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붕 '살림 친구', 명절엔 '따로 부부'.. 새로운 가족의 탄생

나윤석 기자 2021. 9. 1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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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 7가지 키워드 - 추석에 읽는 ‘요즘 가족’

25년째 아이 없는 결혼생활

30대 후반 싱글남성의 독립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엄마

‘명절 노동’ 해방선언 며느리

얼마든지 행복한삶 살수있어

“나의 ‘힘’이자 ‘짐’. 한없이 사랑하다가도 미워지는, 가족.”(최광현, ‘가족의 두 얼굴’ 중)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그냥 나만 전쟁이야”라고 외치는 지영에게 가족은 ‘미운 짐’이다. 추석이 다가오는 지금, 설레고 들뜨기보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수많은 ‘지영’이 있겠으나 그래도 세상은 달라지고 있다. 혈연·자녀·싱글·부부·고부·부성애·일과 육아 등 7가지 키워드로 뽑은 책들이 보여준다. 피가 섞이지 않아도, 아이를 갖지 않아도 행복한 가족을. 희생하고 양보하는 엄마로 머물지 않겠다는 여성을. 뼈 빠지는 ‘명절 노동’에서 해방되겠다는 며느리를. 가족과 멀어지지 않되 ‘나만의 공간’을 찾는 자립을. 그렇게 새로운 가족이 탄생하고, 관계는 진화한다. 책들을 통해 변화한 가족의 풍경을 확인하며 ‘한없는 사랑’으로 ‘힘’을 얻기를.

# 혈연

이만하면 괜찮은 결,심(정켈 지음·아몬드)=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아프게 한다. 너무 사랑하지만 너무 편해서, 각자의 다름을 쉽게 무시해버리는 것도 가족이란 존재다. “각자 삶의 규칙을 지키면서 서로의 방식을 존중하고, 현실적 부담을 함께 줄여나갈 동지가 있으면 좋겠다.” 보통보다 좀 더 예민한 두 여성이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을 벗어나, 생활의 ‘동지’로서 한 지붕 아래 ‘살림’을 꾸린다. ‘고결’과 ‘조심’. 이름부터 남다르고, 종종 유별나다며 타박받던 두 사람의 동거는 예상보다 순조롭다. 각자의 다름을 ‘목격’하고,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태도는 서로에게 든든한 요새가 돼 준다. 동시대 2030의 삶을 다채롭게 그려온 저자가 그래픽 노블의 형식을 빌려 들려주는 자신을 위한, 가족과 친구를 위한,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한 응원가이다.

# 자녀

우리가 선택한 가족(에이미 블랙스톤 지음·문학동네)=정말 괜찮을까. 10년 뒤, 20년 뒤 후회하진 않을까. ‘아이 없는 결혼생활’을 선택하는 부부가 늘고 있지만, ‘비(非) 부모는 이기주의자’ ‘결국 후회한다’는 통념은 여전한 듯 보인다. 진지한 논의나 깊은 연구도 미흡하다. 이에 아이 없는 결혼생활을 25년째 유지하고 있는 저자가 자신과 같은 결정을 내린 700여 명을 설문 조사하고, 70여 명을 인터뷰했다. 편견과 달리, 이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가장 적절하다고 느끼는 방식으로 삶을 꾸리고 있음에 기뻐했다고 한다. 저출산 시대, 무자녀 가정에 대한 논의는 이제 공적이고 정치적인 영역으로 확장됐다. 책은 이와 관련한 가치판단이나 제언이 무자녀 커플의 기쁨의 근원, 즉 ‘자율성’을 주목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생 경로를 선택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적 성취감과 의미 있는 관계를 지키려는 마음이다. 어느 쪽이든 자신에게 알맞은 선택을 했다는 게 중요하다.”

# 싱글

생애 최초 주택 구입 표류기(강병진 지음·북라이프)=‘나만의 집’이 필요하다. 얹혀사는 집도 아니고, 얹히고 사는 집이 아닌, 독립된, 그러면서 이사를 걱정하지 않는, 완전한 ‘내 것’ 말이다. 1인 비혼 가구가 늘고 있는데도, 여전히 한국사회는 결혼과 동시에 ‘집’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보편적인 독립으로 여기는 것 같다. 얼핏 ‘부동산 에세이’처럼 보이는 책은 30대 후반 싱글 남성의 독립·성장기다. 그것은 내 집 마련 분투로 시작해, 가족에 대한 복잡다단한 감정들을 정돈하고, 자유, 고독, 그리고 낭만이 혼재한 ‘나 혼자 산다’의 실현으로 확장된다. 그 과정에서 반지하 등 유년시절 살던 집에 대한 기억과 추억을 소환하고, 여자친구와의 현재와 미래, 또 자신의 노후를 고민하며, 어머니와 다투고 화해하고, 독립(?)도 시켜드린다. 아파트 공화국에서 표류하던 저자는, 어디에 안착하게 될까. 살(買) 집 아닌, 살(居) 집을 찾는 모든 이의 일독을 권한다.

