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는 나약한 현대인 위로하고 힘을 주는 수호신"
양평=민동용 기자 2021. 9. 18. 03:01
해태상 7000여 점 모은 이인한 씨.. 경복궁 석물에 반해 30여 년 수집
中 문화재급 등 수억짜리도 구입
양평에 각국서 모은 작품들 전시 "돌 기운 받아 좋은 일 많아지길"
中 문화재급 등 수억짜리도 구입
양평에 각국서 모은 작품들 전시 "돌 기운 받아 좋은 일 많아지길"
서울 종로구 효자동에서 태어나 보낸 6년이었다. 이인한 씨(65)의 반평생 ‘돌과의 사랑’을 결정지은 건.
“경복궁 인왕산 북한산을 만날 다녔어요. 돌도 보고 바위도 보고. 경복궁에 동물 모양 석물(石物)이 많잖아요. 보면 재미있고, 친근하고….”
이 씨는 세계에서 해태 석상을 가장 많이 보유한 사람으로 골동품업계에서 꼽힌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동남아시아 유럽 등 수십 개국 해태상(像)을 7000여 점 소장하고 있다. 주먹만 한 소품부터 등신대(等身大)까지, 1000년 전 것부터 최신 작품까지.
이달 초 경기 양평군,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일종의 수장고에서 이 씨를 만났다. 고구려부터 조선시대, 중국 명(明) 청(淸)대, 150여 년 전 태국 것 등 해태상 500여 점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해태는 선과 악을 구별하고 화재 같은 재앙을 물리치며 상서롭지 못한 것을 제거한다는 전설 속 동물이다.
“해태는 정의를 상징하고 복을 가져다주지요. 능(陵)이나 산소 앞 문관석(文官石)은 죽은 자를 위한다면 해태는 산 자를 위한 것입니다.”
이 씨에 따르면 옛 중국에서 사자(獅子)를 상상해 그려놓은 게 해태다. 광화문 앞 해태상을 보고 중국인들은 ‘사자상’이라 한단다.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시아는 물론이고 유럽에도 사실상 해태상이 있다는 얘기다.
해태상을 모으기 시작한 건 30대 초반인 1980년대 말이다. 오퍼상을 하던 이 씨는 서울 인사동에서 ‘조그맣고 오래된 돌’을 보고는 그냥 샀다. 이 씨는 “돌이 재미있으니까”라고 했다. 20만 원 정도였다.
“20만, 30만 원이면 하나 샀어요. ‘술 한잔 안 먹고 이거 산다’는 생각이었죠. 한두 개, 서너 개 사다 보니 인사동이나 장안평 돌 장사들이 연락하는 거예요. 좋은 돌 나왔다고.”
이후 브라스베드(brass bed·놋쇠 틀 침대)를 미국에 수출하는 가구제조업이 잘되면서 해태상 수집은 궤도에 올랐다. 한꺼번에 10점, 100점을 사기도 했고, 중국에 가서 문화재급 돌들을 다량으로 사오기도 했다. 처음에는 마냥 좋아서 샀는데 나중에는 ‘저건 내가 꼭 갖고 진열을 해야지’ 하는 의무감도 생겼다. 한 점에 몇억 원 준 것도 있고, ‘몇억 원을 주겠으니 팔라’는 것도 있다. 중국 서적을 돈 주고 번역해서 읽으며 해태를 공부했다. 지금은 ‘나보다 해태상을 더 잘 아는 사람이 한국에 누가 있을까’ 하는 수준이다. 그래도 여전히 어떤 해태상을 보고 정확히 어느 시대 것이라고 특정하기는 어렵다.
해태상은 뭐 하나 같은 게 없다. 손으로 조각한 데다 돌마다 성질이 다르고 수백 년 바람에 쓸리고 깎이며 독특한 얼굴이 생겨난다. 한국 해태상은 위트가 있고 온화한 반면 중국 돌은 사납고 세다. 다만 한국 해태상은 궁궐이나 절에 있던 것이 거의 전부라 수가 적다.
40대 때는 세계 최초 해태박물관을 짓자는 포부가 있었다. 6년 전 전남의 한 기초단체가 터를 제공하겠다고 해서 해태상 1000여 점을 기탁했다. 기공식도 했다. 하지만 기초단체장이 바뀌자 계획은 취소됐다.
“그럼 나라도 박물관을 지어야겠다고 해서 정한 게 여기(양평)입니다. 2000평(약 6600m²)밖에 안 돼서 전시 공간이 부족하죠. 이제는 열정이 식어버렸는지 좀 지쳤어요. 내가 욕심을 너무 부렸나, 에이 다 없애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하지만 박물관 건립을 돕고 있는 한 골동품상은 “그래도 좋은 돌 있다고 하면 눈을 번쩍 뜬다”라고 했다.
