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0년 시차의 두 천문학자.. 인간이 이성 잃었을 때의 '지구 파멸' 경고

기자 2021. 9. 17.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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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 서동욱의 세계의 산책자 - (23) ‘코스모스’와 ‘티마이오스’

플라톤·세이건 “우주와 인간은 소통·조화 이뤄야”… 세계를 위해 애써야 하는 의무 강조

광기·무지에 휩싸인 인간이 지구를 망치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인류를 도우려는 것이 바로 과학

“가장 위대하고 가장 훌륭하며 가장 아름답고 가장 완전한 것이자, 종적으로 유일하며 수적으로 하나뿐인 이 하늘.” 플라톤은 천문학에 관한 책인 ‘티마이오스’(김유석 역)의 마지막 줄을 우주에 대한 이런 표현으로 끝맺고 있다. 또 우주에 대해 “오직 하나뿐인 외톨이”라고 쓰기도 한다. 아테네의 언덕에 서서 밤하늘을 바라보던 이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숲속에서 천체 망원경으로 토성을 바라본 적이 있다. 그 아름다운 별은 물병 속에서 흔들리는 작은 장신구처럼 얼마나 가련하던지. 별은 홀로 그토록 어두운 데서 잃어버린 반지처럼 떠 있었다.

밤하늘은 탄식 속에서 우주의 비밀에 대해 의문을 품게 한다. 그 의문에 대한 각각의 답으로 윤동주 같은 시인은 ‘별 헤는 밤’이란 시를 빚어냈고, 플라톤 같은 학자는 장대한 우주론을 만들어 냈다. 플라톤이 쓴 앞의 구절에 나오는 ‘하늘(ouranos)’은 천구(天球)라고 번역하기도 하며 우주(cosmos)와 바꿔 써도 좋은 말이다. 수천 년이 흐른 후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플라톤이 쓴 저 코스모스라는 아름다운 단어를 자신의 책 제목으로 삼았다.

천문학에 대한 두 권의 책,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홍승수 역)와 플라톤의 ‘티마이오스’가 앞에 있다. 하필이면 왜 이 두 책일까. ‘코스모스’는 1980년에 나온 대중 과학서이고, ‘티마이오스’는 기원전 367년쯤에 나온 고대 우주론의 집대성이다. 두 책의 공통점이 있다면, 각각 현대와 고대에 가장 널리 읽힌 천문학 서적에 속한다는 점이다. 그 외에는 우주를 설명하는 방식 등 거의 모든 점에서 서로 다르다.

그런데도 칼 세이건은 고대와 단절하는 대신, 현대의 연구가 고대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의 일이었다. 이오니아 문명의 수혜자들이던 고대의 최고 지성들은 수학, 물리학, 생물학, 천문학, 문학, 지리학, 의학을 체계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을 알렉산드리아에 구축할 수 있었다.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이 바로 그 핵심 성채였다. 오늘날의 학문도 당시 이뤄진 연구에 아직 그 바탕을 두고 있다.”

또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우리가 현대에 와서 성취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보다 먼저 살았던 4만여 세대에 걸친 우리의 선배들이 이룩한 업적에 그 뿌리를 대고 있다.” 이런 말들은 고대와 현대 사이에서 이뤄진 엄청난 과학의 변모를 생각한다면, 당혹스럽게 느껴진다. 어떤 점에서 현대 과학은 고대 과학에 바탕을 두고 있는 걸까. 현대는 미신을 몰아내고, 비합리적 설명과 단절하는 등의 과학 정신을 고대 철학에서 물려받았다. 그러나 고대의 유산은 그 이상이다. 바로 이 점을 살피기 위해 우리는 고대와 현대에 가장 많이 읽힌 천문학책에 속하는 두 권을 함께 펼쳐 보고 있는 것이다. 설령 ‘과학적 진리’의 관점에서 훨씬 의미 있는 작품이 많을지라도 말이다.

