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한 땅콩, 얼얼한 마라가 만나.. 울적한 명동거리를 지키네

정동현 음식칼럼니스트 입력 2021. 9. 18. 03:02 수정 2021. 9. 19.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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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정동현의 pick] 탄탄면
서울 을지로 3가에 있는 '을지로남작'의 탄탄면.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탄탄면은 파스타 못지않게 국제적인 음식이다. 본래 국물 없이 식초, 간장, 고추기름 소스를 면 위에 올려주는 비빔면에 가까웠다. 청두(成都)를 비롯한 쓰촨(四川) 지역 음식이던 탄탄면은 20세기 홍콩으로 건너간다. 홍콩에서 매운맛이 줄어들고 땅콩소스를 넣는 등 다양한 변주가 벌어진다. 20세기 후반 탄탄면은 일본으로 건너가 라멘의 일종으로 자리를 잡았다. 세계 각지의 차이나타운뿐 아니라 홍콩의 딤섬 레스토랑, 일본 뒷골목 라멘집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국은 탄탄면을 뒤늦게 받아들였다. 중국 산둥(山東) 요리가 주를 이루는 한국에서 탄탄면은 흔한 음식이 아니었다. 21세기 들어 딤섬 같은 홍콩 음식과 일본 라멘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퍼지고, 결정적으로 마라 요리가 큰 유행을 타면서 탄탄면을 하는 집이 꽤 늘었다.

‘임대 문의’가 전염병처럼 번진 서울 명동에서 충무로 쪽 골목으로 가다 보면 ‘멘텐’이라는 라멘집이 나온다. 울적한 명동 거리에서 매번 오픈 전에도 긴 줄을 세우는 집이다. 좁은 문을 열고 들어서면 머리를 빛나게 민 주인장 혼자 가게를 지킨다.

메뉴는 단순하다. 닭 육수에 간장으로 간한 ‘쇼유라멘’ 하나, 저녁이 되면 ‘탄탄면’이 추가된다. 저온에서 익힌 닭가슴살, 돼지고기 차슈, 절인 죽순, 참나물에 올라간 쇼유라멘은 모든 그릇이 똑같은 모양으로 손님 앞에 나갔다. 새벽 산 공기를 마시는 것처럼 육수는 상쾌한 기운을 지녔고, 간장 양념이 안개처럼 빽빽이 맛의 밀도를 채웠다. 맛에 공백 없이 면과 고명이 꽉 짜인 완성품을 이뤘다.

탄탄면 역시 닭 육수를 기본으로 고추기름과 제피 같은 향신료로 마라맛을 냈다. 홍콩 등지에서 먹는 고소한 맛은 절제되었고 난폭한 매운맛도 찾기 힘들었다. 대신 날카롭지만 절제된 매운맛이 섬광처럼 빛났다가 깔끔한 뒷맛을 남긴 채 사라졌다. 간장으로 맛을 낸 삶은 달걀, 돼지고기가 자칫 자극 일변도로 끝날 맛의 중심을 잡았다.

경기도 수원 광교에 가면 ‘루지면관’이란 작은 집이 있다. 노부부 둘이 운영하는 이 집은 주인장이 나이 들어 쓰촨에 직접 가 요리를 배워 차렸다. 몸동작이 날래지는 못해 손님이 밀리면 음식 나오는 시간이 길어진다. 대신 음식 하나하나 배운 대로 꼼꼼히 내어 기다린 보람을 해치는 일은 적다. 디귿자로 놓은 바 좌석에 앉아 부산히 주인장 움직이는 모습을 보다 보면 음식이 탁탁탁 나온다.

마파두부는 전분의 끈적한 느낌이 적고 고추기름과 쓰촨후추로 맛을 내 입에서 매운맛이 산뜻하게 똑 떨어진다. 흰 밥에 고추기름 뿌리고 두부를 올려 먹으면 마치 중국 청두 거리 한편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까지 든다.

이곳의 탄탄면은 국물이 없고 대신 땅콩 소스와 고추기름으로 맛을 낸다. 면 위에는 다진 돼지고기와 쪽파와 파가 올라간다. 국물이 없으니 맛이 더욱 두텁다. 땅콩소스의 고소한 맛과 얼얼한 마라맛이 대조를 이루며 감흥을 증폭시킨다. 여러 메뉴를 시켜 나눠 먹는 이들이 많았는데 탄탄면은 큰 사이즈를 시키는 쪽이 다수다. 소스까지 긁어 먹은 빈 그릇을 보니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다시 서울 을지로에 가면 ‘남작’이라는 집이 있다. 저녁에만 영업하는 이곳은 주인장 마음대로 음식이 올라오는 창작 주점에 가깝다. 메뉴는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데, 일식의 큰 맥락 속에 홍콩, 대만, 쓰촨, 이탈리아까지 다양한 국적을 넘나든다.

주인장이 신경 쓰는 메뉴 중 하나는 ‘고기교자’다. 등을 굽힌 형상으로 쥐어 놓은 만두는 상앗빛을 내며 얌전히 접시에 가로 누워 있다. 도톰한 피 안에 알차게 든 소는 돼지, 소, 닭고기만 써서 맛을 냈지만 채소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다. 질 좋은 고기만 골라 썼다는 뜻이다.

하이라이트는 국물 없는 탄탄면이다. 일반 밀가루가 아닌 이탈리아 세몰리나 밀가루로 뽑아 우동처럼 발로 밟아 반죽했다. 노란빛을 내는 면을 씹으니 말캉하면서도 폭신했고 턱에 더욱 힘을 주자 면 중심에 이르러 단단한 물성도 느껴졌다. 땅콩소스와 고추기름, 실고추, 다진 돼지고기, 쪽파 등으로 맛을 낸 탄탄면은 소스가 면을 휘감듯 달라붙어 입속 끝까지 빨려들어왔다. 면의 굵기가 꽤 되니 진한 소스와 팽팽하게 겨룰 수 있는 힘을 지녔다.

이탈리아 면으로 무장한 탄탄면은 가우디의 건축물처럼 오묘히 자연스러운 맛을 지녔다. 면에 고추기름을 붓고 땅콩 소스를 얹었던 옛날 누군가의 남다른 창의는 을지로에서 면면히 이어졌다. 철 지난 공구상가와 재건축된 고층빌딩이 공존하는 서울의 맛이었다.

#멘텐: 탄탄면 9500원, 쇼유라멘 9000원.

#루지면관: 탄탄면 7500원, 마파두부 9000원.

#을지로남작: 탄탄면 1만8000원, 고기교자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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