이 씨가 생각하는 해태상은 수호신이다. 정신적으로 나약한 현대인에게 위안이 되고, 그들을 지켜주며 좋은 일이 생기게 해줄 것 같은….
“1000년 된 돌에서 나오는 기(氣)를 받아서 잘되시라는 겁니다.” 이 씨가 해태 같은 미소를 지었다.
“경복궁 인왕산 북한산을 만날 다녔어요. 돌도 보고 바위도 보고. 경복궁에 동물 모양 석물(石物)이 많잖아요. 보면 재미있고, 친근하고….”
이 씨는 세계에서 해태 석상을 가장 많이 보유한 사람으로 골동품업계에서 꼽힌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동남아시아 유럽 등 수십 개국 해태상(像)을 7000여 점 소장하고 있다. 주먹만 한 소품부터 등신대(等身大)까지, 1000년 전 것부터 최신 작품까지.
이달 초 경기 양평군,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일종의 수장고에서 이 씨를 만났다. 고구려부터 조선시대, 중국 명(明) 청(淸)대, 150여 년 전 태국 것 등 해태상 500여 점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해태는 선과 악을 구별하고 화재 같은 재앙을 물리치며 상서롭지 못한 것을 제거한다는 전설 속 동물이다.
“해태는 정의를 상징하고 복을 가져다주지요. 능(陵)이나 산소 앞 문관석(文官石)은 죽은 자를 위한다면 해태는 산 자를 위한 것입니다.”
이 씨에 따르면 옛 중국에서 사자(獅子)를 상상해 그려놓은 게 해태다. 광화문 앞 해태상을 보고 중국인들은 ‘사자상’이라 한단다.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시아는 물론이고 유럽에도 사실상 해태상이 있다는 얘기다.
해태상을 모으기 시작한 건 30대 초반인 1980년대 말이다. 오퍼상을 하던 이 씨는 서울 인사동에서 ‘조그맣고 오래된 돌’을 보고는 그냥 샀다. 이 씨는 “돌이 재미있으니까”라고 했다. 20만 원 정도였다.
“20만, 30만 원이면 하나 샀어요. ‘술 한잔 안 먹고 이거 산다’는 생각이었죠. 한두 개, 서너 개 사다 보니 인사동이나 장안평 돌 장사들이 연락하는 거예요. 좋은 돌 나왔다고.”
이후 브라스베드(brass bed·놋쇠 틀 침대)를 미국에 수출하는 가구제조업이 잘되면서 해태상 수집은 궤도에 올랐다. 한꺼번에 10점, 100점을 사기도 했고, 중국에 가서 문화재급 돌들을 다량으로 사오기도 했다. 처음에는 마냥 좋아서 샀는데 나중에는 ‘저건 내가 꼭 갖고 진열을 해야지’ 하는 의무감도 생겼다. 한 점에 몇억 원 준 것도 있고, ‘몇억 원을 주겠으니 팔라’는 것도 있다. 중국 서적을 돈 주고 번역해서 읽으며 해태를 공부했다. 지금은 ‘나보다 해태상을 더 잘 아는 사람이 한국에 누가 있을까’ 하는 수준이다. 그래도 여전히 어떤 해태상을 보고 정확히 어느 시대 것이라고 특정하기는 어렵다.
해태상은 뭐 하나 같은 게 없다. 손으로 조각한 데다 돌마다 성질이 다르고 수백 년 바람에 쓸리고 깎이며 독특한 얼굴이 생겨난다. 한국 해태상은 위트가 있고 온화한 반면 중국 돌은 사납고 세다. 다만 한국 해태상은 궁궐이나 절에 있던 것이 거의 전부라 수가 적다.
40대 때는 세계 최초 해태박물관을 짓자는 포부가 있었다. 6년 전 전남의 한 기초단체가 터를 제공하겠다고 해서 해태상 1000여 점을 기탁했다. 기공식도 했다. 하지만 기초단체장이 바뀌자 계획은 취소됐다.
“그럼 나라도 박물관을 지어야겠다고 해서 정한 게 여기(양평)입니다. 2000평(약 6600m²)밖에 안 돼서 전시 공간이 부족하죠. 이제는 열정이 식어버렸는지 좀 지쳤어요. 내가 욕심을 너무 부렸나, 에이 다 없애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하지만 박물관 건립을 돕고 있는 한 골동품상은 “그래도 좋은 돌 있다고 하면 눈을 번쩍 뜬다”라고 했다.
이 씨가 생각하는 해태상은 수호신이다. 정신적으로 나약한 현대인에게 위안이 되고, 그들을 지켜주며 좋은 일이 생기게 해줄 것 같은….
“1000년 된 돌에서 나오는 기(氣)를 받아서 잘되시라는 겁니다.” 이 씨가 해태 같은 미소를 지었다.
양평=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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