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추석에 우리는 어떤 윗세대가 되어 있을까

2021. 9. 17.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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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욱 시인. 본인 제공

5년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부모님은 병풍과 목기를 들였다. 그리고 명절과 기일에 차례상과 제사상을 차리신다. 엄마는 엄마에게 음식과 술을 올리는 것이니 시댁 행사에서 막내며느리로 조수 노릇을 하던 때와는 마음이 다를 것이다. 나는 때가 다가오면 상에 올릴 고기나 굴비를 미리 보내드리곤 했다.

이번 추석에도 그럴 양으로 온라인 쇼핑몰 몇 군데를 돌아다니다가 명절 물가와 관련된 기사를 보게 되었다. 계란값이 고공행진인데 작년 말부터 유행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로 닭들을 살처분했기 때문이라 한다. 다른 기사를 보니 지금은 돼지 열병의 확산으로 돼지들이 살처분 중. 코로나19 팬데믹이 지속되는 가운데 가축 전염병도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살처분도 반복되고 있다.

채식을 시작한 지 반년이 되어 간다. 이후로 공장식 축산업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이 더 자주 눈에 들어온다. 고기를 사고 싶지 않다. 부모님에게도 보내고 싶지 않다. 고기 말고 과일을 보낼까. 아니면 그냥 계좌 이체를 할까. 어느 쪽이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긴 하다. 내가 안 보내도 어차피 사실 것이고 차리던 대로 상을 차리실 것이다.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가을인 데다 할머니는 원래 고기를 안 드셨으니 산적은 빼시면 어때요?… 라는 말은 씨도 안 먹히겠지. 상차림의 노고를 내가 떠맡지 않으면서 가타부타 말을 얹을 수는 없다.

고기를 끊어 보자고 먼저 제안을 한 건 남편이었다. 우리는 축산업에 의해 배출되는 막대한 온실가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었다. 오케이. 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이미 오래 생각해 온 것이지만 맺고 끊는 결심을 못 하고 있던 차였다.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데 동참하고 싶었다. 비단 온실가스 배출 문제가 아니더라도 육류 기반의 식사에서 벗어나야 할 당위는 차고 넘쳤다.

쉬울 거라 생각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매일매일의 식생활 문제이다 보니 어려움은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컸다. 평소에 육류를 즐겨 먹는 편이 아니었는데도 맛의 빈자리가 컸다. 남편은 감칠맛이 고팠고 나는 유제품의 풍미가 고팠다. 무엇보다 가장 큰 어려움은 먹는 데에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간단히 먹더라도 늘 궁리를 해야 했다. 계란에 밥을 비벼 뚝딱 한 끼니를 때울 수 없었다. 고기만 굽거나 볶으면 바로 정찬이 되는 손쉬운 식탁에서 멀어져야 했다. 식당에서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은 극히 한정적이었다. 배도 쉽게 꺼졌다. 콩이나 버섯으로 만든 대체육은 비싸기도 했고 근처의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도 없었다. 혼자 고기를 안 먹을 수는 있지만 식구가 많은 집에서는 엄두를 내기 어려울 것이다. 노동에 지친 상태에서 가치로서의 식사를 추구하기는 힘들다.

추석을 앞두고 나는 또 한 번 시험에 든다. 부모님 댁에 가면 산적에 갈비찜이나 닭찜, 계란을 입힌 각종 전이 식탁에 올라와 있을 것이다. 이미 내 결심을 전한 터라 왜 고기를 안 먹느냐고 종용하시지는 않지만 엄마의 얼굴엔 서운한 기색이 역력할 것이다. 정성껏 만든 음식에 입을 대지 않으면 누구나 그러기 마련이다. 가족과 식사를 할 일이 생길 때마다 아마 나는 계속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 집에 조카가 놀러 오거나 부모님이 들르면 어떤 음식을 차려야 할까. 어디까지 타협하고 어디까지 나의 입장을 고수해야 할까.

살아갈 수 있는 삶과 지향해야 할 삶은 늘 부딪친다. 고기를 끊고 분리 배출을 열심히 해 보지만 나는 여전히 많이 쓰고 많이 버린다.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사소해서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나 싶을 때가 많다. 그러면서도 또 기후위기의 상황에 대한 소식을 접하면 사소하나마 뭐라도 해야겠다는 절박한 마음이 다시 든다. 지난 8월에는 기후과학자 협의체(IPCC)의 새로운 보고서가 나왔다. 지구 평균 기온의 상승을 산업혁명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막아야만 걷잡을 수 없는 재앙을 막을 수 있는데, 2040년이 오기 전에 그 1.5도를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미 1.1도가 올랐고 남은 건 0.4도다. 지금의 어린이들, 우리의 다음 세대는 지금보다 훨씬 열악하고 가혹한 환경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명절은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윗세대와 만나는 날이다. 미래의 우리는 어떤 윗세대가 되어 있을까. 다음 세대에게 쓰레기와 기후 재앙과 반복되는 역병만 넘길 수는 없다. 이제는 다음 세대의 삶도, 또 다음 세대의 눈에 비칠 윗세대로서의 우리 모습도 진지하게 그려 보는 추석을 맞아야 할 것 같다.

신해욱 시인

■신해욱 시인은

1974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199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간결한 배치’, ‘생물성’, ‘syzygy’, ‘무족영원’ 등을 펴냈다. 산문집 ‘비성년열전’과 ‘일인용 책’, 소설 ‘해몽전파사’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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