‘코스모스’에는 이런 흥미로운 구절이 있다. “인간의 본성이 우주라는 큰 바다와 공명을 이루며 인류의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한 뜨거운 그 무엇이 우주를 자신의 편안한 집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과학적이라기보다 형이상학적으로 들리는 이 구절은 인간과 우주의 본성이 서로 교통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생각은 플라톤에게서도 발견된다. 플라톤이 ‘티마이오스’에서 생각한 우주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그(우주의 제작자)는 지성을 혼 안에, 그리고 혼을 몸 안에 구성하고는 이 우주를 짜 맞춰 나갔으니, 이는 작품을 완성했을 때 그것이 본성상 최대한 가장 아름답고 가장 훌륭한 것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 실로 그렇게 이 세계는 지성과 혼이 깃든 살아있는 생물로서 진실로 신의 구상(構想)에 따라 생겨났다고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주는 혼과 지성을 지닌 것으로 만들어졌다. 물론 그 혼과 지성은 우주를 제작한 신, 데미우르고스로부터 온 것이다. 그리고 피조물인 인간 역시 데미우르고스의 영향을 받은 신들로부터 지성과 혼을 나눠 받았다. 그래서 본성에 있어서 우주와 인간은 서로 통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주가 혼(이성)을 부여받은 결과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주가 이성의 법칙을 따르며, 그 결과 우주는 ‘탁월한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서 읽은 구절에서 제작자 신이 ‘가장 아름답고 가장 훌륭하게’ 우주를 만들었다고 썼는데, 바로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것이 탁월한 상태다.

이성적인 법칙을 따를 때 우주는 탁월한 상태가 되기에, 신은 이성의 활동이 훼손되지 않게끔 세상의 여러 가지 것을 설계했다. 재미있게도 우리의 신체기관인 장(腸)이 길고 구불구불하게 만들어진 이유도 이성의 활동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장(腸)’이 생겨나게 해 빙글빙글 감쌌으니, 이는 음식물이 빠르게 통과하는 바람에 다시 다른 음식물이 필요하도록 몸을 강제하지 않기 위함이며, 또한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야기함으로써 식탐으로 인해 온 인류가 철학과 교양을 결여하고, 우리 안에 있는 가장 신적인 것에 귀 기울이지 않는 자들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장은 음식을 빨리 소화해선 안 된다. 금방 배고파져서 식탐이 우리를 지배하면 우리의 가장 신적인 부분, 즉 이성적인 영혼의 활동이 방해를 받기 때문이다.

신적인 부분인 이성적 활동을 신에게서 부여받은 인간이 신과 같이 우주를 탁월하게 하는 일에 개입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신은 피조물을 만들면서 영혼에 ‘올바름(dike)’이란 것을 심어놨다. 이 올바름이란 맥락에 따라 ‘정의’라고도 번역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니 인간은 부분적이나마 이 우주에 ‘정의’를 가지고 개입할 수 있는 존재다. 다시 말해 인간은 우주가 올바름을 구현할 수 있도록 길을 찾는 자다. 애초에 신적 지성이 그렇다. “이 우주의 생성이란 필연과 지성의 결합으로부터 혼합돼 생겨난 것이니까요. 그런데 지성은 생겨나는 것들의 대부분을 가장 훌륭한 것으로 이끌도록 필연을 설득해 지배했으니 … 필연이 지혜로운 설득에 굴복함으로써 그렇게 처음부터 이 우주가 구성됐던 것입니다.” 여기서 플라톤은 ‘필연’과 신의 ‘지성’ 사이의 긴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주는 물질들이 서로 부딪치는 것과 같은 맹목적인 필연적 법칙을 따른다. 그러나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필연을 다스리는 지성이 또 개입하는 것이다. 이 지성은 우주를 그저 움직이도록 놔두지 않고, ‘올바른 최선의 것을 향해 움직여 가도록’ 우주를 설득한다.

