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100명당 3~5명 ADHD..부정적 자아상 개선해야

2021. 9. 18.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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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마음 다이어리 〈끝〉 성인기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에 대한 첫 칼럼에서(2020년 7월 4일자 성철이 사례) ADHD의 어린시절 증상과 원인 및 치료에 대해 다뤘다. 이번에는 어른이 된 ADHD는 어떤 모습인지와 개입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21세 승혜는 다소 머뭇거리며 혼자 진료실에 들어왔다. 단발머리에 펑퍼짐한 후드티를 입은 평범해 보이는 여대생이었다. 사전 설문지에 기록된 내원 사유를 보니 ‘일반 정신건강의학과에서 ADHD 클리닉 방문을 권유함’이라고 적혀 있었다.

“지금 대학교 2학년이네요? 전공이 뭔가요?” 내가 물었다.

“아, 산업디자인 전공입니다.” 승혜는 여전히 긴장된 상태로 대답했다.

“처음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할 당시는 어떤 어려움 때문에 가신 건가요?”

“좀 불안하고 우울해서요. 실은 제가 어릴 때부터 좀 산만했었거든요. 건망증이 심하고 하도 뭘 자꾸 잃어버려서 초등학교 때 엄마가 저를 소아정신과에 데려가서 상담받게 하고 검사 받았던 적도 있었어요. 병원 원장님이 그 이야기를 듣고 저를 소아정신과 ADHD 클리닉에 가보라고 소개해 주셨습니다.”

“언제부터 불안하고 우울했나요? 조금 자세히 이야기해 줄 수 있어요?”

어린 시절 ADHD인 줄 모르는 경우 많아

아이 마음 다이어리 삽화
“대학생이 된 후 과제가 너무 많아요. 제출 마감 직전까지 미루다가 못 낸 적도 있고, 팀플(팀프로젝트)에서는 맡은 부분을 제 시간에 못 마치니 팀원들을 실망시키게 되고 미안한 일이 반복됐어요. 맨날 주눅 들게 되고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요. 제 자신한테도 화가 나고요.”

승혜는 대학생활을 하며 쌓인 감정들이 많은 것 같았다. ADHD 클리닉 방문을 권유받은 직후 승혜는 주간지 심층기사에 실린 성인 ADHD 관련 내용을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칼럼 내용이 자신의 문제와 거의 일치했다고 말했다.

“선생님, 마치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어요. ‘아, 내 문제가 이거였구나. 왜 이제야 알았을까’ 생각했어요. 평소 제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자책을 많이 하고 항상 우울했었는데 ADHD는 치료받을 수 있다고 해서 오게 됐습니다.”

승혜는 중학교 때까지는 반에서 늘 5등 안에 드는 상위권 성적이었다고 한다. 비록 물건을 잘 잃어버리고 덤벙대기는 했지만 학업성적이 나쁘지 않고 친구관계도 좋았다고 한다. 고등학교 입학 후 학습양이 많아지고 입시가 다가오면서 내신 등급이 기대만큼 잘 나오지 않자 공부에 대한 자신감이 급격히 저하됐고 평소 취미로만 하던 미술 쪽으로 진로를 결정했다고 한다.

대학에 입학한 뒤 승혜는 주말마다 카페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곳에서 손님 카드를 결제하는 과정에서 반복되는 실수와 메뉴 전달 오류, 손님과 잦은 말다툼 등으로 여러 번 해고를 당했다고 한다. 실기 시험을 앞두고는 시간에 쫓기기 일쑤고 과제 마무리를 못 하고 제출한 일이 많아 1학년 1학기부터 학사경고를 받았다.

나는 승혜에게 과거 소아정신과에서 상담하고 검사했던 결과는 어떠했는지, 그리고 치료를 받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물었다. 승혜는 자신이 너무 어려서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부모가 2주 뒤 승혜와 함께 방문했다. 승혜 어머니는 10여 년 전 검사지를 그대로 보관하고 계셨다. 기록은 얼마 되지 않았다. 상담 기록과 검사지를 훑어본 결과 승혜가 치료를 받지 않은 이유를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우선, 승혜의 인지기능이 상당히 우수했다. 초등학교 성적도 좋았고 학교에서도 부정적인 평가는 없었다. 다만, 매사에 건망증이 심해 학교에 뭘 두고 오거나 준비물을 다 챙겨 놓고 집에 두고 등교하는 일이 많았다. 그 당시 소아정신과 전문의는 ADHD 약물치료를 포함한 치료를 권유했지만 승혜의 부모는 아이가 커가면서 점차 좋아질 것이라 생각해 병원을 더 이상 내원하지 않았다.

