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만능 비판한 '호텔 캘리포니아'는 어쩌다 낭만의 대명사가 되었나

배순탁 음악평론가·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배순탁의 비사이드 진행자 2021. 9. 1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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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배순탁의 당신이 몰랐던 팝]
그룹 '이글스'의 1976년 명곡
'호텔 캘리포니아'에 숨은 진실
1971년 결성된 미국 록밴드 이글스는 ‘호텔 캘리포니아’ 등 수많은 히트곡으로 1970년대 미국 밴드로는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했다. 왼쪽부터 티머시 B 슈미트, 글렌 프라이, 돈 헨리, 조 월시. /이글스 공식 홈페이지

모두가 음악을 듣는다. 음악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당신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어린 시절 ‘취미’란에 음악 감상이라고 적어본 적 있을 것이다. 음악을 향한 당신의 애정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다음 같은 이유 역시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음악 감상’이라고 쓰면 당신은 왠지 멋있어 보일 거라고 짐작했을 것이다.

괜찮다.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취미란의 양대 산맥은 역시 ‘음악 감상’과 ‘독서’ 아니겠나. 대중문화란 기본적으로 ‘허세’를 먹고사는 생물이다. 이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지구 상에 많지 않다. 요컨대 우리는 귀로만 음악을 듣지 않는다. 그 속살을 들여다보면 거기에 어떤 욕망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재즈 팬이 재즈를 좋아하는 건 재즈가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재즈가 음악적으로 더 탁월하다는 믿음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모든 음악은 평등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말, 그럴듯해 보여도 신뢰하지는 마시라.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진실은 때로 가혹하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음악 자체는 평등할 수 있음을. 그러나 음악이 사람과 접속하는 순간 평등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가운데 음악을 듣는다. 그런 과정 속에서 취사선택한다. 이 음악이 나를 더 세련되게 전시해 줄 거라고 판단한다. 이 장르야말로 ‘찐’이라는 확신하에 타 장르를 내리깔기도 한다. 한번 더 강조하고 싶다. 욕망 없는 음악 듣기란 없다. 멸균 상태의 음악 듣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진실이다.

1976년 발매된 ‘호텔 캘리포니아’ 앨범. 이 곡은 최근 개봉한 마블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 등장한다. /조선일보 DB

이제부터는 상상의 시간이다. 코로나는 어느덧 역사가 되고, 당신은 지금 회사 동료 여럿과 함께 음악 바에 앉아있다. 3차에는 역시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상무님의 명령에 가까운 제안 탓이다. 평소 당신은 음악을 꽤 좋아하는 편이다. 술도 들어갔겠다 신청곡이라도 해볼까 하는 찰나에 상무님의 일성이 울려 퍼진다. “이런 게 음악이지. 요즘 음악은…”. 그 순간 음악 바에서 울려 퍼지고 있을 목록을 뽑는다면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Hotel California·1976년)’가 상위권을 차지할 거라는 데 내 커리어 전부를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커리어는 그리 대단한 게 못 된다. 이거 참 다행이다.

신이 난 상무님, 기어코 한마디를 더 보탠다. “들어봐. 음악에 낭만이 있잖아.” 조금 전에 썼듯이 상상 속 당신은 음악 마니아다. 음악 역사에 대해서도 제법 알고 있는 편이다. 당신은 반론하고 싶지만 끝내 반론하지 못한다. 취향이 생계보다 중요할 순 없는 까닭이다. 당신이 미처 하지 못했던 그 반론, 이 지면을 빌려 대신한다.

‘호텔 캘리포니아’가 낭만적으로 들리는 건 이해할 만하다. 우선 캘리포니아라는 지명부터가 그렇다. 미국 서부는 예로부터 기회의 땅이었다. 19세기 중반 ‘골드 러시’ 이래 보다 나은 미래를 꿈꿨던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할리우드의 존재감도 빼놓을 수 없다. 거대 영화 스튜디오가 들어서기 시작한 1910년대 이후 캘리포니아는 대중에게 낭만이라는 환상을 더욱 강렬하게 심어줬다. 낭만적으로 다가온 이유는 곡에서도 찾을 수 있다. 아무리 영어에 자신 없어도 노랫말 중 다음 구절은 들었을 것이다. “Welcome to the Hotel California(어서 오세요, 호텔 캘리포니아로).”

실상은 좀 다르다. 아니, 많이 다르다. 곡에서 캘리포니아는 더 이상 약속의 땅이 아니다. 보컬을 담당한 드러머 돈 헨리(Don Henley)는 이 노래가 “순수의 상실과 영광의 퇴색에 관한 것”이며 여기서 “캘리포니아는 미국을 축약한 소우주”라고 밝힌 바 있다. 즉, 달콤했던 아메리칸 드림의 낭만은 옅어지고, 어느새 물질만능주의가 판치고 있는 1970년대의 미국에 비판의 날을 세운 셈이다. 곡 속에서 “머리는 무겁고 시야는 흐릿해진” 주인공은 “티파니로 치장하고 메르세데스 벤츠를 소유하고 있는” 여성의 안내를 받아 ‘호텔 캘리포니아’에 도착한다. 이를테면 여기는 물질만능주의가 응축된 장소다.

동명 앨범 ‘호텔 캘리포니아’의 다른 수록곡도 비슷한 주제 의식을 지닌다. 예를 들어 ‘더 라스트 리조트(The Last Resort)’는 리조트에 관한 내용이 전혀 아니다. 제목 자체가 ‘최후의 수단(resort)’이라는 뜻이다. 바로 환경 파괴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노래다. 결국 이글스는 ‘웨이스티드 타임(Wasted Time)’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일궈온 지난 날이 그저 시간 낭비에 불과했다고 슬픈 목소리로 토로한다.

결론이다. 익숙한 노래의 뒷이야기를 ‘몰랐다’고 기죽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착각을 하면서 산다. 영미권에서는 가사를 다 이해하고 음악을 음미할 거라고 지레짐작한다.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대표적인 예를 한번 들어볼까. 미국을 비판하는 노래로 쓰여진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본 인 더 유에스에이(Born in the U.S.A.·1984년)’는 미국 찬가로 둔갑해 대통령 선거에 쓰이기도 했다. 스팅이 밴드 시절 작곡한 ‘에브리 브레스 유 테이크(Every Breath You Take·1983년)’는 스토커의 시선을 다룬 곡임에도 결혼식 입장곡으로 널리 사랑 받았다.

그럼에도, 알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곡들이 분명히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있다. 앞으로 매달 하나씩 풀어놓을 계획이다. 많은 기대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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