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품 같은 센터에서 키워 가는 '댄서'의 꿈 [지역아동센터 쌤들의 기분 좋은 상상]

노윤희(희망세움지역아동센터) 2021. 9. 17.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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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향]


경기도 지역아동센터 780여 개 가운데 장애통합으로 운영되는 센터는 32곳으로 매우 적습니다. 그중 하나인 저희 지역아동센터에 다니는 24명(이용 아동의 90%)의 아동은 지적장애, 자폐성 발달장애, 청각장애, 뇌병변 장애 등의 장애를 가진 아이들입니다.

센터가 위치한 지역에 학령기 장애아동 수는 550여 명이지만,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방과후에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지극히 제한적입니다. 그래서인지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센터에 다닐 수 있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감사해합니다. 저를 비롯한 센터 사회복지사들은 지난 2010년부터 지금까지 함께 생활하며 사명감과 보람을 느낍니다. 지금부터 저희 센터의 아이 중에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인 남자 아이 정후(가명)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작년 6월 어느 날, 평소처럼 센터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지내고 있던 중 정후가 다니는 학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청각장애를 가진 아동이 있는데,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돌봐 줄 보호자가 없다고 전해 주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갑작스러운 엄마의 부재가 아이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 하며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고, 흔쾌히 아이를 돌볼 수 있다고 승낙했습니다.

다문화 가정의 정후는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아빠는 지방에서 회사를 다녀 매일 집에 올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할머니가 와서 아이를 돌봐주고 작은아버지 내외가 보호자의 역할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또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장애인 등록을 어떻게 하는지 몰랐던지 장애인등록도 안 돼 있었습니다.

서구적인 외모를 가진 정후를 처음 만났던 날, 말을 못하는 아이인 줄 알았습니다. 묻는 말에 단답형으로 “예” 또는 “아니오”로만 답했으니까요.

정후는 낯선 센터에 오기 싫어서인지 아침에 눈만 뜨면 나가서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정후를 데리러 간 할머니는 허탕 치고 돌아오기를 반복했었죠. 밖에 나가 놀면서 가끔 누구한테 구타를 당한 건지 멍이 들어 있기도 하고, 동물에 물린 상처가 있기도 하는 등 너무 위험한 상황이 지속됐습니다.

긴급사례회의를 통해 정후의 안전을 위해 센터 선생님이 출근길에 아이와 함께 오기로 했습니다. 장애인등록도 하고, 선생님과 등·하원도 함께 하는 등 자연스럽게 센터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선생님의 마음을 알게 된 것일까요? 정후도 어느덧 마음의 문을 열고 밝게 친구들과 잘 지내며 적응해 나가고 있습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보청기를 끼고 있지만 선생님과 친구들의 입 모양을 봐야 의사소통이 가능한데, 코로나 상황으로 마스크를 쓰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소통에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도 정후는 밝고 씩씩하게 웃음을 잃지 않고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정후가 우리 센터에서 가장 좋아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간은 특성화 교육 시간입니다. 장애아동들의 특성화 교육 프로그램으로 바리스타와 제과제빵·댄스 등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중에 댄스를 제일 좋아합니다. 그 시간에는 누구보다도 적극적이고 신나게 참여합니다. 흥이 많은 정후는 어떤 음악이든 좋아하고 춤을 아주 잘 춘답니다.

생각해보면 갑작스러운 엄마의 빈자리가 아이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요? 지금도 마음이 아립니다. 지금은 밝은 모습을 보며 정후가 아프고 힘든 것을 다 이겨내고, 숨은 끼를 잘 살려 훌륭한 댄서로 성장하기를 응원하고 기도합니다.

노윤희(희망세움지역아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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