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이지 정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스필버그 영화 '더 포스트'
'한국판 닉슨'의 언론 탄압법
캐서린 그레이엄은 결혼 후 45세까지 전업주부로 살았다. 하지만 데릴사위처럼 가업을 이어받았던 남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결국 캐서린은 워싱턴포스트의 총책임자가 되었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여성이 신문 발행인이 된 것이다.
1971년, 워싱턴포스트는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워싱턴 정치 엘리트가 보는 신문이라는 자부심과 달리 실상은 언제나 뉴욕타임스의 꽁무니만 쫓는 신세였다.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주식 공개를 추진했지만 시장의 평가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게다가 뉴욕타임스에서 베트남 전쟁에 대한 특종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로버트 맥나마라가 국방장관직을 역임할 당시 베트남 전쟁에 대한 온갖 기록을 모으고 분석하여 만든 ‘펜타곤 페이퍼’가 유출됐기 때문이다.
캐서린은 갈등의 기로에 섰다. 캐서린이 영입한 편집국장 벤 브래들리는 유능한 기자들을 총동원해 펜타곤 페이퍼를 확보한 상태다. 하지만 캐서린은 맥나마라와 절친한 사이이며, 백악관을 차지하고 있는 리처드 닉슨은 최악의 대통령이다. 그 전까지 미국 대통령이라면 마땅히 존중하고 지켰던 헌법적 가치를 무시한다. 대놓고 언론사를 협박하고 언론의 자유를 찍어 누르려 든다. 나쁜 권력이 주먹으로 침묵을 얻어내고자 할 때, 참된 언론인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닉슨은 뉴욕타임스를 상대로 추가 보도 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고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이 상황에서 워싱턴포스트가 같은 출처로 얻어낸 자료에 기반한 기사를 낸다면 그것은 법원에 대한 모욕죄가 된다. 캐서린은 고심 끝에 맥나마라와의 우정을 뒤로하고 권력과 싸우는 언론인의 길을 택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더 포스트’가 그려내고 있는 역사 속 실제 사건이다.
표현의 자유는 여러 인권 개념 중 가장 오래된 것 가운데 하나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당시 국민회의가 발표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문’ 제11조에 명시돼 있을 정도다. “사상과 의견의 자유로운 소통은 인간의 가장 귀중한 권리의 하나다. 따라서 모든 시민은 자유롭게 말하고 쓰고 출판할 수 있다. 다만 법에 규정된 경우에는 자유의 남용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식민지 아메리카의 주민들은 영국과 전쟁을 하여 독립국가를 건설하면서, 수정헌법 제1조에 표현의 자유를 더욱 크고 명료하게 새겨넣었다. “의회는 종교를 만들거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거나, 발언의 자유를 저해하거나, 출판의 자유,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 그리고 정부에 탄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 수 없다.” 이 원칙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새로운 세계 질서를 수립하던 1948년 ‘세계인권선언’ 제19조를 통해 다시 한 번 선포되었다.
프랑스 혁명과 미국 독립을 이끌었던 18세기의 계몽주의자들은 왜 이렇게 표현의 자유를 강조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폭압적인 권력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버드대 도서관장을 역임한 역사가 로버트 단턴이 <책과 혁명>, <검열자들> 등의 명저를 통해 잘 보여주었다시피, 프랑스 혁명은 곧 책과 신문, 잡지와 팸플릿 등으로 이루어진 출판과 인쇄의 싸움이었다. 자유사상가들은 천부인권과 법 앞의 평등을 외쳤고, 권력은 온갖 이유를 들이대며 그러한 목소리를 막으려 했다.
대서양 건너 아메리카 식민지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영국 왕의 통치를 원치 않는 식민지 백성들은 자유롭게 책을 쓰고 신문을 찍어내며 자신들의 생각을 공유했다. 그 전까지 변변한 필명을 얻지 못했던 토머스 페인이 1776년 독립의 정당성을 역설하는 <상식>을 펴내 일약 베스트셀러 저자가 되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현대 민주주의의 역사는 곧 자유로운 언론·출판의 역사와도 같다. 언론 자유가 없는 민주주의는 ‘다수의 독재’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당론으로 추진하고 있는 소위 ‘언론중재법’에 대해 걱정을 넘어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8월 30일 처리가 불발된 개정안은 ‘허위·조작 보도’의 내용을 법으로 규정한다. 잘못된 보도가 왜 잘못되었는지 입증할 책임을 언론사에 떠넘긴다. 일단 벌금을 때리면서 ‘네가 무죄라는 것을 증명해보라’는 식이다. 손해배상액 산정을 언론사의 지난해 매출과 연동시킨다는 대목에 이르면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게 된다. 심지어 중국에서도 시도만 하고 있지 아직은 만들지 못한 악랄한 언론 탄압법이 9월 27일 다시 국회 본회의장에 오를 예정이다.
추석을 앞둔 지금, 대한민국은 수십 년 전으로 퇴행 중이다. 현 정권의 오만한 태도는 전례를 찾기 어렵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야당의 윤석열 후보를 겁박하며 대놓고 정치 개입을 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대장동 개발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에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여러모로 신뢰도가 높다고 보기 어려운 ‘공익제보자’의 입만 바라보던 친정부 언론들은 문재인 정권이 대놓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지금도 정파 논리에 따라 계산기를 두드릴 뿐이다. 그나마 언론 자유가 보장된 지금도 이런데 언론중재법이 통과된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과연 어떻게 될까.
<더 포스트>로 돌아와 보자. 전설적인 편집장 벤 브래들리는 후배 기자에게 말한다. “언론의 자유를 지키는 방법은 언론이 제 목소리를 내는 것뿐이야.” 뉴욕타임스가 법원의 가처분으로 입이 틀어막힌 상황에서 워싱턴포스트가 펜타곤 페이퍼에 대한 후속 보도를 내보낸 것은 그래서였다. 그 용기에 감명받은 다른 언론들 역시 워싱턴포스트의 보도를 따라간다. 이제는 한두 언론사를 위협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 언론 대 권력의 정면 승부. 연방대법원은 6대3으로 언론의 손을 들어준다. 블랙 대법관은 그 결정을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언론은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이지 정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닉슨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언론의 자유를 박탈하려 들었던 펜타곤 페이퍼 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언론중재법이 통과된다면 문재인 대통령 역시 같은 잣대로 평가받을 것이다. ‘한국의 닉슨’이 되고 싶지 않다면 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언론중재법을 철회하라는 의사를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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