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한 스푼] 기자, 전통 저널리스트와 창작자 사이에서

김수지 월간 신문과방송 기자 입력 2021. 9. 18. 02:10 수정 2021. 9. 28.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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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김수지 월간 신문과방송 기자]

기자협회보의 창립 57주년 기획은 “기자라는 업이 위태롭다”였다.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매년 이맘때 실시하는 여론조사에서 기자들의 직업 만족도는 지난해까지 3년 연속 하락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실시하는 '언론인 조사'에서도 언론인 직업 전반에 대한 만족도(11점 척도)는 2013년 6.97점에서 2017년 5.99점으로 급격히 떨어졌다. 언론인으로서의 비전 부재, 사회적 평가 하락, 낮은 임금과 복지, 과중한 업무 등이 사기 저하 요인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기자가 일터를 떠났다.

기자협회보 글을 읽고 나서 얼마 후 또 다른 글을 접했다. 미디어 전문 매체 미디어고토사의 글이었다. 글의 요지는 이렇다. 언론은 기울어져 가는 산업이지만 그럼에도 “미디어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 뉴스레터 플랫폼 서브스택의 성장과 그 속에서 성장하는 여러 저널리스트 사례에서 보듯, 콘텐츠를 생산하고 구독자를 끌어모을 저널리스트라는 직업은 여전히 희망적이란 전망이었다. 30만 달러의 막대한 선불금을 제안받고 뉴욕타임스를 나와 뉴스레터를 시작한 문화 전문기자 테일러 로렌츠(Taylor Lorenz)가 대표적이다. 언론사를 떠난 기자들은 오히려 크리에이터 생태계의 주역이 될 수 있다.

▲ 테일러 로렌츠 (Taylor Lorenz)

한쪽에서는 기자라는 직업의 위태로움을, 한쪽에서는 기자의 희망찬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는 이 모습은 언론계가 처한 상황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요약해보면, 언론사의 조직력과 권위를 등에 업어 글을 쓰는 전통적인 기자직의 미래는 불투명한 반면, 크리에이터 생태계의 성장을 등에 업고 글을 쓰는 '창작자'로서 기자직의 미래는 밝다. 이는 전통 미디어 권위가 떨어지는 가운데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뉴미디어가 공론장 한복판에 우뚝 서게 된 상황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미디어 생태계 급변 속에서, 그 구성원인 기자는 '전통 저널리스트'와 '창작자'라는 두 방향성 중 하나를 선택한 것이다.

젊은 기자들이 앞다퉈 언론사를 떠나 스타트업 문을 두드린다(기자협회보 4월20일자)는 기사도 이 상황을 명확히 보여준다. 과거에는 언론사 권위를 바탕으로 기자들이 정치권이나 기관으로 옮기는 것이 대표적 이직 사례였다. 하지만 이제 기자들은 언론사 권위를 활용하지 않는 스타트업에 몸담거나 스스로 구독자층을 확보한 1인 미디어가 되기도 한다.

미디어 업계 종사자로서 크리에이터 생태계 성장은 환영할 만하다. 제대로 된 콘텐츠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도 콘텐츠 생산자에겐 고무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동시에, 공론장의 한 축인 전통 언론이 급속도로 허물어져 가는 이 상황은 매우 걱정스럽다. 공론장은 '창작자의 선전'만으로는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복잡한 이야기를 단순화하기 위해 창작자와 전통 저널리스트를 비교해보자. 창작자는 개인의 영향력에 많이 좌우되는 직업이다. 크리에이터 생태계는 '슈퍼스타 경제학'이 지배한다. 스타성 있는 창작자 주변으로 팬심을 지닌 구독자가 모여 구독료 또는 광고 시청으로 콘텐츠료를 지불한다. 창작자가 생산하는 콘텐츠엔 한 개인의 의견이나 관점이 많이 녹아있다. 즉 '주관성'이 강한 콘텐츠다. 독자들은 그 사람 영향력과 관점을 소비하고 싶어 한다.

반면 전통 저널리스트는 개인 역량도 중요하지만, 조직 역량도 크게 영향을 미치는 업이다. 전통 저널리스트는 팩트를 위해 수백의 인력과 시간을 투자하는 조직의 인프라를 이용한다. (최근엔 정파성 등으로 비판받고 있긴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주관성보단 '객관성'을 추구하는 업이다. 삼각 확인, 데스킹, 기사 형식 등 객관주의를 추구하기 위한 직업적 장치들이 있다. '진실을 추구한다'는 명제가 전통 저널리스트의 직업의식을 설명한다. 독자들은 언론이 내놓는 객관적이고 진실한 팩트를 소비하고 싶어 한다.

▲ 마이크와 수첩을 손에 쥐고 무언가를 메모하는 모습. 사진=gettyimagesbank

물론 현실에선 기자란 업을 전통 저널리스트와 창작자라는 이분법으로 적확하게 나눌 수는 없을 것이다. 언론사를 나와 1인 매체를 창간한 이도, 저널리스트란 직업의식으로 팩트를 추구할 수 있다. 반대로 언론사에 속한 기자들도 유튜브나 뉴스레터 등을 통해 창작자로 변신할 수 있다. 기자들은 전통 저널리스트와 창작자 사이에서 독자에게 소구할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 중요한 건, 두 축 중 하나가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기꺼이 시간과 인력, 비용을 감수해 진실을 좇는 언론사도, 독자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는 크리에이터 생태계도 모두 우리 사회 공론장에 필요한 존재다. 기자가 두 방향 중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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