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월의쉼표] 낙법이 웬말인가

- 2021. 9. 17.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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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전부터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코로나 시국에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것도 내키지 않거니와, 귀동냥한 바에 따르면 미취학 어린이의 경우 태권도장에서 초등 고학년 아이들에게 험한 말이나 행동을 배우게 되므로 정서적으로 좋지 않다기에, 아이가 조르는 데도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었다.

결국 아이를 태권도장에 데리고 갔다.

관장이 아이를 타이르는데 이번에는 다른 쪽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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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전부터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코로나 시국에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것도 내키지 않거니와, 귀동냥한 바에 따르면 미취학 어린이의 경우 태권도장에서 초등 고학년 아이들에게 험한 말이나 행동을 배우게 되므로 정서적으로 좋지 않다기에, 아이가 조르는 데도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아이가 제 키보다 높은 난간에 기어올랐다가 중심을 잡지 못해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다. 머리를 다친 아이는 동네 병원에서 두개골 골절 소견을 듣고 대학병원 응급실까지 갔다. 엑스선도 다시 찍고 CT 촬영도 하고, 의사에게 최종적으로 괜찮다는 말을 들은 것은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각이었다. 울다 잠든 아이를 내려다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태권도를 미리 배우게 했다면 낙법의 기본 정도는 익혔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떨어질 때도 본능적으로 덜 다치는 자세를 취했을 텐데.

결국 아이를 태권도장에 데리고 갔다. 관장이 어떤 계기로 오게 됐느냐 묻기에 나는 며칠 전 사고 이야기와 함께 낙법을 언급했다. 관장이 허허 웃으며 되물었다. 낙법이라고요? 그때 뒤에서 누군가 관장을 소리쳐 불렀다. 돌아보니 웬 남자아이가 방금 벗은 양말이 갑자기 사라졌다며 울상을 짓고 있었다. 관장이 아이를 타이르는데 이번에는 다른 쪽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웬 여자아이가 엄마 보고 싶다며 큰소리로 울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제 양말 하나도 간수 못 하고 엄마와 잠시 떨어졌다고 대성통곡을 하는 저 다섯 살 여섯 살 천둥벌거숭이들 앞에서 분수도 모르고 낙법 운운한 것이었다. 집에 갈 때 양말을 잃어버리고 가지만 않아도 성공인데. 아니, 엄마 없는 곳에서 울지 않고 잘 놀기만 해도 장한 일인데.

낙법은 포기했다. 대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에게 누차 강조했다. 너 다시는 높은 데 올라가지 마. 절대 안 돼. 알겠지? 맹세해. 아이는 맹세했다. 놀이터에 이르렀을 때였다. 사고가 났던 그 난간 앞에서 우연히 아이 친구 엄마를 만났다. 잠깐 인사를 주고받은 시간이 10초쯤 되려나. 고개를 돌리니 그새 아이가 문제의 그 난간에 한쪽 다리를 걸치고 기어오르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엄마, 그때 내가 이러다가 떨어졌잖아. 이러면 안 된다는 거지? 아이는 진지했다. 진심이었다. 애가 맹세한다고 그걸 믿다니. 애한테 맹세라니. 낙법이라니. 나는 정말이지 아직도 뭘 몰라도 너무 모르는구나, 싶었다.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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