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유엔 가입 30년' 성취와 文의 역주행

기자 2021. 9. 17.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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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문대통령 유엔行에 BTS 대동

남북 평화 프로세스 선전 예정

친중·친북 행보로 美와 엇박자

유엔 입성 뒤 국제 위상 대도약

미·중 신냉전은 위기 아닌 기회

자유민주 진영과 동맹 넓혀야

탈냉전 여명기인 1991년 1월 아프리카 소말리아 내전 때 남북한 대사관 직원들의 공동 탈출기를 다룬 영화 ‘모가디슈’가 코로나 거리두기에도 불구하고 관객 300만 명을 돌파하며 선전하고 있다. 냉전 말기 남북한이 아프리카에서 벌이던 체제 경쟁의 민낯을 보여주는 한편, 유엔 가입을 앞두고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지지표를 얻기 위한 작전을 벌이는 우리 외교관들과 이에 맞선 북한 외교관들의 거침없는 반한(反韓) 공작까지 긴박감 있게 담아냈다.

외교관들이 모가디슈 영화 관람 후 페이스북에 올린 평을 보면 그런 시절이 있었나 격세지감이 든다. 지금은 유엔 회원국이란 게 당연시되지만, 30년 전만 해도 절체절명의 도전이고 과제였다는 게 외교관들의 회고다. 유엔 회원국이 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원대한 목표여서 외교관들 사이에서는 가입 가능성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기류가 뚜렷했다고 한다. 외교부에서는 가입 실패 시 누가 책임을 질 것인지 문제까지 고민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나라가 1991년 9월 17일 북한과 함께 유엔 가입에 성공한 것은 모가디슈 내전 당시 생사를 다투면서도 국익을 위해 분투한 외교관들의 희생과 헌신 덕분이다.

대한민국사(史)는 유엔과 함께한 성공의 역사다. 정부 수립 후엔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임을 공인해줬고, 6·25 때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로 북한의 남침을 규탄하며 연합군을 파견, 자유민주주의를 지켰다. 함께 피를 흘린 덕분에 우리나라는 기적처럼 생존했고, 이어 유엔 회원국이 되면서 국가도약의 전기를 맞았다. 가입 4년 만에 유엔의 프리미어리그 격인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 이사국에 선출됐고 2013년 재진출에 성공했다. 2006년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제8대 유엔사무총장으로 선출되며 10년간 글로벌 외교를 주도했다.

그 후 30년, 한국은 세계 10위 경제대국으로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 1991년 3306억 달러이던 국내총생산(GDP)은 2020년 1조6000억 달러가 됐고 1인당 GDP도 7638달러에서 3만1637달러로 늘었다. 반면 북한은 최빈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GDP도 한국의 1.8%에 불과하다. 유엔 가입 후 탈냉전의 시대 조류를 적극 활용해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한국과 달리 북한은 김일성 일가 세습독재 체제를 고집하며 핵에 집착해 실패 국가로 퇴행했다.

이제 새로운 역사의 기회가 열리고 있다. 탈냉전 시대를 주도하던 유일 패권 미국의 지위가 세계 2대 경제 대국 중국의 도전으로 흔들리며 패권 경쟁 시대가 시작됐다. 미국이 굴욕을 감수하면서까지 아프가니스탄 철수를 강행한 것도 중국과의 경쟁을 위해 아시아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 강화에 나서며 5세대(G) 첨단 테크놀로지 등에서 자유 진영 글로벌 공급망을 별도로 구축하겠다고 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도 대미 총력전 체제로 고삐를 조이고 있어 최소한 향후 10년은 미·중 신냉전이 치열하게 벌어질 전망이다.

좀 더 깊이 보면 미·중 신냉전은 30년 전 유엔 가입 때와 같은 새로운 기회의 문이기도 하다. 쿼드의 초대를 받은 데 이어 G7 정상회의 확대론에 제1후보국으로 거론되고, 자유진영 기밀정보 공유동맹인 파이브 아이즈에 한국 포함 필요성이 미의회에서 제기된 것이 대표적이다. 과거 외교관들이 유엔 가입을 꿈도 꾸지 못했던 것처럼, G10·파이브 아이즈 가입에 대해 외교관들은 ‘멀리 있는 빛’이라고 얘기한다. 유엔 가입은 우리가 추진했던 것이지만, G10·파이브 아이즈는 영·미에서 먼저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과거엔 언감생심이었지만 미·중 신냉전이라는 특수한 시대 조건이 조성된 만큼 국가적 노력을 기울인다면 선진국 핵심 진입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19일부터 23일까지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하며 BTS까지 대동하지만 이런 흐름에 대해선 무심한 듯하다. 유엔 방문 목적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홍보에 있고, 24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쿼드 정상회의와는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국수적인 데다 친북·친중적인 문 정부엔 더 이상 기대할 게 없지만, 내년 대선에서라도 시대 변화를 제대로 읽는 후보가 당선돼 역사적 기회를 잡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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