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인문정원] 거울을 보며 묻다.. '나는 누구인가'

- 2021. 9. 17.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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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자기 동일성 유지 근거
산다는 건 몸을 통한 생명활동

태어나고, 살다가, 죽는다. 그게 사람의 일이다. 사람의 일을 하면서 사는 게 삶이다. 삶은 나날의 흐름이고, 수행이며, 운동이다. 거울을 보다가 얼굴을 보며 놀란다. 나도 늙는구나. 이 노화는 돌이킬 수 없다. “얼굴들은 세월을 직조한다.”(아도니스) 분자적 단위에서 보자면 인간 개체는 파괴와 재생의 굴레 속에 있다. 수명을 다한 세포는 죽고 새로운 세포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이미 다른 존재다. 오직 기억만이 자기 동일성을 유지시키는 유일한 근거다. 이것의 연속성이 끊긴다면 살아 있어도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여름 시즌이 지난 속초 바다는 회색빛으로 부풀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해안가 식당에서 생선회를 씹고 찬 술을 마셨다. 담배연기가 바람에 흩날리던 그의 등 뒤로 거친 파도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려왔다. 내 앞에서 바다를 바라보던 그 사람을 잊기는 힘들다. 그가 한때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아주 오래 전 그 여행에서 돌아와 나는 애인과 헤어졌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런 사랑의 역사는 아주 작은 삶이다.
장석주 시인
나는 살기 위해 다양한 음식을 먹었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소들은 외부에서 들여온 것들, 즉 씹고 삼켜서 먹은 것들로 이루어진다.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가를 말해준다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먹은 것의 총합이다. 우리 몸은 단백질을 합성하지 못한다. 인간은 식물같이 광합성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명 유지에 필요한 단백질을 외부에서 들일 수밖에 없다. 외부에서 들인 단백질을 체내에서 분해하고 흡수해야 한다.

신체에 속하는 위의 내부가 신체의 ‘외부’라는 사실에 사람들은 놀란다. 입에서 항문까지 이어진 소화관은 몸의 외부이다. 분자생물학자인 후쿠오카 신이치에 따르면 “다른 정보를 보유한 단백질은 신체의 ‘외부’에만 머무를 수 있다.” 위는 제 안에 도착한 다른 개체의 단백질 정보를 분해해서 아미노산 단위로 쪼개고 그 정보를 체내에 재배열한다. 먹는다는 것은 씹고 부순 외부 물질을 위와 장에서 소화효소를 섞어 분해하고 흡수하는 전 과정이다. 몸이란 이 과정에 최적화된 생화학적 메커니즘을 가진 그 무엇이다.

우리는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를 맡으며, 귀로 듣고, 피부로 느끼며, 혀로 맛을 감각한다. 삶은 오감의 향연 속에서 기억의 연속성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생명 활동이란 분자의 교환 과정에 다름 아니다. 우리의 생명 활동을 위한 지각, 감정, 사고, 행동을 지휘하는 건 뇌다. 인간의 뇌는 진화의 비약 속에서 크게 발달한다. 100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인 호모 에렉투스가 불을 다루면서 큰 변곡점을 만든다. ‘불의 발견, 이동성 증가, 시력의 향상’이 뇌의 발달을 자극하는 촉매제였다.

오늘날 평균적으로 1.4킬로그램의 무게를 가진 인간의 뇌는 서로 촉수를 뻗고 있는 신경세포, 즉 뉴런과 시냅스(연결망)로 이루어진다. 이 연결망 사이로 전기신호가 흐른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신경회로를 갖고 있지는 않다. 경험과 학습의 질과 양이 신경회로의 차이를 만든다. 책을 읽는 사람은 ‘책 읽는 뇌’라는 복잡한 신경회로를 갖는다. 반면 책과 담을 쌓은 사람은 원시인과 같이 외부 자극과 그것에 반응하는 단순화된 신경회로를 갖고 살아간다.

사람은 뇌를 빼고 본다면, 그저 커다란 단백질 덩어리로 보일 것이다. 단백질로 구성된 생명체 안에 다량의 피, 뼈, 신경조직, 그리고 뇌와 뇌에서 분비하는 미량의 호르몬을 갖고 산다. 산다는 것은 몸을 기반으로 생명 활동을 이어가는 것인데, 이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사건이다. 60조개나 되는 세포와 체내 미생물의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우리는 몸-생명이라는 동적인 평형 상태에 있는 시스템을 기반으로 살아간다. 몸은 하나의 내부로서 바깥에 있는 환경과 물리적 교섭을 하며 상호 순환의 고리를 이룬다. 다시 거울을 보며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먹고 자고 사랑하는 자, 언제나 생각의 바깥에 있는 자, 내 신체 안에서 여행하는 자다. 아, 지금 나는 잘 살고 있는가?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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