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창덕궁..풍요로운 한국 건축

신준봉 2021. 9. 18.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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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시간, 영원한 현재
건축의 시간, 영원한 현재
김봉렬 지음
플레져미디어

한국인들에게 고인돌은 낯설지 않다. 어려서 교과서에서 배운 탓이다. 하지만 기억에 남아 있는 건 많지 않다. 지석식·돌멘·화순…. 이런 어휘들이 머릿속에 어지럽게 얽혀 있다. 주입식 교육의 폐해다.

소개하는 책은 본문 첫 문장부터 한반도 고인돌의 제 자리를 잡아준다. “한반도를 ‘고인돌 왕국’이라 부른다.” 후속 문장들이 이 땅의 고인돌의 실체를 더욱 또렷하게 해준다. 전 세계에 남아 있는 고인돌 5만여기 가운데 무려 2만9500기가 한반도에 현존해 숫자만으로도 한반도는 고인돌 왕국이라는 것이다. 고창 운곡리 고인돌은 세계 최대다. 무게가 300t이나 나간다고 썼다. 무거운 돌덩어리를 들어 올려 고정하는 불가능할 법하던 일이 실현되면 완성물의 감동은 극대화된다며 고인돌은 최초의 건축물, 감동이 담긴 최초의 기념물이라고 했다.

건축을 얘기하겠다며 고인돌부터 다룬 까닭이 궁금하던 차에 마침맞게 풀리는 느낌이다. 고조선 건축을 고인돌로 살펴본 책은 이후 시간순으로 명멸했던 국가들의 대표적인 건축물들을 차례로 찾아 나선다. 익산 백제유적(백제), 안동 봉정사와 영주 부석사(고려) 같은 어떤 리스트에도 포함될 것 같은 필수 유적을 거쳐 조선 시대에 이르러 다루는 대상이 풍성해진다. 일제 강점기에 건설된 서울역, 여수 애양원, 제주 알뜨르비행장, 대한민국 출범 이후 서울 세운상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까지 다뤘다. 모두 28개 건축물이다.

경회루의 야경. 연못의 틀을 하인 출신 궁정 건축가 박자청이 만들었다. [중앙포토]
그 가운데 조선 전기의 궁정 건축가 박자청(1357~1423)의 경우는 이례적이다. 건축물이 아니라 사람을 다뤘다. 그러니까 저자 표현대로, 28개 건축물이 아니라 28개 건축적 사례를 소개했다고 해야 정확하다. 박자청은 세종과 브로맨스를 연출하며 해시계 등을 발명한 장영실처럼(영화 ‘천문’에서 장영실을 그렇게 그렸다), 같은 시대에 능력과 뚝심만으로 지방 하인에서 종1품 공조판서까지 오른 인물이라고 한다. 세계문화유산 창덕궁을 그가 설계했고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게 된 종로 피맛골도 그가 종로 일대를 일종의 상가 도시로 조성하며 생겨났다. 하지만 말년에 중랑천과 한강 합수 지점의 살곶이다리 건설, 한양성곽 축성 등에서 시원찮아 결국 탄핵 파직됐다. 세종실록은 그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성품이 가혹하고 모질어 어질게 용서하는 일이 없었다. 미천한 출신으로 다른 능력은 없고 오로지 토목 기술 하나로 지위가 재상의 반열에 올랐다.”

이 대목에 대한 해석에서 저자의 시야,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거침이 없다. ‘가혹함’은 시간 내 정확히 시공하기 위한 엄격함에 대한 혹평, ‘다른 능력’은 아부나 타협 같은 정치력이 없는 올곧음을 뜻할 테니 오히려 칭찬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쓰고자 하는 대상을 적극적으로 껴안는 감정이입의 글쓰기다.

책 제목에 대한 궁금증을 털고 가자. 무슨 뜻일까. 에필로그 격인 마지막 글 ‘과거는 영원한 현재의 연속’에서 실마리가 잡힌다. ‘과거는 영원한 현재’는 니체의 역사관이라고 한다. 단순히 과거는 얼마든지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뜻으로 새겨도 될 것 같다. 저자가 과거 건축물 탐구에 나선 까닭도 이런 생각과 관련 있다. 과거의 건축 속에서 현재의 건축을 발견할 수 있고, 미래의 건축 역시 현재의 생각과 선택에서 잉태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건축 유산이 풍요롭게 느껴진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 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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