여기서 우주가 ‘최선’이라는 목적을 향해 운동한다는 낡은 허구를 설파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핵심은 우주를 그저 떠도는 돌멩이들의 흐름을 대하듯 맹하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주가 최선이 될 수 있는 길을 설명하는 것이 ‘인간의 관심사’라는 점이다. 바로 이것이 고대와 현대의 천문학자, 플라톤과 칼 세이건의 중요한 공통점이다. 칼 세이건은 말한다. “우리는 종으로서의 인류를 사랑해야 하며, 지구에 충성해야 한다.” 이런 최선을 위해 애써야 하는 과제가 인간에게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양자는 모두 인간이 이성적 면모를 잃고 사악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며 경계한다. 칼 세이건은 인간이 온화하게 자신을 조절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핵전쟁을 일으킬 정도의 살인적 분노에 휩싸일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경고한다. 이런 전쟁의 가능성을 머릿속에 있는 파충류와 포유류의 뇌가 갈등하는 것에서부터 설명하는데, ‘코스모스’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일 것이다.

“사람을 죽이고 싶을 정도의 격렬한 분노는 아주 먼 옛날 진화 과정에서 만들어져서 아직도 우리 머리 깊숙한 곳에 남아 있는 파충류의 뇌, 소위 뇌의 R 영역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한편 감정의 중재와 기억의 관장은 진화의 가장 최근 단계에서 발달한 포유류와 인간의 뇌, 즉 변연계와 대뇌 피질에서 이뤄진다. 그러므로 … 갈등은 파충류와 포유류의 뇌가 벌이는 대립의 소산인 셈이다.”

전쟁과 폭력의 수많은 중대한 원인이 있다. 인간 심성에서 그 원인 중 일부를 찾고 치유하려는 저런 유의 설명은 사실 고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바로 플라톤이 가장 우려하며 ‘치료(therapeia)’하려는 것도 인간이 이성적 면모를 잃고 ‘미치는’ 경우다. 저런 현대적 뇌해부학이 없는 시대의 플라톤은 인간 내면의 위험스러운 부분을 이렇게 설명한다.

“몸의 상태에서 기인하는 혼의 질병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생겨납니다. 우선 혼의 질병은 어리석음이라는 데 동의해야겠지요. 그런데 어리석음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그 하나는 광기고 다른 하나는 무지입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그 둘 중 어떤 상태를 겪든 그 모두를 질병이라고 불러야 하며, 특히 과도한 쾌락과 고통은 질병들 가운데서도 혼에 가장 심각한 것이라고 놓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과도하게 즐거운 상태에 놓이거나 고통에 의해 반대의 상태를 겪게 되면 … 어떤 것도 바르게 보거나 듣거나 할 수 없고, 광분할 뿐 아니라, 사실상 그때는 추론이라곤 거의 나눠 가질 수 없으니까요.”

영혼이 광분할 땐 추론, 즉 이성적 사유가 마비되고 인간은 무서운 폭탄이 돼 지구의 표면을 배회한다.

고대의 과학과 현대의 과학은 서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고대와 현대 과학자의 관심은 한결같다. 그들의 관심은 단지 우주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플라톤과 칼 세이건이 보여주듯, 인간 영혼이 이성을 잃고 세계를 망치지 않을지 두려워하며, 지구가 더 좋은 곳이 되도록 돕고자 하는 관심이 과학을 사로잡고 있다.

서강대 철학과 교수

■ 용어설명

고대와 현대에 널리 읽힌 천문학책

플라톤의 ‘티마이오스’는 플라톤의 우주론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인간 신체와 영혼의 연마, 우주의 원리, 신들, 이 모든 것을 하나의 사상 속에 담아내고 있는 역작이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현대의 대표적인 대중 과학서다. 현대가 누적한 천문학적 성과뿐 아니라 인류의 운명, 핵전쟁의 위협 등 광범위한 사회·문화적 주제를 다루고 있다. 고대와 현대의 이 두 천문학책은 단지 과학이론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좋은 것인가’라는 가치에 대한 질문을 존중하며 거기 답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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