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물가 넉달째 3%대 상승..'물가 안정' 물건너갔다
고삐 풀린 물가와 정부의 오판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8월까지 5개월 연속 전년 대비 2%대 상승률을 유지하고 있고, 8월에는 상승률이 2.6%로 5월·7월에 이어 또 다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소비자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체감물가는 이보다 더 크게 뛰었다. 구매 빈도가 높은 품목 141개를 골라 작성해 ‘체감물가지수’로 불리는 생활물가지수는 지난달 3.4% 상승해 소비자 물가보다 상승세가 가팔랐다. 특히 최근 주요 추석 성수품 가격이 크게 오른 데다, 환율 상승·재난지원금 지급 등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 늘면서 당분간 가파른 물가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외식 물가 상승세도 두드러져
정부가 6월 발표한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1.8%였다. 하지만 현시점에선 올해 2%대 상승이 기정사실이 됐다. 1~8월 누계 기준 상승률은 이미 2.0%로 올라섰다. 연간 상승률이 2% 아래로 내려가려면 남은 기간(9~12월) 매달 2%를 밑돌아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분위기다. 이 경우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2012년(2.2%) 이후 9년 만에 2%대로 올라서게 된다.
하지만 물가는 정부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정부의 오판 원인으로는 원자재·곡물 가격 등 ‘외부 요인’을 간과한 점이 꼽힌다. 국내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지만, 국제 무역 메커니즘에 따라 움직이다 보니 한국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글로벌 경기 회복으로 수요가 늘면서 국제 유가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은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수입에 의존하는 원자재 가격 상승분이 국내 제품에 반영되면서 연쇄적으로 가격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폭염·가뭄 등 이상기후로 국제 곡물 가격도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국제 곡물 가격이 오르면 빵이나 식용유 등 가공식품 가격이 오르고, 사료 가격 등도 상승 압력을 받는다. 실제 지난달 수입물가지수(한국은행, 2015년 기준 100)는 120.79로 2014년 4월(120.89)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21.6%나 상승했다. 이는 2008년 12월(22.4%)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오른 것이다.
5차 재난지원금 풀려 유동성 넘쳐
전기·도시가스 요금도 추석 연휴 이후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전력용 연료탄 가격 인상과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급등으로 요금 인상 요인이 누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지역 평균 냉면 가격이 9577원으로 1만원에 육박하는 등 외식 물가의 상승세도 두드러진다. 재료비·인건비·임대료 등 고정비용 부담이 커진 영향이다. 외식 가격은 한번 오르면 그 후 내려가지 않는 특성이 있다. 외부 요인 가운데서는 국제 유가가 가장 큰 변수다. 두바이유,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 등 국제 유가는 지난해보다 약 75% 정도 오른 70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2014년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고유가는 기업 생산비용을 높이고, 이는 재화 가격에 전가돼 소비자 물가도 올린다. 과거 경제에 심각한 부담을 초래했던 ‘오일 인플레이션’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국제 유가가 배럴당 평균 70달러까지 오를 경우 국내 소비자물가는 0.8%포인트 상승 요인이 발생할 것으로 분석했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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