# 부부

결혼 뒤에 오는 것들(영주 지음·푸른숲)=‘며느리 사표’로 유명한 저자의 후속작. 제목이 좀 의외다. 며느리가 된 여성들에게 “이제 그만 사표를 던지라”고 선동하던 ‘선배’가 갑자기 순응적으로 변했나. 그럴 리가. 전작의 그 전복적인 기세, 여전하다. ‘어쩌다, 이왕, 어차피’(아무래도 읽다 보면 이런 느낌이다) 해버린 결혼. 잘 살아 봐야 하지 않겠냐며 현실적인 조언을 담았다. 책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결혼했니? 그러면 ‘행복한 결혼’이라는 환상과 이혼부터 해! 그리고 한 달 살기에 필요한 ‘1인분의 계산’을 반드시 해보고, 경제적 자립부터 하라고 강조한다. 이혼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언제든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넓혀야 결혼생활의 질이 올라간다는 의미다. 즉, 행복하려면 냉정한 셈이 앞서야 한다. “80년대에 결혼한 나와 80년대생의 결혼생활이 같으면 되겠냐”는 저자의 말이 뼈를 때린다.

# 고부

노땡큐-며느라기 코멘터리(수신지 지음·귤프레스)=“시댁에서 시어머니가 주방에 계시면 얼쩡거리기라도 해야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남편은 그런 것 같지 않았다.” 시집살이 풍경을 꼬집은 웹툰 ‘며느라기’는 이런 자각에서 출발했다. 웹드라마에서도 막 결혼한 민사린(박하선)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 감정을 뒤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아들 밥걱정만 하는 시어머니를 보며 ‘이건 아닌데’라는 마음을 품는다. 며느라기(사춘기·갱년기처럼 며느리가 되면 겪는 시기)를 극복하려는 몸부림은 여기서 시작된다. ‘노땡큐’는 ‘며느라기’의 후일담. 시어머니·엄마·남편의 반응을 인터뷰로 정리했다. 시어머니는 “결혼 후 ‘일반적으로’ 행동하는 며느리 모습이 뿌듯했다”고 하지만 작가는 달라진다. 이번 명절엔 ‘독박 살림’ 대신 남편과 따로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며느리 사표’를 쓰고 관계를 절연하지 않아도 ‘가족’으로 남을 수 있다. 한 네티즌의 댓글처럼 “느린 것 같아도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으니까.

# 부성애

아빠 노릇의 과학(폴 레이번 지음·현암사)=유치원에서 인기가 많은 아이의 공통점은? 엄마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 땡! 한 연구에 따르면 아빠와 거친(?) 몸싸움 놀이를 즐기는 녀석들이 유치원의 ‘분위기 메이커’인 경우가 많았다. ‘짓궂은’ 아빠의 장난이 불안정한 상황을 통제하는 힘을 길러준 것이다. 다소 위험한 짓을 해도 크게 개의치 않는 아빠들의 성향은 ‘아이가 다치면 어쩌나’ 쩔쩔매는 엄마들과도 대비된다. 그럼 아빠가 엄마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냐고? 아니다. 다만 ‘위대한 모성’에 가려진 아빠의 역할을 힘주어 강조하는 것이다. 아이에게 아빠는 엄마와 꼭 같은 크기로 소중하다며. 부성애는 모성애 못지않게 진화 과정에서 자연 선택된 본능이라며. ‘일이 바빠서 육아까지는…’이라고 말끝을 흐리는 남성들이여, 이제 정신 좀 차리자. 핑계 대며 미루지 말고 이번 추석부터 아빠 노릇 제대로 해보자.

# 일과 육아

마녀엄마(이영미 지음·남해의봄날)=일·육아를 병행하는 ‘마녀 엄마’는 다르다. 최선의 부모 노릇은 “엄마나 잘 사는 것”이라고, “잘 사는 엄마를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이라고 믿는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누구보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안달복달했고,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그러다 “평생 자식과 덜거덕거리는 불행한 저질 체력으로 살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솟았다. 온종일 책상에 머무는 출판 편집자로 일해온 엄마는 마흔에 운동을 시작해 ‘철인 3종경기’까지 완주했다. 뒤늦은 ‘갱생 프로젝트’는 체력을 기른 동시에 마음을 성장시켰다. 아이를 향한 미안함과 죄책감은 “개나 줘버리고” 즐겁게 회사에 출근하며 일에 몰두했다. ‘마녀’처럼 강인하고 단단해진 엄마는 ‘육아(育兒)’가 아닌 ‘육아(育我)’ 일기를 쓰며 깨닫는다. 내가 아이를 키운 줄 알았는데 실은 아이가 나를 키웠다는 것을. 엄마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이도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나윤석·박동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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