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집값 안 잡혀?'..대출 규제에 현금부자만 신났다

박상길 입력 2021. 9. 17.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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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민이 아파트 밀집 지역을 가리키고 있다. <연합뉴스>

무주택자나 생애 첫 내 집 마련에 나서는 청년들이 로또 아파트 청약에 당첨돼 한 방에 인생역전을 꿈꾼다는 건 이제 옛말이 됐다.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로 중도금 대출이 막히면서 분양 시장은 이제 웬만한 현금 부자가 아니고선 접근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17일 정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부동산 대출 억제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상반기 지나치게 대출이 많이 진행돼 하반기에 연간 대출 총량 목표를 어느 정도 관리해 나가려면 상반기보다 현저하게 축소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 10일 금융지주 회장단과의 간담회에서 "가계부채 관리 강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자 최우선 과제"라며 가계부채 억제에 전력을 다해줄 것을 주문했고 금융지주 회장단은 책임을 다해 가계부채 증가율 목표 안에서 관리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위는 당초 가계대출 억제 목표를 '작년 대비 5∼6% 증가' 범위내에서 관리하겠다고 했다가 이미 지난달 5%가 뚫리자 '가능한 6% 선'을 마지노선으로 잡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들어 8월까지 은행 가계대출은 57조5000억원이 늘었는데 이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전세자금대출, 이주비·중도금대출 등 포함)이 73.5%(42조3000억원)를 차지했고 나머지 26.5%(15조2000억원)가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 대출 등을 포함한 기타대출이었다. 8월 한 달만 놓고 보면 가계대출 증가액 6조2000억원 중 주택담보대출 5조9000억원, 기타대출 3000억원이었다.

올 들어 7월까지 월평균 2조1000여억원씩 증가하던 기타대출은 금융당국의 창구지도로 확 꺾였지만 이 기간 월평균 5조2000억원씩 증가한 주택담보대출 증가세는 여전하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의 대출 관리는 주택담보대출에 집중될 수밖에 없지만 올해 급격히 불어난 전세자금대출이나 이주비대출은 실수요자 대출이어서 손을 대기 쉽지 않다. 결국 중도금대출을 틀어막아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 진행된 경기도 수원에서 공급된 '힐스테이트 광교중앙역 퍼스트' 1순위 청약 일반 분양분 151가구에 3만4537명이 신청해 228.7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특별공급 청약도 50가구 모집에 8894명이 몰려 148.2대 1의 경쟁률로 마감됐다.

광교택지개발지구에서 마지막으로 분양하는 이 아파트의 공급가격은 전용면적 84㎡(104가구)는 9억2630만∼9억8540만원, 전용 60∼69㎡(107가구)는 6억8090만원∼8억2380만원으로 책정됐다. 주변 아파트 시세의 거의 절반 가격이다.

이 아파트는 모든 평형에 중도금 대출이 안 된다. 분양가 9억원이 넘지 않을 경우 시행사의 대출 알선으로 시중은행에서 중도금대출을 받을 수 있는데 이 아파트 시행사는 "중도금대출 알선은 사업주체 및 시공사의 의무사항이 아니다"며 수분양자 자력으로 직접 납부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급하는 공공분양에서도 중도금 대출이 제한됐다. 최근 LH가 분양한 경기 시흥 장현 A-3블록 아파트(451가구) 청약은 평균 19대 1의 경쟁률을 보였는데, LH는 분양 공고에서 "금융권의 집단대출 규제로 인하여 중도금 대출이 현재 불투명한 상황이며, 중도금 집단대출이 불가할 경우 수분양자 자력으로 중도금을 납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분양가 9억원을 넘지 않는 경우 중도금의 60%까지는 대출을 알선해주는 게 관례였는데 이를 40%까지 줄여 알선한 사례도 있었다. 최근 평촌 재개발 정비 사업지에 들어서는 평촌 엘프라우드 아파트(2739가구)는 분양가의 40% 범위에서만 중도금대출이 가능하다. 도시형생활주택으로 오는 29일 당첨자를 발표하는 힐스테이트 남산도 분양가의 40%만 중도금대출이 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건설사들이 이처럼 표변한 것은 금융당국의 주택담보대출 틀어막기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출 한도 관리에 비상이 걸린 은행들이 당국의 눈치를 보느라 부동산 대출을 억제하는데다 건설사들로서도 서울과 수도권의 경우 아파트를 짓기만 하면 흥행 대박이어서 굳이 중도금대출을 알선해야 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중도금대출 규제의 피해는 현금 동원력이 없는 젊은층이나 저소득 무주택자 등 내 집 마련이 간절한 실수요자들에게 집중돼 결국 주거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누리꾼들은 "집값, 전월세 가격 올리고 청약도 무용지물 되어버린 상황...서민을 완전 쫓아내는구나", "집값 잡는다는 명분으로 현금 부자들만 꽃놀이패된다" 등 불만을 터뜨렸다.

전문가들은 무주택자나 생애 첫 내 집 마련에 나서는 젊은 층에 대해서는 원리금 상환 능력이 검증된다면 대출을 과도하게 억제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부동산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가계대출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총량 규제를 해야 하는 것에는 동감한다"면서도 "일부 예외 조치를 통해 무주택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해 현금 부자만 자산을 불리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가 좀 더 세심하게 접근해 실수요자의 전·월세 대출이나 생애 첫 내 집 마련에 나선 무주택자의 중도금 대출 등을 막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설명했다.박상길기자 sweats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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