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강성산 전 총리 뒤늦게 열사릉 안치.. 사망 14년 만에 재평가

김선영 2021. 9. 1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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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007년 사망한 강성산 전 정무원(현 내각) 총리를 14년 만에 한국의 국립묘지에 해당하는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안치했다.

2007년 사망한 강 전 총리는 그동안 애국열사릉에 안치되지 못했지만, 사망 14년 만에 이장을 통해 애국열사릉에 묻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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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북한이 2007년 사망한 강성산 전 정무원(현 내각) 총리를 14년 만에 한국의 국립묘지에 해당하는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안치했다. 강 전 총리는 북한이 1990년대 중반 경제난으로 ‘고난의 행군’을 겪을 당시 총리로 두 차례나 총리직을 수행한 인물이다.

조선중앙통신은 17일 “열사들의 유해를 안치하는 의식들이 16일 신미리 애국열사릉에서 진행됐다”며 “열사들 가운데는 당과 정부의 중요직책에서 오랫동안 사업하면서 조국과 인민을 위해 헌신적으로 투쟁해온 강성산 동지도 있다”고 보도했다.

강 전 총리는 모스크바와 프라하에서 유학한 경제 엘리트로 김일성 주석 시대 평양시당 책임비서, 정무원 체신위원장 등을 지냈다. 특히 그는 1984년과 1992년 두 차례에 걸쳐 정무원 총리직을 역임한 것으로 유명하다. 사위인 강명도 경민대 교수가 1994년 5월 탈북한 이후에도 총리직을 유지했고, 그해 7월 김 주석이 사망하자 국가장의위원회 위원도 맡은 바 있다.

그는 김 주석 사망 이후 1차 북핵 위기가 발생한 데 이어 북한의 본격적인 고난의 행군 시기가 닥치자 경제난 타개를 위한 개혁개방 노선을 주장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를 반대하면서 권력층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는 결국 1997년 총리직에서 경질됐다. 2007년 사망한 강 전 총리는 그동안 애국열사릉에 안치되지 못했지만, 사망 14년 만에 이장을 통해 애국열사릉에 묻히게 됐다. 이는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최근 ‘전 세대(선배 세대)’들의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금고지기’로 불린 최봉만 전 노동당 39호실장도 이번에 강 전 총리와 애국열사릉에 안치됐다. 북한의 각종 외화벌이 회사를 직영하는 노동당 39호실은 최고지도자의 통치자금을 마련하는 곳이다. 최 전 실장은 2004년쯤 업무상 과오로 평양에서 지방으로 좌천된 것으로 전해졌지만 북한은 이번에 “당 중앙위원회에서 사업하면서 우리 당의 강화 발전에 이바지했다”며 애국열사릉에 안치해 뒤늦게 공로를 인정했다.

북한 첫 여군 장령(장성)인 전구강 전 소장(우리의 준장급)도 새 애국열사릉 안치자에 포함됐다. 전 전 소장은 6·25전쟁 직후인 1950년 7월 입대해 2001년까지 51년간 군 생활을 한 군의관으로 ‘공훈의사’, ‘노력영웅’ 등의 칭호를 받았다. 북한은 1988년 전 전 소장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나의 행복’을 제작하기도 했다. 통신은 “수십 년간 혁명의 군복을 입고 군의부문 일군으로, 전승기념관 강사로 영예로운 복무의 길을 걸으며 인생의 참된 행복을 꽃피운 첫 여성 장령”이라고 그를 소개했다. 그밖에도 지난 3월 사망한 ‘북한 최고의 지휘자’ 김병화 전 국립교향악단 고문도 ‘주체교향악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이번에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또한 군 장령이었던 박인영도 이번 애국열사릉 안치자에 포함됐다고 통신은 전했다.

김선영 기자 00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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