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논단>대리점주 비극과 택배산업 혁신 방향

기자 입력 2021. 9. 1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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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기사들로 구성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택배노조와 갈등을 빚던 김포 대리점주가 지난 8월 30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택배노조는 해당 조합원들이 경찰 조사에 적극 협력할 것을 권고하겠다며, 노조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엄중한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심지어 택배노조 부위원장이 작업 중 다른 배달 노동자에게 '가슴킥'을 날리는 CCTV 영상이 공개돼 공분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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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승규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 국제정치경제학부 교수

택배 기사들로 구성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택배노조와 갈등을 빚던 김포 대리점주가 지난 8월 30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택배노조는 해당 조합원들이 경찰 조사에 적극 협력할 것을 권고하겠다며, 노조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엄중한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고인은 사법적 판단도 받아보지 않은 채 ‘자신들 때문에 죽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며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가 죽음으로써 밝히려고 한 택배업계 현실은 어떠할까?

수면 위로 드러난 갈등의 시발점은 규격에 맞지 않는 택배에 대한 노조 조합원들의 배송 거부였다. 규격에 맞지 않는 물품은 규정에 따라 택배 본사로 반송해야 한다는 조합원들의 주장에 반해, 고인은 비조합원 기사들과 함께 직접 배송하는 쪽을 택했다. 고인은 규정을 너무 엄격히 적용하면 배송 지연으로 지역 이용자들이 피해를 보게 되고, 택배회사로부터 대리점이 불이득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 직접 책임을 졌던 듯하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까지 지키려던 대리점을 포기했다.

택배업계 대리점주에게 주어진 권한과 책임의 범위가 모호하다. 대리점주는, 스타벅스 같은 본사 직영 체제였다면 점장에, 맘스터치 같은 프랜차이즈 업체였다면 사장에 해당한다. 어느 경우든 자기 점포 직원들에 대한 직무명령 권한과 인사 권한이 있지만, 택배업계 대리점주는 아무런 권한도 없이 암묵적 책임만 진다. 심지어 택배노조 부위원장이 작업 중 다른 배달 노동자에게 ‘가슴킥’을 날리는 CCTV 영상이 공개돼 공분을 샀다. 스타벅스나 맘스터치 등에서 그런 폭력이 자행됐다면, 이유를 막론하고 벌써 인사 조치됐을 것이다.

스타벅스처럼 직접고용을 통해 책임과 권한을 명확히 하는 게 택배업 종사자들을 보호하고 택배회사와 택배산업을 발전시키는 길이다. 직영 체제를 통해 지역 관리책임자에게 인사평가 권한과 관리 감독의 책임을 함께 줘야 한다. 택배노조도 지난번 파업 때 택배회사와 직접 대화를 요구했던 만큼, 택배회사와 직접 대화의 채널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직접고용을 전향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쿠팡은 약 1만5000명의 배송 직원을 직접고용 중이며, 약 5만4000명을 직접고용한 국내에서 세 번째로 큰 고용주다. 그런데도 직접고용된 직원들의 택배노조 가입률은 2%에 불과하다. 거의 업계 최고 수준의 인력을 직접고용하고 자율적인 노조 가입을 허용하면서도, 업계 최저 수준의 노조 가입률을 유지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배송 부문에서 쿠팡의 직접고용은 택배산업의 모범이 된다.

단기간 전국적인 배송 네트워크를 만드는 과정에서 대리점 체제의 기여는 부정하기 어렵다. 대리점 체제의 확산이 초기 고정자본 투입을 줄여 줌으로써, 여러 택배회사가 경쟁하는 체제가 갖춰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의 택배 시장이 충분히 성장했고, 투자 여력이 충분한 대규모 기업집단에 속하는 택배회사도 여럿 있다. 정책적·제도적 지원만 있다면 쿠팡과 같은 대규모 직접고용원을 여럿 키울 수 있다는 의미다. 이제는 정치권에서도 고인이 죽음으로써 밝히고자 했던 택배산업의 구조적인 모순을 직시하고, 택배산업 발전을 위한 제도 개선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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