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이 좋은 책들을 어찌할 것인가
받아주는 도서관 없어 처분
인터넷이 궁금증 해결해줘도
지식의 요람 따라올 수 없어
책이 홀대받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교수의 정년은 65세이다. 퇴직하면서 연구실에 잔뜩 쌓여 있는 책을 집에 가져갈 수가 없기에 대학도서관에 문의해본다. 희귀한 책도 꽤 많이 소장하고 있는데 기증을 하고 싶다고. 오늘날 그 책을 받아주는 도서관은 없다. 매년 정년퇴임하는 교수가 몇 명인데, 받아주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는 것이 도서관장의 대답이다. 정년이 임박한 교수는 마음을 비우고 자신의 손때가 묻어 있는 책을 복도에 쌓아놓는다. 학생들이 가져가라고. 책이 복도에 잔뜩 쌓여 있는 몇 주의 시기가 지나면 청소하는 분들이 치운다.

‘도서관의 역할’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두 가지 사례를 떠올리게 된다. 장애인들의 문학작품을 실어주는 문예지 ‘솟대문학’이라는 것이 있었다. 한국장애인문인협회의 기관지였다. 후원금과 협회의 기금으로 발간되는 문예지라 2015년, 운영난으로 100호를 마지막으로 발간을 중지하고 말았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이 소식을 들었다. 1호부터 100호까지 전권을 구할 수 없겠느냐고 연락을 해왔다. 협회에서는 100권의 책을 미국으로 보냈다. 이 땅의 장애인들이 펜을 입에 물고서, 휠체어에 앉아서 쓴 문학작품이 실려 있는 문예지 100권을 미국 스탠퍼드대학이 소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어떤 대학 도서관에서도 하지 않은 일을 미국의 한 대학이 한 것은 도서관의 역할이 지식의 창고이기 때문이다.
‘반미소설’이라는 것이 있다.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소설을 통칭하는 비평적 용어다. 6·25전쟁 이후 세계의 평화를 지킨다고 하면서 파병하거나 타국의 내전에 뛰어드는 데 대하여 소설가들이 미국을 비판하는 주제를 담은 소설을 반미소설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군이 주둔한 이래 생긴 기지촌에서의 일들을 갖고 쓴 소설이 ‘기지촌소설’이라는 비평적 용어를 탄생시켰다. 어느 연구자가 기지촌소설을 포함한 반미소설을 연구하다 국내에서 책을 구하지 못했다. 미국에 유학 간 친구에게 혹시 이 한국 작가의 소설이 네가 다니는 학교의 도서관에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더니 있다고 연락이 왔다. 전 세계의 반미소설이 서가의 한쪽 벽을 완전히 채우고 있더라는 얘기와 함께.
도서관이라는 것은 지식의 창고가 돼야 하지 않을까. 당장 필요한 정보는 인터넷이 해결해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축적한 지혜와 지식의 요람인 책은 그 나름의 가치가 있는 법이다. 지자체마다 문학상 제정, 문학관 운영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다. 문학관도 앞을 다투어 세워 100개가 넘는다. 그런데 수억원을 투자한 문학상이나 문학관이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다. 그 비용의 100분의 1, 1000분의 1만 써도 지자체의 도서관 방 몇 개를 희귀도서 보관에 쓸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도서관의 기능은 독서실이 전부인 것 같다. 공무원시험이나 각종 자격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 이용하는 곳이지 60년대의 ‘사상계’나 70년대의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을 펴보는 곳이 아니다. 대학도서관도 시험기간에는 붐비지만 평소에는 썰렁하다. 한평생 연구에 전념한 원로교수마다 자식 같은 책을 버려야 하니 한숨만 내쉬고 있다.
이승하 중앙대 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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