성인 ADHD 자가보고척도
승혜는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고 말했다. 예컨대, 가져갈 물건을 하루 전날 현관에 내놓거나 해야 할 일을 잊지 않으려고 메모를 해 두려고 노력한 것이다. 그 결과 승혜는 고등학교를 무난하게 졸업할 수 있었고 본인이 원하는 전공과에 합격한 것이다.

ADHD는 본래 만 6세에서 12세 사이에 발병하지만 인지기능이 우수하고 부주의성 유형(과활동성이나 충동성이 두드러지지 않는 유형)의 경우 증상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문제행동이 없어 주변에 피해를 주는 일도 없고, 지능도 양호해서 학습양이 그리 많지 않은 시기에서는 학업성적에도 큰 영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승혜와 같은 사례는 어린시절에는 ADHD인 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부주의성 유형의 ADHD는 부모나 남들에 의해서는 잘 의뢰되지 않는다. 승혜의 부모처럼 병원을 두세 차례라도 방문한 경우는 상당히 예외적이다. 대부분은 어린시절에는 큰 문제의식을 갖지 않다가 성인이 된 ADHD 환자가 스스로 치료를 받고자 내원하는 경우가 많다. 주변에서 부정적 평가가 많지 않아도 본인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대학생이 되고 사회에 나가면 처리해야 할 다양한 업무와 복잡한 대인관계들이 그동안 해왔던 자신의 보완 노력을 한계에 다다르게 하는 경우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승혜도 그런 상태에서 내원했던 것이다.

성인 ADHD에서 문제가 되는 주요한 증상은 부주의함과 충동성이다. 예를 들어, ▶미리 계획을 세우기가 어렵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일을 미루거나 시작한 일을 마치지 못하며 ▶업무의 시간 예측을 못하고 시간 관리를 못하는 증상이 있다.

충동성도 여러 영역에 문제를 초래한다. 한 직장이나 학교를 안정적으로 다니지 못하고, 대인관계에서 잦은 다툼이 있으며 중요한 일임에도 충동적으로 결정한다. 운전을 급하게 하다 사고가 자주 나거나 제한속도 위반이 잦다. 어린시절에 비해 과활동성은 나이 들어가면서 점차 줄어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활동성이 여전히 남아 있는 성인 ADHD의 경우 늘 목적 없이 안절부절못하고 주말이나 여가 시간에도 편히 쉬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분주한 증상들을 보인다.

성인 ADHD, 우울증·알코올 의존 동반도

ADHD는 초등학생 시기에 10명 중 1명 정도 나타나고 그중 70%가 청소년기까지 지속되고, 50%가 성인기까지 이어진다. 즉, 성인 ADHD의 빈도는 100명당 3~5명 정도 나타난다고 본다. 어린시절에는 남녀 비율이 4대1 정도이나 성인의 경우 남녀가 동등한 비율로 존재한다. 여성의 경우 부주의성 유형이 많아 뒤늦게 인식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소아청소년기 ADHD가 품행장애와 학습장애, 불안장애 등이 흔히 동반된다면 성인기 ADHD는 우울증과 불안장애, 알코올 의존, 게임 중독 등이 동반될 수 있다. 승혜의 경우 초기 우울증상이 동반된 상태로 왔다.

성인기 ADHD의 진단을 까다롭게 만드는 이유는 어린시절 모습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파생된 다른 문제들 예컨대 우울증이나 불안 증상이 주된 증상으로 먼저 인식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인 ADHD를 진단 내릴 때는 신중하게 아동기의 행동과 모습에 대한 상세한 과거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본인의 주관적인 과거 기억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부모가 보고한 내용과 초등학교 학생부 기록 등의 보다 객관적인 자료들이 있다면 도움이 된다.

승혜는 어린시절 상담했던 과거 기록이 진단에 상당히 도움이 됐다. 성인기 ADHD의 치료는 심리치료를 통해 부정적인 자아상을 개선시키는 과정을 우선적으로 갖는다. 즉, 자신이 겪는 문제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여 불필요하게 자신을 질책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일상생활과 업무에 대한 코칭을 포함해 인지행동치료를 받는 것도 중요하다. 성인 ADHD 치료제로 공인된 약물도 효과가 좋다. 승혜의 경우 자신의 문제를 어느 정도 인식하고 내원했기에 치료 경과가 상당히 좋았다. 이미 자신의 실수나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노력을 해 왔었기에 그 노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코칭하고 다듬는 과정을 지속했다. 승혜는 대학 졸업 후 디자인 스타트업 회사를 창업했으며 6개월에 한 번씩 상담을 받고 있다.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등장인물을 가명으로 처리했고, 전체 흐름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에서 일부 내용을 각색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천근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 영국 국제인명센터(IBC)가 ‘세계 100대 의학자’로 선정. 저서로는 『아이는 언제나 옳다』, 『엄마 나는 똑똑해지고 있어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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