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약없는 재건축에 지쳤다".. 정비업체 신규등록 '주춤'

최온정 기자 입력 2021. 9. 17. 16:00 수정 2021. 9. 24.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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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사업 현장에서 주민조합을 대신해 조합 설립과 사업성 검토 등 업무를 수행하는 정비사업 전문관리업체(정비업체)의 신규등록 건수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정비 업체 수도 8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그러나 정부의 재개발·재건축 규제 강화로 새로 설립된 조합 수도 줄어들면서 시장에는 여전히 일감보다 업체 수가 더 많은 상황이다.

17일 서울시와 경기도 등 각 시도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신규 등록한 정비업체 수가 이전과 비교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첫 등록을 시작한 2003년부터 8년간 시도별로 적게는 10곳, 많게는 150곳씩 신규업체가 나왔지만, 최근들어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급기야 한 자릿수에 그치는 곳도 있었다.

지난 5월 18일 공사중인 서울 서초구 반포동 원베일리(경남아파트 재건축) 공사 현장 모습. 2021.5.18/연합뉴스

특히 수도권과 광역시에서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졌다. 서울의 경우 2003년 61곳이 등록한 후 이듬해 152곳이 추가되며 급증했다. 이후 다시 60곳 아래로 떨어졌지만 2009년까지 20곳 이상의 신규업체가 나왔다. 하지만 2010년부터는 20곳에도 미치지 못했고, 2019~2021년에는 각각 12곳, 11곳, 10곳이 등록되며 2003년의 6분의1 수준으로 하락했다.

서울 다음으로 신규 업체 수가 많은 경기도와 부산, 대구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다. 경기도의 경우 2003년부터 2007년까지 11~19곳의 신규업체가 등록됐으나, 2008년부터는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최근 3년간은 3~5곳의 신규업체가 나왔다. 부산과 대구도 첫 2년동안 신규업체가 10곳을 넘겼지만 최근에는 5곳도 채 등록되지 않고 있다. 2004년에 10곳의 신규업체가 등록됐던 인천도 올해는 5곳으로 감소했다.

흔히 ‘정비업체’로 불리는 정비사업전문관리업은 ▲조합 설립 동의 및 정비사업 동의에 관한 업무 대행 ▲사업성 검토 및 정비사업 시행계획서 작성 ▲설계자 및 시공자 선정 업무 지원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소송과 갈등이 많은 정비사업을 진행할 때 사업기간을 줄이고 조합측에 전문적인 조언을 해주는 역할을 한다.

1980년대 들어 노후 저층아파트들을 중심으로 재건축이 시작되고 마포아파트를 시작으로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이 완료된 단지가 생겨나자, 정부는 정비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하기 위해 정비업체 등록을 실시했다. 정비업체는 기본 요건(자본금 10억원 이상, 건축사·감정평가사·회계사·법무사 등 자격 갖춘 상근 기술인력 5인 이상 고용)을 갖춰 광역시·도에 등록해야 하며, 각 시도는 정비업체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을 갖는다.

등록 초기인 2000년대에는 전국적으로 신규 업체가 많았다. 제도 시작 이전부터 정비업에 종사하던 업체들이 대거 등록에 나섰고, 또 전국적으로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참여정부(2003~2008년) 시기 재건축 규제를 강화했음에도 이 같은 흐름을 꺾지 못했고, 신규 정비업체는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연평균 90곳 이상씩 나왔다.

하지만 이후 재건축·재개발 규제가 계속 강화되면서 신규 정비업체 수는 점차 감소했고, 문재인 정부로 넘어오면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와 안전진단 강화와 같은 강력한 정책들이 추진되자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가속화됐다. 정비사업전문관리업 종사자 단체인 한국도시정비협회 관계자는 “최근들어 정비사업 규제가 완화되면서 조금 늘어나긴 했지만 예전만 못하다”면서 “여전히 사업속도가 더디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정비업체들의 일거리는 10년 전과 비교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설립된 조합이 줄어들수록 정비업체들이 자문해줄 수 있는 곳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정비업체들에게는 좋지 않은 신호다. 지난 5월 말 기준 서울시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 현황을 보면 새로 설립된 조합의 수는 정비업체 등록이 시작된 2003년부터 2010년까지는 연간 40~50곳 수준이었으나 2011년부터는 20곳 이하로 뚝 떨어졌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23곳→15곳→21곳→28곳 등으로 소폭 늘었으나, 올해 다시 12곳으로 줄어든 상황이다.

도시정비협회 관계자는 “작년 말에는 전체 등록업체가 300곳가량 됐는데, 7~8년전만해도 590곳에 가까웠으니 절반으로 줄어든 셈”이라면서 “그래도 아직 업체가 너무 많아 저가경쟁이 치열하다. 한 100곳정도까지 감소해야 선의의 경쟁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재개발·재건축이 늘어나지 않는 한 지금처럼 정비업체가 줄어드는 추세는 유지될 것으로 봤다. 이태희 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정비사업은 컨설팅 역량에 따라 속도 차이가 많이 나는 만큼, 법률관계에 대해 해박하고 심의 경험이 많은 업체일수록 조합원들의 선호는 커진다”면서 “정비사업이 늘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신규업체가 사업실적을 쌓아 정비사업을 따내는 일이 앞으로도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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