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진흙탕 총선..야당 당선 막으려 도플갱어 후보 2명 등록

김윤나영 기자 2021. 9. 17.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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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러시아가 17일(현지시간) 총선에 돌입한 가운데 야당 후보와 이름이 같고 외모도 비슷한 ‘도플갱어’ 후보가 2명이나 등록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가 총선 승리를 위해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타스통신은 이날부터 러시아에서 연방하원(두마) 선거가 공식 시작해 오는 19일 21시에 끝난다고 보도했다. 임기 5년의 하원 의원 450명을 뽑는 이번 선거에서 푸틴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 통합러시아당은 의석을 다소 잃더라도 개헌선인 300석 이상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야권 인사 수십명이 갖가지 이유로 출마를 저지당했기 때문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지역구는 동명이인 후보 3명이 출마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다. 이 지역에는 러시아 진보 야당인 야블로코당의 보리스 비슈네프스키 후보가 출마했다. 그런데 그와 이름이 같고 비슷하게 생긴 후보 2명이 더 출마하는 일이 벌어졌다. 비슈네프스키와 똑같이 대머리와 회색 수염이 있는 남성 두 명이 이름을 비슈네프스키로 개명하고 후보로 등록한 것이다. 재선에 도전하는 비슈네프스키는 파이낸셜타임스 등 언론 인터뷰에서 “이들은 유권자를 혼란시키기 위해 이름뿐 아니라 외모까지 바꿨다”면서 “정치적 사기”라고 말했다. 그는 “정권이 미는 후보자들이 지지율이 너무 낮아서 정직한 방법으로는 이길 수 없으니 더러운 속임수를 쓴 것”이라고 밝혔다.

서북쪽 항구 도시 무르만스크에서는 총선에 출마하려던 비올레타 그로디나가 후보 자격을 박탈당했다. 그로디나는 코로나19에 걸렸다가 회복돼 음성판정을 받았는데도 법원이 자가격리를 명령해 병원에 강제 입원됐다. 그는 병원에서 단식투쟁 끝에 가까스로 후보 등록을 마쳤지만 ‘푸틴 저격수’로 꼽히는 야권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와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결국 후보 자격을 박탈당했다.

야권 인사가 총선을 앞두고 체포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 6월1일 건물 임대차 계약에서 대출금을 제때 갚지 않았다는 이유로 야당 인사 드미트리 구드코프를 체포했다. 5월31일에는 야권단체 오픈 러시아의 지도부였던 안드레이 피보바로프를 항공기 안에서 긴급 체포했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 6월 나발니가 이끄는 반부패재단을 극단주의 단체로 지정하면서 사전 단속에 나섰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6월4일 극단주의 단체 회원의 공직선거 출마를 5년간 금지하는 선거법 개정안에 서명했다. 이 때문에 반부패재단을 도운 야권 인사 수십명이 출마 자격을 박탈당했다. 나발니 측은 정권 교체에 가장 유리한 야당 후보를 알려주는 ‘스마트 투표앱’을 개발하는 것으로 맞섰으나 이마저 러시아 당국이 폐쇄했다.

푸틴 정부가 야권 인사들의 출마를 노골적으로 방해하는 이유는 코로나19와 경제위기, 반정부 시위 등을 거치면서 여당의 인기가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집권 통합러시아당의 최근 지지율은 29%로 2006년 이후 가장 낮다. 러시아의 실질 소득은 지난해 3.4% 하락했고 러시아인의 평균 지출은 7년 전보다 11% 감소했다.

이번 선거는 푸틴 대통령의 현 임기가 끝나는 오는 2024년 전에 치르는 마지막 총선이기도 하다. 이번 총선 결과는 푸틴 대통령이 2024년 5번째 대통령 선거에 나설지를 가늠하는 주요 시험대가 될 수 있다. 앞서 러시아는 지난해 7월 푸틴 대통령의 종신 집권을 사실상 가능하게 하는 개헌안을 국민투표로 가결시켰다. 새 헌법에 따라 푸틴 대통령은 2036년까지 앞으로 두 차례 더 6년 임기의 대통령직에 도전할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총선을 하루 앞둔 전날 TV 연설에서 “러시아엔 강력하고 권위 있는 의회가 필요하고 새 의원들이 애국자로 신뢰받으려면 국익과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면서 통합러시아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러시아 총선에 출마하는 세 명의 보리스 비슈네프스키 후보 사진이 실린 선거포스터. AP통신연합뉴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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