 예진이를 보내주었습니다.”

-낯선 곳에서 적응하기 어려웠을 텐데요.

한: “어떤 이유에선지 예진이는 거짓말을 많이 했어요. 금방 탄로가 날 소소한 것들. 아이를 온전한 인격체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잔소리하고 혼을 냈죠. 그러던 어느 날 예진이가 울면서 그래요. 보육원에선 모범생이었는데 여기 오니 문제아가 되어버린 것 같다고. 순간 아찔했죠. 제가 줄 수 있는 사랑이 이것밖에 안 되나 싶어서.”

신: “서로 마음의 벽을 부수는 게 어려웠어요. 예진이는 우리를 후원자로 볼지, 부모로 볼지 혼란스러웠을 거예요.”

한: “그런데 딱 한 가지는 약속할 수 있었어요. 우리는 예진이 너를 절대 떠나지 않을 거라고. 나중에 예진이가 대학을 가든 결혼을 하든 다시 돌아올 곳이 필요하다면 바로 이곳이라고. 예진이는 잘 보이고 싶어 거짓말을 했던 거예요. 이젠 서로 좋은 모습만 보여줄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죠.”

-두 남매는 서로 잘 지내나요.

한: “성향이 정반대예요. 원래 반대면 더 잘 맞는다잖아요. 올해 예진이는 대학에 입학해 기숙사 생활 중인데, 둘이 전화만 했다 하면 기본 3시간이에요. 서로의 남자 친구, 여자 친구부터 영화 얘기까지….”

따끔한 독설은 모전여전?

-아내가 원고의 첫 번째 독자겠네요.

한: “남편은 ‘한소네’라는 점자 정보 단말기를 써요. 텍스트를 점자나 음성으로 출력해서 읽고, 쓸 때는 타자기를 이용하죠. 그러다 보니 오타가 많아요. 일단 그걸 고쳐주고, 과격하거나 어색한 부분을 지적해요.”

신: “칭찬 먼저 해주면 참 좋겠는데(웃음). 이번 여름에 출간한 두 번째 에세이집도 아내가 빨리 안 봐주면 관심이 없나, 재미가 없나 의기소침해졌죠.”

-<아무튼, 주말>에도 가끔 모국인 한국의 현실을 짚는 칼럼을 쓰시지요.

신: “최근 몇 달간 한국에서 벌어진 모든 일은 ‘공정(公正)’과 엮여있어요. 하지만 완벽한 공정은 불가능하죠. 기회의 평등을 대안으로 꼽지만 그마저도 완벽히 공정할 수 없어요. 타고난 기회에 해당하는 생활환경, 재산, 부모 유전자를 어떻게 모든 사람이 똑같이 가질 수 있겠어요. 그러니 공정을 추구하지 말고, 불공정을 줄이는 데 초점을 둬야 해요. 운동장의 기울어진 부분을 채워야죠.”

한: “사실 우리 집에 독설가는 따로 있어요. 남편이 이런 얘기를 할 때면 딸이 한마디 따끔하게 던져요. ‘아빠, 제일 조심해야 하는 게 뭔지 아세요? 바로 중년 남자가 정치 얘기하는 거예요’라고. 통찰력이 수준급이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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