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실체 판단하는 도구로 숫자 사용
"백신에 1달러 투자 때 16달러 절약
21세기 생활양식 1880년대 완성"
한국 행복점수 등 국내 상황 포함
당신은 세상을 정확히 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가짜뉴스가 판치는 요즘은 더욱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일 수 있지만, 저자는 짐작과 추측, 검증되지 않은 통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숫자의 의미와 맥락을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숫자만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책은 백신 접종을 의료적 관점이 아닌 ‘편익-비용 비율’이라는 경제적 관점으로 접근한다. 2016년 미국 의료 전문가들은 100곳의 저소득 및 중소득 국가를 대상으로 백신 접종 보급에 따른 투자 수익을 계산했다. 백신을 제조·공급·운송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과 발병·사망을 피함으로써 얻는 수익 추정값을 비교해보니, 백신 접종에 1달러를 투자할 때마다 16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경제적 편익을 보다 폭넓게 해석하면 편익-비용 비율은 44배에 달했다.
통계에 따르면 21세기 생활양식이 1880년대 이미 완성됐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화력발전과 수력발전은 1882년 처음 시장에 도입되어, 지금까지도 세계 전기 소비량의 80% 이상을 생산한다. 이 덕분에 1889년 엘리베이터가 생겨났고 고층 건물이 끝없이 높아질 수 있었다. 또 볼펜, 자전거, 경철도, 내연기관, 회전문, 전기다리미, 금전등록기 등이 발명되어 1880년 미국인의 일상은 현대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저자가 1880년대를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해준 경이로운 시대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인류의 식량 낭비 수준도 숫자를 통해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연간 평균 뿌리 작물과 과일, 채소 40∼50%, 어류 35%, 곡물 30%, 식물유와 육류, 유제품 20%가 버려진다. 전 세계가 수확한 식량 3분의 1 이상이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것이다. 때문에 부유한 국가에서 음식물 쓰레기가 넘치는 주된 이유로 과잉 생산과 실제 소비 간 격차가 지목된다.
저자 바츨라프 스밀 캐나다 매니토바대 명예교수는 에너지, 환경, 식량, 인구, 경제, 역사, 공공 정책까지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50여년간 광범위한 분야의 연구를 선도해온 환경과학자이자 경제사학자이다. 프라하 카를로바대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럽연합을 비롯해 미국과 유럽의 다양한 국제기구에서 정책자문을 했다. 세계의 에너지와 환경 정책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그는 비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과학진흥회(AAAS)가 주는 ‘과학기술의 대중이해상’을 받았다. 2010년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가 발표한 ‘세계적 사상가 100인’에 선정되었고, 2013년 캐나다에서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훈장인 캐나다 훈장을, 2015년 OPEC 연구상을 수상했다. 그는 빌게이츠가 가장 신뢰하는 사상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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