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김현수 코치의 가르침 받고 쑥쑥 성장 중인 화봉중 황민재

김영훈 2021. 9. 17.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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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1년 8월호에 게재됐습니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화봉중학교 김현수 코치는 어느덧 한 학교에만 10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키워낸 선수도 많다. 윤원상(창원 LG), 문정현(고려대2), 양준석(연세대2), 신주영(용산고3) 등등. 울산이라는 비수도권 지역임에도 끊임없이 선수들을 찾아내고, 키워내고 있다. 그리고 여기 한 명의 역작이 또 탄생할지 모른다. 올해 화봉중의 주장이자 에이스 역할을 책임지고 있는 황민재(180cm, 가드)가 그 주인공. 김현수 코치의 지도 아래 나날이 성장하고 있는 선수다.

농구의 시작
황민재가 농구를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떠올렸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송정초등학교에서 시작했어요. 모비스(현 현대모비스) 유소년 대회를 나갔는데, 하성기 코치님께서 저를 보고 스카우트 하셨죠. 잘하지 못했는데 코치님이 스카우트를 해주셨어요.”
평소 농구를 좋아하는 아버지의 적극적인 추천도 농구를 시작하는 데 있어 큰 비중을 차지했다. “평소에 아버지와 농구도 많이 보고 직접 1대1도 해요. 예전에는 못 이겼는데, 그래도 요즘은 조금씩 이겨요(웃음).”
물론, 엘리트 농구는 쉽지 않았다. 기본적인 실력부터 낯선 농구부 생활 등등. 어려운 것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그래도 적응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1년 정도 시간이 흐르니 자신도 모르게 농구부 생활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당연히 그 사이 열심히 노력한 황민재의 공이 있었다.
점점 실력이 올라오자 황민재에게도 주축으로 뛸 기회가 생겼다. 4학년 때까지는 종종 출전했다면, 5학년부터는 출전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경험이 쌓이면서 실력도 늘었고, 2017년 윤덕주배에서는 3위를 차지하는 쾌거도 이뤘다.
“5학년 때나 6학년 때나 무조건 열심히 뛴다는 생각만 있었어요. 윤덕주배에서 3위를 할 때는 정말 기뻤죠. 그런데 6학년 때 성적을 내지 못한 건 좀 아쉬워요. 주축 역할을 했는데, 입상을 못했거든요.”

황민재의 가장 큰 무기, 성실함
아쉬움을 가지고 화봉중으로 진학한 황민재. 그를 기다리고 있는 스승은 화봉중의 김현수 코치였다. 화봉중에 오랜 세월 있었던 김 코치는 황민재에게 많은 기회를 주며 그를 키우기 위한 노력에 돌입했다.
물론 쉽지만은 않았다. 황민재가 1학년일 당시 화봉중은 연맹회장기 우승을 차지할 만큼 전력이 탄탄했으며, 1학년 황민재가 보여주기에는 2,3학년과의 격차도 컸다.
“공격할 때나 수비할 때 힘에서 차이가 컸어요. 단순히 힘만 좋은 게 아니라 스피드도 저보다 빨라서 더 힘들었죠. 그래도 노력밖에는 없더라고요. 특히 팀 훈련할 때 많이 도움이 됐어요. 같은 학교 형들이 실력이 좋아 부딪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실력이 늘더라고요.”는 황민재의 말이다.
순조롭게 적응한 황민재에게 2020년, 연습에 매진할 시간이 주어졌다. 코로나로 중고농구 대회가 전멸했고, 그는 고스란히 1년을 더 자신을 위한 시간에 투자했다.
“우선 팀 훈련 시간에 집중하려고 했어요. 또, 스킬 트레이닝도 받으면서 부족한 점도 키웠죠. 그렇게 1년을 보내니 조금씩 늘어가는 게 느껴졌어요. 농구 관련 영상도 많이 보면서 공부도 했죠. 코비 브라이언트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마인드를 굳게 먹었고, 자 모란트 플레이도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도 했어요.”
이처럼 황민재는 1년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실은 2021년에 돌아왔다.

마지막 남은 목표, 우승
코로나 시대 시작 이후 처음 열린 2021 춘계연맹전. 화봉중도 오랜 침묵을 딛고 대회에 참가했다. 1승 1패로 예선을 통과한 화봉중은 결선 1,2라운드를 거쳐 4강에 올랐다. 지휘봉을 잡고 있는 김현수 코치마저 예상하지 못한 성과였다.
그는 “솔직히 중학교 경기는 3학년이 중요해요. 하지만 올해는 민재가 유일한 3학년이거든요. 그래서 성적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애들이 생각 이상으로 너무 잘해주더라고요. 특히 민재가 중심을 잡아주고 해서 팀이 잘 나갈 수 있었죠”라며 황민재의 공을 높이 평가했다.
팀 내 유일한 3학년인 만큼 황민재가 맡아야 할 것도 많았다. 코트 안팎으로 팀의 중심을 잡아야 하며, 김현수 코치와 선수들의 가교 역할도 책임져야 했다. 팀에서는 최고참이지만, 15살의 소년에게는 어찌보면 가혹할 수 있었다.
그러나 황민재는 이러한 역할을 모두 해냈다. “솔직히 미안하죠. 어쩔 수 없이 민재에게 쓴소리를 하는데, 한 번도 이런 것에 불만을 표한 적이 없어요. 인성은 정말 나무랄 게 없는 아이에요.”
이 이야기를 들은 황민재는 “그래도 코치님이 2학년 때보다는 크게 말씀을 안 하세요(웃음). 그리고 2학년 친구들도 저를 너무 잘 도와줘요. 그래서 혼자 3학년이어도 크게 어렵지는 않죠”라며 후배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단순히 팀의 중심만 잡은 게 아니었다. 코트 내에서의 활약도 좋았다. 4경기에서 평균 33.5점을 퍼부었다. 득점뿐 아니라 8.5리바운드와 4.7어시스트도 기록했다. 화봉중은 전 대회에 미치지 못하는 8강에 머물렀지만, 황민재는 맹활약을 펼친 덕분에 감투상을 수상했다.
“솔직히 춘계연맹전은 만족하지 않았는데, 협회장기는 잘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제가 잘해서 받은 상은 아니고요. 동생들이 뒤에서 잘 받쳐줘서 받을 수 있었죠. 제가 아무리 잘해도 팀이 못했다면 이 상은 없었을 거예요.”
그는 이어 김현수 코치에게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이 모든 게 코치님 덕분입니다. 1학년 때부터 많은 기회를 주셔서 이렇게 할 수 있었죠. 가끔은 무섭지만 항상 저희를 생각해주시는 분이에요. 열심히 하면 그만큼 보상도 해주신답니다.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반대로 김현수 코치는 황민재를 칭찬했다. “1학년 때까지는 실력이 올라오지 않아 걱정도 많았죠. 그런데 지난해부터 민재가 틈만 나면 노력하더라고요. 훈련 외에도 항상 쉬지 않고 농구를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올해부터는 눈에 띄게 실력이 늘었어요. 본인이 노력을 하니 결과가 따라오는 거죠.”
제자를 칭찬하는 스승과 스승을 칭찬하는 제자. 둘의 끈끈함이 있기에 황민재는 화봉중의 주장이자 에이스로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둘이 함께할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이제 몇 개 대회가 남지 않았다. 황민재와 김현수 코치가 전국대회 우승으로 기분 좋은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사진 = 김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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