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명절에 며느리만 오라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신소윤 2021. 9. 1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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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
결혼이란 이전 세대와 결합이기도..
전업주부라 며느리 의무 강요한다면
경제적 자립으로 삶의 주도권 찾을 것
게티이미지뱅크

Q.결혼 15년 차 전업주부입니다. 주변에서 올 추석에 다들 ‘집콕’이라고 푸념하던데, 저는 정말 진심으로 다른 데 안 가고 우리 집에 있고 싶어요. 시어머니가 얼마 전 전화해서 “코로나 확산세가 무서우니 추석에 너만 와라” 하고 말씀하셨거든요. 말씀인즉 코로나로 사람들 많이 모일 수 없으니 제사 음식 준비할 사람만 있으면 된다는 겁니다.

지난 10여년의 명절마다 늘 제사 음식은 저와 시어머니만 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주부인 저를 집에서 노는 사람으로 봅니다. 무슨 일 있으면 저만 부릅니다. 김장할 때도 당신 아들·딸, 직장 다니는 동서는 부르지 않고 저만 부르십니다. 저와 사이가 각별하다거나 딸보다 가깝다고 생각하실 리도 없습니다. 어머니가 부르실 때마다 저는 그 집에서 일하는 몸종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남편과 함께 시가에 가면 남편에게는 “고생한다, 쉬어라, 외벌이라 얼마나 힘드냐”고 말씀하십니다. 연년생 육아로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두고 경력단절이 된 저로선 속상한 말입니다.

그래서 올 추석에 저 혼자 시가에 가냐고요? 네, 갑니다. 가지 않으면 ‘아이들 옷이 저게 뭐냐’ ‘돈 헤프게 쓰지 마라’는 둥 전혀 상관없는 거로 트집을 잡으시거든요. 남편은 어머니가 옛날 분이라 그러니 이해하란 말만 합니다. 이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노는 사람 아닌 사람

A. 한때는 직장을 나가서 일하고 있었지만 연년생 육아로 인해 오랜 기간 경력단절이 된 15년 차 전업주부라고 자신을 소개하셨습니다. 그동안 엄마로 살면서 느낀 보람과 기쁨도 있었겠지만, 평상시 시가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불편함, 왜 명절에 나만 이렇게 일을 해야 하지라는 억울함이 한층 또렷하게 올라오는 상황인 것 같네요. 분명 내가 하던 일을 포기하고 가족을 위해서 살고 있는데,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남편만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처럼 대하는 시어른의 태도에 마음의 상처도 많이 입으신 것 같아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결혼이란 것이 그렇습니다. 결혼은 남녀의 결합이며 동시에 세대의 결합이기도 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한 가족을 이루기로 선택하는 순간, 절대로 거역할 수 없고 ‘싫어요’라고 말하기가 너무도 어렵고 관계를 끝내기란 더더욱 어려운 시어른과의 관계도 함께 따라옵니다. 평생 거역할 수 없는 상사와도 같은 분이 생기는 거죠. 오랫동안 유교 사상이 지배했고, 불과 20~30년 전까지 성 감별과 여아 낙태가 성행했고, 호주제가 존재하며 여성은 아버지나 남편에게 ‘소속’된 존재로 여겨졌던 나라입니다. 이전 세대의 가치관을 갖고 계신 분들과 가족을 이루는 순간, 그 세대의 가치관이 나의 현실적인 삶에 영향을 끼치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경우 전업주부의 노동은 ‘당연한 것’, ‘가치가 낮은 것’으로 취급되지요. 가사노동은 여자의 당연한 의무이지 노동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직장에서 종일 근무를 하는 며느리도 오직 며느리이기 때문에 각종 제사엔 쉴 새 없이 호출을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전업주부인 상황에서는 시어머니의 호출을 거부할 만한 이유를 대기도 어려울 것이고요. 그런데 이건 앞으로도 쭉 그럴 수 있어요. 가족의 중요한 행사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은, 당신이 결혼하는 순간 정해진 의무가 된 거죠. 내 일을 내려놓고 전업주부로 살기 시작한 순간, 그 의무는 한층 더 강화되는 길로 갔을 뿐입니다. 시어머니 입장에서, 전업주부 며느리인 당신은 가장 눈치 보지 않고 일을 시킬 수 있는 상대였고, 앞으로도 그렇겠지요.

가족을 건사하는 삶도 15년 살아보셨으니, 이제 누구의 엄마뿐만 아니라 내 이름 석 자를 가지고 일하는 삶을 사셨으면 합니다. “벌어봤자 얼마나 벌겠어? 집에서 아이들 돌보는 게 남는 장사야”라는 말들을 참 많이 하지요. 하지만 내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이 있다는 건 단지 유형의 돈으로만 환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주도권과 발언권 그리고 경제적 자유를 확보하는 일이고, 나 자신을 계속해서 성장하게 하는 일이죠. 아무리 일하기가 싫거나 힘들어도, 가능한 한 자기 일을 유지하는 것이 나은 이유입니다.

직장을 다닌다고 해서 당장 며느리의 의무가 줄어들진 않겠죠. 그러나 적어도 ‘이건 어렵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발언권이 생기죠. 협상은, 발언권이 생겨난 다음에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어른에게뿐만 아니라 남편에게도 마찬가지이고요. 저절로 벗겨지는 굴레는 없어요. 내가 힘을 길렀을 때만 굴레는 끊을 수 있습니다.작가(헤르츠컴퍼니 대표)

※사람과의 관계로 인해 고민이 생기셨나요? ‘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의 문을 두드려 주세요. 채택된 사연은 익명으로 실리며, 추후 수정이 불가능합니다. 보낼 곳: es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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