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인문정원] 거울을 보며 묻다.. '나는 누구인가'
산다는 건 몸을 통한 생명활동
태어나고, 살다가, 죽는다. 그게 사람의 일이다. 사람의 일을 하면서 사는 게 삶이다. 삶은 나날의 흐름이고, 수행이며, 운동이다. 거울을 보다가 얼굴을 보며 놀란다. 나도 늙는구나. 이 노화는 돌이킬 수 없다. “얼굴들은 세월을 직조한다.”(아도니스) 분자적 단위에서 보자면 인간 개체는 파괴와 재생의 굴레 속에 있다. 수명을 다한 세포는 죽고 새로운 세포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이미 다른 존재다. 오직 기억만이 자기 동일성을 유지시키는 유일한 근거다. 이것의 연속성이 끊긴다면 살아 있어도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신체에 속하는 위의 내부가 신체의 ‘외부’라는 사실에 사람들은 놀란다. 입에서 항문까지 이어진 소화관은 몸의 외부이다. 분자생물학자인 후쿠오카 신이치에 따르면 “다른 정보를 보유한 단백질은 신체의 ‘외부’에만 머무를 수 있다.” 위는 제 안에 도착한 다른 개체의 단백질 정보를 분해해서 아미노산 단위로 쪼개고 그 정보를 체내에 재배열한다. 먹는다는 것은 씹고 부순 외부 물질을 위와 장에서 소화효소를 섞어 분해하고 흡수하는 전 과정이다. 몸이란 이 과정에 최적화된 생화학적 메커니즘을 가진 그 무엇이다.
우리는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를 맡으며, 귀로 듣고, 피부로 느끼며, 혀로 맛을 감각한다. 삶은 오감의 향연 속에서 기억의 연속성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생명 활동이란 분자의 교환 과정에 다름 아니다. 우리의 생명 활동을 위한 지각, 감정, 사고, 행동을 지휘하는 건 뇌다. 인간의 뇌는 진화의 비약 속에서 크게 발달한다. 100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인 호모 에렉투스가 불을 다루면서 큰 변곡점을 만든다. ‘불의 발견, 이동성 증가, 시력의 향상’이 뇌의 발달을 자극하는 촉매제였다.
오늘날 평균적으로 1.4킬로그램의 무게를 가진 인간의 뇌는 서로 촉수를 뻗고 있는 신경세포, 즉 뉴런과 시냅스(연결망)로 이루어진다. 이 연결망 사이로 전기신호가 흐른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신경회로를 갖고 있지는 않다. 경험과 학습의 질과 양이 신경회로의 차이를 만든다. 책을 읽는 사람은 ‘책 읽는 뇌’라는 복잡한 신경회로를 갖는다. 반면 책과 담을 쌓은 사람은 원시인과 같이 외부 자극과 그것에 반응하는 단순화된 신경회로를 갖고 살아간다.
사람은 뇌를 빼고 본다면, 그저 커다란 단백질 덩어리로 보일 것이다. 단백질로 구성된 생명체 안에 다량의 피, 뼈, 신경조직, 그리고 뇌와 뇌에서 분비하는 미량의 호르몬을 갖고 산다. 산다는 것은 몸을 기반으로 생명 활동을 이어가는 것인데, 이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사건이다. 60조개나 되는 세포와 체내 미생물의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우리는 몸-생명이라는 동적인 평형 상태에 있는 시스템을 기반으로 살아간다. 몸은 하나의 내부로서 바깥에 있는 환경과 물리적 교섭을 하며 상호 순환의 고리를 이룬다. 다시 거울을 보며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먹고 자고 사랑하는 자, 언제나 생각의 바깥에 있는 자, 내 신체 안에서 여행하는 자다. 아, 지금 나는 잘 살고 있는가?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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