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잡지' 제작 업체 부도에..프리랜서 70여명, 6억 넘는 급여 떼여

신다은 입력 2021. 9. 17. 13:46 수정 2021. 9. 17.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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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매거진' 등 위탁업체 성우애드컴 부도
여행작가·사진작가·요리사 등 1인당 평균 300만원 체불
"대표가 상습적으로 대금 지급 미뤘다" 피해 호소 잇따라
프리랜서도 근로자 인정 안돼 '체당금 제도' 보호 못 받아
성우애드컴이 제작한 ‘KTX 매거진’이 객실 내 승객들 의자에 꽂혀있다. 김명진 기자

케이티엑스 열차에 비치하는 <케이티엑스(KTX) 매거진> 등을 위탁 생산하는 업체가 최근 파산하면서 프리랜서들이 6억원 넘는 대금을 지급받지 못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7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 출판물을 대신 만드는 회사인 ‘성우애드컴’은 지난달 31일 누적된 경영 악화로 인한 회사의 부도(당좌거래중지) 소식을 직원들에게 공지했다. 이 업체와 계약을 맺고 노무를 제공한 여행 작가와 요리연구가, 사진기자 등 프리랜서 70여명이 대금을 받지 못했고, 이들의 총 피해액은 확인된 것만 6억5천만원에 달한다. 한 사람당 평균 1천만원 가까이 체불된 것이다.

그동안 관련 업체의 부도로 프리랜서가 개별적으로 피해를 본 사례는 있었지만 총 피해액이 수억원에 이르는 경우는 드물었다. 성우애드컴의 경우 <케이티엑스 매거진>을 비롯해 한국공항공사의 <에어포트 포커스>, 서울시청 월간지 <서울사랑>, 교통안전공단의 <티에스(TS) 매거진> 등 관공서 간행물 20여개를 만들면서 매체마다 3∼7명씩 프리랜서를 채용한 터라 부도로 인한 미지급 대금 규모가 특히 컸다.

프리랜서들은 코로나19로 사정이 어려워지기 전에도 업체가 수시로 대금 지급을 미뤘다고 주장했다. 성우애드컴으로부터 2019년부터 약 2년 동안 900만원을 체불 당한 임아무개씨는 “회사가 ‘다음 건을 해주면 이전 건과 합산해서 돈을 주겠다’고 거짓말하고 대금 지급을 상습적으로 미뤘다”며 “경기도청이 간행물 제작을 맡기면서 ‘프리랜서를 쓰지 않는다’는 계약 조건을 걸자 내 원고를 받은 뒤 업체 직원이 쓴 것처럼 제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진작가 신아무개씨도 지난해 11월부터 약 10개월 동안 1억2천만원에 달하는 돈을 지급받지 못했고 또 다른 사진작가 안아무개씨는 성우애드컴이 내부적으로 파산을 결정한 뒤에도 이를 통지받지 못한 채 8월 말 새로운 일감을 맡았다고 설명했다. 티브이엔(tvN)의 <수요미식회> 등에 출연했던 박찬일 셰프 역시 지난해부터 성우애드컴이 만드는 <서울사랑>에 기고했다가 원고료 약 300만원을 받지 못했다.

성우애드컴 경영진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구체적인 체불 내용 등은 확인이 필요하다”면서도 “경영 불찰로 프리랜서 임금이 상당 부분 밀리게 된 것은 사실이고 회사 쪽 노무사가 프리랜서들의 체불 내역을 받아 후속 조처를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성우애드컴 누리집 갈무리
성우애드컴 누리집 갈무리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노동자는 임금을 체불 당해도 여러 법적 장치를 통해 일정 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다. 일반 채권과 달리 임금 체불은 3년 이하 징역에 처해질 수 있어 사업주가 적극적으로 해결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사업주가 파산하더라도 국가가 임금채권보장기금의 일부를 떼어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체당금 제도’도 있다. 게다가 3개월치 임금과 3년치 퇴직금 등은 세금이나 공과금보다 먼저 돌려받도록 법으로 보장돼 있다. 그러나 프리랜서 상당수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아 이런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 용역 대금을 지급하라는 민사소송이나 소액심판 등을 진행할 순 있지만 성우애드컴과 같이 사실상 남은 재산이 없는 경우엔 소송의 실익이 거의 없다. 이 사건을 자문한 이민영 정의당 ‘비상구’(비정규직 상담 창구) 상담 노무사는 “성우애드컴의 경우 남은 재산이 채권자들에게 대부분 양도된 상태여서 프리랜서에게 돌아갈 돈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며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으면 그나마 체당금 제도를 활용할 수가 있는데 프리랜서는 그런 제도가 없다”고 설명했다.

프리랜서와 플랫폼 노동자 등은 노무를 제공하고 보수를 받는다는 점에서 노동자와 유사하지만 그동안 근로기준법 보호를 받지 못했다. 고용노동부와 대법원이 법 적용 대상을 ‘특정 사용자에게 종속돼 구체적인 업무 지시를 받으며 일하는 자’로 좁혀 해석해 온 탓이다. 그렇다고 개인사업자로서 공정거래법이나 하도급법 등을 적용받는 경우도 거의 없어 이들은 사실상 법 보호 밖에 있었다.

이 때문에 프리랜서를 위한 별도의 체당금 제도를 만들 필요성이 제기된다. 임금을 국가가 대신 변제하는 체당금 제도의 재원은 사업주가 사전에 적립한 임금채권보장기금에서 나온다. 프리랜서를 사용하는 사업주도 이런 기금을 따로 만들게 해 대금 체납에 대비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 연구위원은 “과도기적으론 소상공인진흥기금 등을 활용해 1인 사업자와 프리랜서를 위한 유사 체당금 제도를 만들되 장기적으론 근로기준법상 체당금 제도를 활용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동법 틀 안에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를 끌어들이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권리찾기유니온은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을 지금보다 확대하도록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프리랜서 등을 모두 포괄하는 ‘일하는 사람 모두를 위한 법’ 제정을 대선공약으로 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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